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의 가면을 벗고 시장의 유인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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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나영 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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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 경제를 만나다》를 읽고 —
- 도덕적 당위에서 법경제학의 눈으로
그동안 나에게 법이란 언제나 도덕적 정의나 형평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대상이었다. 약자를 보호하고 사회적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라면 법은 마땅히 엄격하고 강력한 규제의 칼날을 휘둘러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법은 당연히 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단편적인 믿음이 내 사고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자유기업원이 발간한 《법, 경제를 만나다》를 읽어 내려가며, 그동안 지녀온 관점에 커다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법과 제도가 인간의 합리적 선택과 시장 기능에 얼마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법을 단순히 도덕적 선언이나 징벌적 통제 도구로 보지 않는다. 대신 법이 시장 참여자들의 유인(Incentive) 구조와 거래비용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정밀하게 추적하는 ‘법경제학’의 프레임을 제시한다. 선의로 포장된 법이라 할지라도 시장의 생리를 무시하고 인위적인 통제를 가할 때, 도리어 시장 전체의 후생을 저해하고 약자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 현실 속 규제의 역설: 배달 수수료와 청년의 시간값
책을 읽으며 얻은 법경제학적 렌즈를 가장 먼저 대입해 본 곳은 바로 나를 포함한 20대 청년들의 일상이었다. 학비와 용돈을 벌기 위해 배달 알바에 뛰어드는 라이더 청년들, 그리고 일상적으로 배달 앱을 이용하는 대학생들에게 최근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논의되는 ‘플랫폼 수수료 법적 제한’은 매우 직접적인 이슈다.
처음 플랫폼 수수료 규제 소식을 접했을 때 나의 반응은 대다수의 대중과 다르지 않았다. 소상공인의 부담을 덜어주는 법이니 당연히 좋은 취지이자 필요한 개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에서 다룬 ‘가격 규제의 부작용’과 ‘인센티브 분석’을 대입해 보자 곧바로 전혀 다른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을 법으로 억누르면, 시장은 가만히 멈춰 서서 그 통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플랫폼 기업은 제한된 수수료로 인한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다른 우회로를 찾을 수밖에 없다.
결국 그 결과는 라이더에게 지급되는 배달료의 인하나, 일반 소비자가 부담해야 할 배달비의 상승이라는 부작용으로 나타난다.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도덕적 명분과 선의로 시작된 법이, 역설적이게도 스스로 용돈을 벌려는 청년 라이더와 지갑이 가벼운 대학생들의 주머니 부담으로 고스란히 돌아오는 ‘규제의 역설’을 현실에서 목격하게 된 것이다.
- ‘타다 금지법’의 유산과 가로막힌 청년 창업
이러한 규제의 역설은 스타트업 창업이나 테크 기업 취업을 꿈꾸는 청년 세대에게 더욱 뼈아픈 위기감으로 다가온다. 과거 ‘타다 금지법’을 시작으로, 최근 로톡이나 삼쩜삼, 강남언니 등 혁신적인 플랫폼 서비스를 향해 쏟아지는 기존 전문직 단체들의 역풍 규제는 우리 사회가 마주한 진정한 비극이다.
나를 비롯한 또래 동기들은 밤마다 택시가 잡히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거나, 모바일을 통해 더 합리적이고 편리한 서비스를 이용하길 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은 왜 번번이 기존 이익집단의 기득권만을 보호하고 새로운 혁신을 가로막는 것일까? 이는 책에서 강조한 ‘시장친화적 법’의 부재가 가져온 전형적인 폐해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신규 진입 장벽을 높이는 법안들은 시장의 자발적 경쟁을 억누르고 소비자 후생을 저해한다. 법이 미래의 혁신이 아닌 과거의 질서와 기득권 보호에만 머물러 있다면, 우리 세대가 아무리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놓는다 해도 그 어떤 변화도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라는 깊은 위기감을 느꼈다.
- 기업을 옥죄는 사슬이 아닌 예측 가능한 '게임의 규칙'
그렇다면 법은 기업과 시장에 있어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흔히 대중은 법을 ‘기업의 탐욕을 억제하고 자유를 제한하는 사슬’로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명확하고 시장친화적인 법이 오히려 기업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해 보인다. 법이 법치주의에 입각하여 사유재산권과 계약의 자유를 확실하게 보장해 줄 때, 기업은 비로소 미래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리스크를 예측할 수 있는 ‘명확한 게임의 규칙’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규칙이 투명하고 예측 가능해야만 기업은 단기적인 이익 추구를 넘어, 장기적인 기술 혁신과 대규모 투자에 담대하게 나설 수 있는 정교한 인센티브를 얻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활발히 논의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나 상생 역시 법적 강제가 아닌 ‘시장 친화적 인센티브’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도덕적 명분만 앞세워 상생이나 환경 보호를 법으로 강제하는 규제안들은 기업의 경영 활력을 떨어뜨리고 편법을 양산하는 부작용을 낳을 뿐이다. 진정으로 기업과 사회의 선순환적 상생을 이끌어내려면, 법이 감시자나 규제자로 군림하는 대신 착한 경영과 사회적 기여가 기업의 브랜드 가치 상승이나 세제 혜택 등 실질적인 이익으로 직결되도록 인센티브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법경제학이 지닌 진정한 묘미이자 지혜다.
- 세상을 해석하는 강력한 렌즈를 얻다
《법, 경제를 만나다》는 나에게 단순한 이론적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을 해석하는 강력한 새로운 렌즈’를 선물해 주었다. 법이 제정되는 배경 뒤에는 수많은 인간의 이기심과 유인 구조, 그리고 거래비용의 계산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뉴스나 사회적 이슈를 접할 때, 나는 어떤 법안이나 정책이 내세우는 감정적·도덕적 프레임에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 그 아름다운 명분 뒤에 숨겨진 실제 경제적 인센티브와 시장 참여자들이 치러야 할 파급 효과를 다각도로 따져보는 성숙하고 냉철한 시각을 유지하고자 한다. 법이 선의의 가면을 벗고 시장의 자발적 역동성과 사유재산권이라는 든든한 반석 위에 서 있을 때, 비로소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참된 번영이 피어날 수 있다는 진리를 가슴 깊이 새기며 독서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