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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AfD는 얼마나 좌익인가?

글쓴이
라이너 지텔만 2026-08-07

현재 거의 30퍼센트에서 득표하고 따라서 최근 설문 조사들에 따르면 그 나라의 가장 강한 정당, 독일의 AfD(독일 대안당; Alternative for Germany)는 두 공동 의장 알리체 바이델(Alice Weidel)과 티노 크루팔라(Tino Chrupalla)에 의해 지도된다. 크루팔라는, 그의 새 책이 보여주듯이, 그 당의 명백히 친러시아적이고 더 좌익인 당파를 대표한다.


크루팔라는 지금 자기 자서전을 출판했는데, 거기서 그는 네 정치적 역할 모델−두 사회 민주당원과 두 좌익 기독교 민주당원−을 식별한다. 그가 아주 찬양하는 인물 가운데는 야콥 카이저(Jacob Kaiser), 프리드리히 에베르트(Friedrich Ebert), 그리고 노르베르트 블륌(Norbert Blüm)이 있다. 크루팔라는 자기가 카이저, 에베르트, 그리고 블륌을, 비록 세 사람 모두가 자기들 각자 정당의 좌익 구성원으로 여겨졌다고 할지라도, 역할 모델로 여기는 것에 많은 독자가 놀랄지 모른다고 쓴다. 책 전체에 걸쳐서, 그는 또한 반복해서 사회 민주당 외교 정책 전략가 에곤 바르(Egon Bahr)에 대한 자기의 찬양을 표현하기도 한다.


크루팔라는 야콥 카이저를 기독교 노동조합 운동에서 나타난 것으로 그리고 콘라트 아데나워(Konrad Adenauer)에 대한 진정한 균형추로 봉사한 CDU(기독교 민주 동맹; Christian Democratic Union)의 좌익의 대표자로 서술한다. 1949년에, ≪더 타임스(The Times)≫는 카이저를 CDU의 좌익의 진정한 지도자로 서술했다. 그 신문은 카이저가, 부분적으로 기독교 노동조합들에 대한 그의 오래된 유대 때문에 그리고 부분적으로 그가 소련 점령 지역에서 활동해야 하기 때문에, 아데나워가 거부하는 비마르크스주의 형태의 사회주의를 옹호한다고 보도했다.


카이저는 여러 해 동안 CDU의 사회 위원회들(Social Committees)의 의장으로 복무했고 1949년부터 1957년까지 콘라트 아데나워 치하 연방 독일 통일 문제 담당 장관(Federal Minister for All-German Affairs)이었다. 1946년 2월 13일 베를린에서 행한 연설에서, 그는 자기의 정치적 비전이 민주적 원리들을 경제 및 사회 정책에 대한 사회주의 접근법과 결합하며, 기독교 책임과 개인의 존엄에서 유래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것을 기독교 가치들에 기반한 사회주의의 본질로서 서술했다.


크루팔라의 두 번째 역할 모델인 노르베르트 블륌은 헬무트 콜(Helmut Kohl) 시대 동안 CDU의 좌익의 지도적인 대표자였고, 크루팔라가 올바르게 언급하듯이, “예수님의 심장 마르크스주의자(the Heart-of-Jesus Marxist)”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졌다. 블륌의 책 중 하나는 ≪금융 자본주의는 정직한 일에 대한 공격이다(Financial Capitalism Is an Attack on Honest Work)≫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그 책은 전 좌파당(Left Party) 지도자 오스카 라퐁텐(Oskar Lafontaine)으로부터 호의적인 서평을 받았는데, 그는 블륌이, 현대 세계 경제에서 재산의 분배가 카를 마르크스(Karl Marx)가 1848년에 ≪공산당 선언(The Communist Manifesto)≫을 출판한 이래 가장 심각한 사유 재산 공격을 나타낸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인용했다. 블륌은 세계의 가장 부유한 가족들 중 358개가 세계 부의 반 이상을 통제할 때, 이것이 사유 재산 제도 자체의 토대를 침식한다고 주장했다. 라퐁텐은 ≪쥐트도이체 차이퉁(Süddeutsche Zeitung)≫에서 논평으로 응답했다: “잘한다−그리고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는가(Bravo−and what do we do now)?”


다른 곳에서, 블륌은 탐욕의 신(Mammon)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그리고 돈이 금융 자본주의의 성체가 되었다고 썼다. 그는 자기가 탐욕의 신 숭배라고 부르는 것을 거부했고, 그것을 세계를 다 먹어버리겠다고 위협하는 탐욕스러운 우상으로 묘사했다. 그는 더 나아가서 세계적으로 유통하는 수조 달러의 99퍼센트가 일, 가치 창출, 재화들, 혹은 서비스들과 관계없고, 대신 돈 자체가 일으키는 환상을 반영한다고 주장했다.


크루팔라 자신의 견해들은 블륌과 카이저의 그것들을 가깝게 닮았다. 자기의 자서전에서, 그는 명시적으로 강조한다: “나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기를 원하는 리버테리언이 아니다.”


크루팔라의 세 주요 역할 모델 중 가장 보수적인 사람은 아마도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일 것인데, 그를 따라 SPD(Soziɑldemokrɑtische Pɑrtei Deutschlɑnds; 독일 사회 민주당)의 정치적 기초가 이름 지어졌다. 에베르트는 1913년부터 1919년까지 SPD의 의장으로 복무했고, 1919년에 바이마르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며, 1925년 그의 사망 때까지 재임하였다. 그는, 자기를 “11월 범인들(November criminals)” 중 한 사람으로 낙인찍은 국가 사회당, 그리고 자기가 그 봉기를 진압한 공산당 양쪽 다에 의해 미움을 받았다.


그러나, 크루팔라는 그가 에베르트를 SPD의 좌익에 둘 때 잘못됐다. 반대가 진실이다. SPD는 1917년에 주로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독일의 전쟁 정책과 전시 채권들의 지지를 두고 갈라졌다. 당 지도부의 정책의 반대자들은 좌익 독립 사민당(Independent Social Democratic Party; USPD)을 설립했지만, 에베르트는 다수파 사민당(Majority Social Democratic Party; MSPD)의 의장인 채로였다.


크루팔라의 책에서 역할 모델로 자주 나타나는 또 한 사람의 정치인은 사민당 외교 정책 전문가 에곤 바르이다. 크루팔라에 따르면, 바르는 2022년 이래 독일 정책을 특징 지은 종류의 러시아에 대한 수사적이고 외교적인 단계적 확대에 결코 종사하지 않았을 것이다.


독일 하원에서 그의 연설들이 종종 마치 그것들이 크렘린에서 작성되었던 것처럼 들리는 크루팔라가 바르를 찬양한다는 점은 거의 예상 밖이 아니다. 바르는 공산주의 정부들과의 협상들에 집중했지만, 폴란드, 동독, 그리고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자유 운동들에 거의 동정을 보이지 않았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 합병 후에, 그는 강경 제재들에 반대했고 합병이 실제로 받아들여져야 한다−후에 심각한 오판으로 드러난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에 관한 평가−고 주장했다. 이미 1980년대에, 바르는 NATO의 이중 궤도 결정을 비판했고, 그리하여 소련에 대한 서양의 전쟁 억지를 약화했다.


≪노이에 취르허 차이퉁(Neue Zürcher Zeitung)≫은, 젊은 자유(Junge Freiheit)와 독일 통신사(German Press Agency; dpa)에 의한 대등한 조사들에 따르면, 크루팔라 자신의 의회 그룹 안에서 갈등을 일으킨 것이 바로 정치적 좌파에 대한 그의 개방성이었다고 보도한다. 이 보도들에 따르면, 크루팔라는 전 좌파당(Left Party) 의원이자 전-BSW(자라 바겐크네히트 동맹; Bündnis Sahra Wagenknecht) 정치인 자클린 나스틱(Zaklin Nastic)을 AfD 의회 그룹에 대한 수석 정책 고문으로서 임명하려고 시도했다. 미국과 NATO에 대한 그녀의 회의론이 소문에 의하면 그에게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의회 그룹의 직장 회의(works council)가 그 임명에 거부권을 행사했는데, 그 문제에 관해 질문받았을 때, 의회 그룹은 논평하기를 정중히 거절했다.


크루팔라는 그러한 견해들을 신봉하는 데서 AfD 안에서 혼자가 아니다. “만약 우리가 오늘의 금융 자본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는 이 멋진 행성을 망가지도록 쓸 것입니다,”라고 튀링겐(Thuringia)주 AfD 지도자 비외른 회케(Björn Höcke)는 말했다. 회케는 자기 연설들에서 “우리는 부유하고 탐욕스러운 사람들 편에 있지 않습니다,”라고 선언하고, 아침에 도쿄에서 회합하고, 오후에 싱가포르에서 골프를 치며, 다음 저녁에 장크트 모리츠(St. Moritz) 일광욕 테라스에서 라테 마키아토를 마시는 사람들을 공격한다. 그는 초부자들이 세계에 대해 비공식적인 통제를 행사하려고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기의 동료 AfD 정치인 막시밀리안 크라(Maximilian Krah)처럼, 회케는 국제 투자자들을 “메뚜기들(locusts)”로 묘사한다. 민간 주식 투자자들을 묘사하는 “메뚜기들”이라는 용어는 2005년에 당시 SPD 의장 프란츠 뮌터페링(Franz Münterfering)에 의해 독일 정치 논쟁에 도입됐고 그 후 좌익 정치 수사의 표준적인 성분이 되었다.


크루팔라는 하나의 주목할 만한 성공을 지적할 수 있다: 그는 AfD를 독일의 가장 강한 노동자당으로 전환하였다. 어떤 다른 정당도 그것만큼 많은 노동 계급 투표자를 끌어들이지 못한다. 특히 동부 독일에서, AfD는 자기의 친러시아 위치 설정과의 결합을 통한 자기의 사회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인 수사를 통해 많은 이전 좌파당 지지자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라이너 지텔만(Rainer Zitelmann)은 책 ≪새 우주 자본주의(New Space Capitalism)≫의 저자다. https://www.skyhorsepublishing.com/9781510788220/new-space-capitalism/ 번역: 황수연[미제스와이어(mises.kr)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