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합의, 경제학자들이 바라본 `제도적 역설`…회사 볼모 잡은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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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업원 2026-06-03 , 파이낸셜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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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노사가 지난 5월 21일 총파업을 앞두고 극적인 합의에 도달하고, 27일 잠정 합의안이 조합원 투표 결과에서 가결되면서 파업은 피하게 되었다.
이번 합의는 총파업이라는 파국을 피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나, 사측이 상당히 양보한 합의로 평가할 수 있다. 별도의 특별경영성과급 제도를 신설하고 해당 성과급에 지급률 상한을 두지 않기로 한 점은 노조의 핵심 요구를 상당 부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측이 막판에 양보할 수밖에 없었던 핵심 이유는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삼성전자가 부담해야 할 잠재적 손실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같은 첨단 제조업 기업에서 조업 중단은 단순히 하루치 생산 차질로 끝나지 않는다.
반도체 산업은 연속 공정·납기 준수·고객 신뢰·글로벌 공급망 안정성이 결합되어 있다. 단기간의 파업도 생산 일정·고객사 대응·재고 운용·수주 신뢰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사측이 노조의 요구가 과도하다고 보더라도, 파업으로 인한 잠재 손실을 피하기 위해 상당한 양보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역설'이 발생한다. 파업이 회사에 더 큰 손실을 줄수록, 노조의 협상력은 더 커진다는 역설이다.
특히 단 하루의 조업 중단만으로도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대기업일수록 파업 예고 자체가 강력한 협상 무기가 된다. 이는 노동자의 정당한 단체행동권과는 별개의 제도적 문제를 제기한다.
파업권은 보호되어야 하지만 파업이 기업의 조업 자유를 봉쇄하고, 그 결과 노조가 기업의 투자·성과 배분·경영 판단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는 노동권 보호의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다.
◇ 삼성전자 노조의 총파업 협박이 낳은 결과…
파업의 피해도 삼성전자 내부에만 머물지 않는다.
삼성전자가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면 글로벌 빅테크 고객사들이 직접 손실을 입을 수 있고,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삼성전자가 아닌 다른 거래처를 찾을 가능성도 커진다. 삼성전자의 장기적 신뢰도와 수주 경쟁력이 약화되며 결국 삼성전자와 거래하는 협력업체들에게도 연쇄적 타격을 준다.
더 나아가 삼성전자라는 대한민국 대표기업 조차 강성 노조의 파업 리스크에 의해 생산과 납기 투자 계획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이미지가 고착화되면, 글로벌 투자자들은 한국 시장을 더 위험한 투자처로 인식할 수 있다. 이는 한국 경제 전체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따라서 이번 합의로 파업이 유보되었다고 해서 문제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번 사태는 한국 노동시장에서 대기업 노조의 협상력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조업 중단이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고 현행 제도가 파업 중 대체근로 투입을 강하게 제한한다면, 파업권은 대기업 노조에게 압도적인 협상 무기가 된다. 시장에서 대체 가능한 인력과 대체 불가능한 핵심 인력이 연대 파업을 할 수 있는 구조에서는 노조 전체의 협상력이 실제 시장가치 이상으로 커진다. 이는 일부 대기업 노조 협상력의 비대칭을 강화하는 제도적 배경 중 하나로 작용한다.
자유기업원이 지난달 28일 펴낸 CFE 리포트 No.33 '삼성전자 노사 합의와 대체근로 규제의 법경제학적 고찰'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심승규 아오야마가쿠인대학교 국제정치경제학부 교수와 지인엽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공동으로 집필했다.
자유기업원 리포트는 구체적으로 파업 시 대체근로 투입을 제한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43조를 검토하고,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통해 파업권 보호와 조업 계속 자유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재설계할지 살펴보았다.
◇ 파업 예고만으로 '사측 수조원 양보' 이뤄지는 구조는 그대로
리포트는 "파업권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며 노동자의 정당한 단체행동권은 보호되어야 한다"며 "다만 그 보호가 기업의 조업 계속 자유, 투자자의 이해, 협력업체의 생존, 글로벌 공급망 신뢰, 한국 경제 전체의 안정성을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도록 제도적 균형을 찾자는 것"이라고 그 취지를 밝혔다.
리포트에서 지적한 대기업 노조 협상력의 비대칭을 강화하는 문제의 핵심은 바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43조다. 이 조항은 쟁의행위 기간 중 외부 인력 채용·대체 및 도급·하도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제43조의 제도적 취지는 파업권의 실효성 보장이지만, 경제학적으로는 시장에서 대체 가능한 인력과 대체 불가능한 핵심 인력이 연대 파업으로 동일한 협상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그 결과 성과급 요구가 개별 사업부의 수익성이나 노동자의 시장가치와 분리되어 전체 조업 중단 능력을 바탕으로 결정될 위험이 있다는게 리포트의 설명이다.
이번 합의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그대로 드러났다.
노조 요구안의 70%를 DS부문 전체에 균등 배분하는 구조는, 메모리처럼 흑자를 내는 사업부뿐 아니라 파운드리·시스템LSI 등 적자 또는 저성과 사업부 직원에게도 동일한 재원이 배분되도록 설계된 것이다.
리포트는 성과급이 성과에 대한 보상이라는 본래의 기능을 벗어나, 조업 중단 능력에 기반한 집단 배분 요구로 변질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리포트는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비교 분석했다.
미국의 경우, 경제파업과 부당노동행위 파업을 구별해 전자에 대해서는 영구 대체근로까지 허용한다. 이는 파업 요구가 시장가치를 이탈할 경우 사측이 대체 인력을 투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협상력이 실제 노동시장 조건과 괴리되는 현상을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
일본에서는 일반적인 대체근로 금지 조항을 두지 않되, 직업안정법 제20조와 노동자파견법 제24조를 통해 공공직업안정소·파견사업자 등 외부 노동시장 중개기관이 쟁의 중인 사업장에 새로 인력을 공급하는 방식만을 제한한다.
지인엽 교수는 리포트에서 법제도적 개선방향으로 ▲경제파업과 부당노동행위 파업 구별 및 대체근로 제한 차등 설계 ▲현행 노조법 제43조 제3·4항 필수공익사업 차등규율 원칙을 쟁의 목적·산업 특성으로 확장 ▲파업 의결 요건·사전 통지 의무·개시 시한 등 절차적 규율 강화로 일부 강경 지도부에 의한 파업 남용 견제 ▲원·하청 약자 노조 협상력 보강 '노란봉투법'과 대기업 노조 비대칭 협상력 조정 정합적 패키지로 설계 등을 제안했다.
심승규 교수는 "이번 삼성전자 합의는 파국을 막았다는 점에서 다행이지만, 파업 예고만으로도 수조 원의 성과급 양보가 이뤄지는 구조 자체는 그대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심 교수는 "파업권은 당연히 보호되어야 하지만, 그 보호가 기업의 조업 계속 자유와 투자자·협력업체의 이해를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도록 제도적 균형을 다시 설계할 때"라고 강조하고 나섰다.
또한 "잠정합의 직후 삼성바이오로직스·현대자동차 등 다른 기업에서도 영업이익 대비 성과급 요구가 확산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번 삼성전자 사례가 반복적인 관행으로 굳어지기 전에 제도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