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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회계장부, 가격이 말하는 자유 —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를 읽고

글쓴이
최지효 2026-08-26

회계학과 경제학을 함께 공부하면서 나는 늘 하나의 질문을 품고 있었다. 시장은 수많은 개인의 선택을 어떻게 하나의 질서로 수렴시키는가.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는 이 질문에 대해 회계학도로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그 답의 핵심은 가격이며,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가격을 하나의 거대한 정보시스템으로, 곧 회계가 기업 내부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사회 전체 차원에서 수행하는 장치로 이해하게 되었다.


회계의 본질은 기업 내부의 자원 배분에 필요한 정보를 측정하고 전달하는 데 있다. 재무제표는 경영진과 투자자, 채권자에게 자원이 어디에 잘못 쓰이고 있는지, 어디에서 초과수익이 발생하는지를 신호로 전달한다. 프리드먼이 강조하는 가격기구도 정확히 같은 기능을 사회 전체 수준에서 수행하되, 여기에는 정보 전달을 넘어서는 힘이 두 가지 더 있다. 하나는 개인이 그 정보에 반응해 스스로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이끄는 유인의 힘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게 형성된 대가를 각자의 기여에 따라 배분하는 소득분배의 기능이다. 가격이 오른다는 신호를 받은 생산자가 자원을 그리로 옮기는 것은 누가 지시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익의 크기는 그가 시장에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을 제공했는지를 반영한다. 물론 두 체계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도 존재한다. 기업 내부의 회계는 상사와 감사, 이사회라는 위계적 통제 속에서 작성되고 검증되는 관리의 언어인 반면, 시장의 가격은 어떤 중앙의 통제도 없이 무수한 개인들의 자발적 거래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자생적 질서의 언어다. 회계가 정보를 통해 신뢰를 만든다면, 가격은 통제 없이도 정보와 유인과 분배를 동시에 수행하며 개인의 자발적 선택을 하나의 방향으로 정렬시킨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정교한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이 자발성이야말로 프리드먼이 지키고자 한 자유의 실질적 내용이며, 나는 이 지점에서 회계와 가격의 유비가 단순한 정보 전달의 차원을 넘어선다는 것을, 그리고 동시에 그 유비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것을 함께 깨달았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대공황의 원인을 자유시장의 실패가 아니라 통화정책 실패로 재해석하는 대목이었다. 프리드먼은 연방준비제도가 통화량을 적절히 관리하지 못한 것이 대공황을 심화시켰다고 분석하는데, 이는 경제분석 수업에서 배운 통화정책의 파급경로와 정확히 맞닿아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주장이 사후적으로 검증 가능한 데이터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념적 선언에 그치지 않고 통화량 추이라는 구체적 지표를 근거로 제시하며, 이는 회계와 재무분석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특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표면적인 경기지표만 보고 그 아래에서 실질 유동성이 얼마나 위축되고 있었는지를 놓친 당시의 정책 당국은, 이익 숫자만 보고 그 이면의 흐름을 놓치는 국가적 규모의 재무 분석 오류를 반복한 셈이다. 어떤 층위의 판단이든 표면의 지표와 그 이면의 실질을 함께 읽어야 한다는 원칙을, 나는 이 역사적 사례를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회계기준이나 공시제도를 자유시장 원리와 대립하는 것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 처음에는 정보 비대칭을 완화하기 위해 규제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생각했지만, 다시 짚어보면 회계기준과 공시제도는 국가가 시장을 통제하기 위해 위에서 부과한 장치라기보다, 시장 참여자들이 거래를 지속하기 위해 스스로 요구하고 합의해 온 신뢰의 규칙에 가깝다. 낯선 상대와 거래하려면 서로가 내놓는 정보를 믿을 수 있어야 하고, 그 믿음을 뒷받침하는 공통의 회계언어가 없으면 애초에 자발적 교환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 실제로 복식부기와 재무제표 양식은 국가가 먼저 설계한 것이 아니라, 상인들이 오랜 거래 관행 속에서 스스로 필요에 의해 발전시킨 것이었고, 법과 감독기관은 그 뒤를 좇아 최소한의 공통 규칙으로 정리했을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회계기준은 시장을 억누르는 규제가 아니라, 자유로운 거래가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뒷받침하는 인프라이자 시장이 스스로 만들어낸 자생적 질서의 일부에 가깝다. 반면 프리드먼이 경계한 가격통제나 진입장벽은 이와 성격이 전혀 다르다. 그것은 시장 참여자들이 자발적으로 합의한 것이 아니라 외부의 힘으로 부과되며, 가격이라는 신호 자체를 왜곡해 개인의 자발적 선택이 들어설 자리를 없애 버린다. 신뢰를 뒷받침하는 자생적 장치와 신호를 왜곡하는 외부의 개입을 구분하는 것이야말로 자유시장의 원리를 지키면서도 시장의 작동 조건을 이해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계량적 투자와 자산배분에 관심을 둔 사람의 입장에서 다시 읽으면, 좋은 투자란 결국 왜곡되지 않은 가격이 전달하는 정보를 얼마나 정확히 해석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하지만 이 책이 내게 남긴 더 근본적인 것은 투자 기법이 아니라, 자유로운 개인의 선택이 쌓여 사회 전체의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한다는 믿음 그 자체였다. 회계가 기업 안에서 신뢰의 언어를 만들듯, 가격은 사회 전체에서 자유의 언어를 만든다. 다만 회계의 신뢰가 감사와 규정이라는 통제 장치로 뒷받침되는 것과 달리, 가격이 만드는 자유의 언어는 그것을 존중하고 지키려는 개인들의 자발적 합의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는 점에서 훨씬 더 취약하고, 그래서 더 소중하다. 이 언어가 훼손되지 않도록 지키는 것은 결국 소수의 정책 결정자가 아니라, 그 언어를 매일 읽고 쓰는 수많은 개인들의 자발적 거래와 신뢰에 달려 있다. 《선택할 자유》는 결국 그 언어를 지켜내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회계학도의 시선으로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설득해 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