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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규제와 선택할 자유

글쓴이
손예슬 2026-08-26

『선택할 자유』를 펼치기 전, 나는 '자유'라는 단어를 꽤 낭만적으로만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원하는 곳에 가는 것 정도로만 여긴 것이다. 그런데 밀턴 프리드먼이 말하는 자유는 훨씬 더 현실적이고 무거웠다. 그것은 낭만이 아니라 책임을 전제로 한 선택이었고, 개인의 삶뿐 아니라 한 나라의 흥망을 가르는 기준이었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은 단순하다. '자유와 평등, 무엇을 먼저 세워야 하는가.' 프리드먼의 답은 명확하다. 평등을 자유보다 앞세우면 결국 둘 다 잃게 되지만, 자유를 먼저 세우면 그 부산물로 더 큰 평등까지 얻게 된다는 것이다. 처음엔 낯설었다. 평등을 목표로 삼는 것이 왜 오히려 평등을 해친다는 것일까. 하지만 결과의 평등을 강제로 만들어내려는 힘은 결국 누군가의 선택권을 빼앗는 방식으로만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힘은 처음에는 선한 목적을 내걸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힘을 쥔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쓰이게 된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정부 개입의 '의도'와 '결과'가 얼마나 자주 어긋나는가에 대한 대목이었다. 좋은 뜻으로 시작한 규제나 복지 정책이 실제로는 의존성을 키우고 경쟁을 막으며,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보다 이미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은 뼈아프게 다가왔다. 최저임금, 청년 지원금, 각종 인허가 규제까지,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여러 사례를 통해 목격해왔다. 프리드먼은 이러한 괴리를 이론이 아니라 대공황과 복지국가의 실험이라는 실제 역사를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 책에서 또 하나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연필 한 자루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한 비유였다. 연필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무를 벌목하는 사람부터 흑연을 캐는 사람, 도료를 만드는 사람까지 수천 명의 손길이 필요하지만, 그 누구도 서로를 알지 못하고 명령을 주고받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그들은 각자의 이익을 좇아 움직였을 뿐인데 결과적으로 연필이라는 하나의 물건이 만들어진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지, 그 당연함 뒤에 얼마나 정교한 자발적 협력의 그물이 있는지를 새삼 느꼈다.


이 책을 덮고 최근 정부가 발표한 2026년 세제개편안을 보면서, 나는 프리드먼의 통찰이 지금도 얼마나 정확히 들어맞는지 실감했다. 정부는 지난 8월 3일, '생산적금융 ISA'라는 계좌를 새로 만들어 국내 상장주식과 국내 주식형 펀드에 투자하는 경우에만 이자와 배당소득을 전액 비과세하고, 청년에게는 납입금의 10%까지 소득공제를 해주겠다는 개편안을 내놓았다. 아직 국회 심의를 앞둔 안이지만, 계획대로라면 같은 돈이라도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은 이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언뜻 보면 세금을 깎아주는 후한 정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프리드먼의 눈으로 다시 보면, 이것은 규제와 정반대의 얼굴을 하고 있을 뿐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을 하지 말라고 직접 명령하지는 않지만, 특정 방향으로만 혜택을 몰아줌으로써 결국 개인의 선택을 은근히 유도하기 때문이다. 프리드먼은 정부가 시장 실패를 교정할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누가 득을 보고 손해를 보는지를 정부가 정확히 가려내기는 어렵다고 경고했다. '생산적'인 자산이 무엇인지를 국가가 정의하는 순간, 그 기준 밖의 선택은 은연중에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선택이 되어버린다. 세금을 줄여주는 정책조차 이렇게 자본의 흐름을 설계하는 '보이지 않는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프리드먼이 반세기 가까이 전에 던진 경고가 형태만 바꾼 채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가 말한 '선택할 자유'란 결국 세금을 깎아주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혜택의 대상을 누가 정하느냐의 문제였던 셈이다.


그 개편안은 실제 첫 투자 계좌를 터서 미국 주식에 투자하고 싶었던 나에게 아주 실감 나는 질문으로 다가왔다. 높은 성장이 기대되는 해외 자산에 투자하고 싶다는 분명한 선호가 있었음에도, '국내 주식 비과세'라는 발표 내용을 보는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개편안이 시행되면 아낄 수 있는 세금을 계산하며, 내 진짜 투자 판단을 접고 정부가 혜택을 그어놓은 국내 주식으로 방향을 틀어야 하나 고민했던 것이다. 아직 국회를 거치지도 않은 계획 하나가, 벌써 내 선택의 무게중심을 흔들어 놓았다.


동시에 이 책은 자유가 결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일깨워 준다.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고, 선택에는 결과에 대한 감당이 뒤따른다. 나는 이 지점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내 삶의 여러 선택 앞에서 얼마나 스스로 책임지려는 자세로 임했는가. 누군가, 혹은 어떤 제도가 대신 답을 정해주기를 바랐던 순간은 없었는가.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기보다 내가 스스로 무엇을 감당할 수 있는가를 묻는 태도는, 거창한 정치철학이기 이전에 한 개인의 삶의 자세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경험을 하고 나니, 좋은 의도를 내건 정책조차 그 안을 뜯어보면 누군가의 선택을 은근히 제한하고 있지는 않은지 끝까지 따져 묻는 태도가 왜 중요한지 알 것 같았다. 세대·계층 간 격차가 벌어질수록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기대는 앞으로도 커지겠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언제나 정부일 필요는 없다.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구조를 넓혀갈 때, 더 다양한 시도가 가능해지고 실패한 사람도 다시 도전할 기회를 얻는 사회가 될 수 있다.


『선택할 자유』를 덮으며 나는 자유를 단순한 권리가 아니라 매일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오늘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 결과를 나는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을 계속 던지는 것이야말로 이 책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