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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기 앞의 3초, 그리고 시장경제

최수민 / 2025-05-20 / 조회: 14

나는 자판기 앞에 섰다. 눈앞에는 콜라, 사이다, 이온음료, 생수, 캔커피가 줄지어 서 있다. 종류도 많고 가격도 제각각이다. 천 원짜리 한 장을 손에 쥔 채 나는 멈춰 섰다.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고, 머릿속은 바쁘게 돌아갔다. 지금 마시고 싶은 건 무엇인가. 갈증을 해소할 것인가, 기분을 따를 것인가, 익숙함을 선택할 것인가. 나는 단 3초 만에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그 3초 안에는 시장경제의 본질이 모두 들어 있었다.


내가 고른 건 900원짜리 캔커피였다. 갈증보다는 집중이 필요했고, 가격은 천 원 아래였으며, 맛은 이미 익숙했다. 이 선택은 단순한 구매가 아니었다. 가격이라는 정보를 해석했고, 자신의 필요를 기준 삼아 판단했다. 아무도 나에게 이 캔을 강요하지 않았고, 어떤 규제도 없었다. 나는 자유롭게, 나만의 기준으로 음료 하나를 골랐다. 시장경제는 그렇게 작동한다. 정보, 가격, 선택, 그리고 자유.


며칠 뒤 같은 자판기 앞에 섰을 때, 내가 고른 캔커피는 사라져 있었다. 대신 새로운 음료가 채워져 있었다. 디자인이 더 눈에 띄었고, 가격은 조금 더 저렴했다. 나는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음료는 사라지고, 누군가가 선택한 음료는 남는다. 자판기 안의 변화는 누군가의 작은 선택들이 쌓여 만들어낸 결과였다. 누가 명령한 것도 아니고, 누가 통제한 것도 아니지만 자판기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었다.


그 진화의 원천은 소비자의 선택이다. 기업은 그 선택을 예측하고 분석하며, 더 나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경쟁한다. 가격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언어다. 소비자의 반응, 수요의 크기, 제품의 가치가 모두 녹아 있는 정보의 집합이다. 나는 그 언어를 읽고 해석했다. 그 해석은 하나의 클릭, 하나의 버튼, 하나의 소비로 이어졌고, 그것은 또 다른 변화의 씨앗이 되었다.


만약 자판기 속 음료들이 누군가의 계획에 의해 일괄적으로 결정된다면, 나는 오늘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모두가 같은 음료만 마시고, 같은 가격을 지불한다면, 우리는 결국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게 된다. 다양성은 사라지고, 필요는 무시되며, 혁신은 멈춘다. 시장경제는 불완전하지만, 가장 유기적이고 가장 인간적인 시스템이다. 선택이 모이고, 선택이 경쟁을 낳고, 그 경쟁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든다. 우리는 실패도 하고, 만족도 하고, 후회도 하지만,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더 똑똑한 소비자가 된다. 그리고 시장도 함께 성장한다.


이 자판기는 누군가의 공장에서 만들어졌고, 그 공장은 누군가의 창의력으로 세워졌다. 그 안에 들어간 음료는 다른 누군가의 연구실에서 태어났고, 수많은 배송 기사들이 정해진 시간 안에 이 자리에 도착하게 했다. 내가 단지 천 원을 넣고 누른 버튼 하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거래와 시스템 위에 있는지를 생각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시장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살아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은 바로 우리 모두의 선택 그 자체다.


내가 고른 음료 하나가 단지 내 목을 축이는 데 그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시장의 메커니즘 속에서 작지만 분명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이 놀랍다. 우리는 흔히 경제를 거대한 통계나 금융의 언어로만 이해하지만, 사실 그것은 언제나 우리의 일상 속, 아주 작고 반복적인 선택들에서 비롯된다. 자판기 앞의 3초. 그건 나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었다. 수많은 거래가 쌓이고, 수많은 신호가 흐르고, 수많은 가능성이 연결되는, 살아 있는 경제의 중심이었다. 나는 오늘도 선택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 세상을 조금씩 움직인다.


버튼 하나가 세상을 바꾸진 않아도, 내 일상을 바꾸고, 시장의 흐름을 만든다. 이것이 내가 시장경제를 믿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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