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은 따뜻했다

김현정 / 2020-12-04 / 조회: 2,699

오랜 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 제일 처음 부딪치는 과제는 집과 살림 장만이다. 회사 근처에서 자리 잡으려 했던 야무진 꿈은 엄청난 집값으로 인해 금세 접어야 했다. 북서쪽으로 14km. 회사와 집의 거리이면서 멀어져간 꿈과 현실의 거리이다. 새로운 도시에 집을 겨우 구하고, 남은 예산으로 텅 빈 집을 채우려니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이때, 누군가가 귀띔해준 말, “당근 하세요.” 당근을 먹으라는 것도 아니고 하라니, 이게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나도 당근에 빠져들고 말았다. 

 

빠듯한 예산으로 시작된 중고 거래였지만 집은 빠르고 흡족하게 채워졌다. 사람들이 내놓은 물건들을 이리저리 비교하며 품질과 가격을 고려해 구입했다. 꽤 괜찮은 물건, 가끔은 사용하지 않은 새 물건을 반값도 안 되는 가격에 구입하기도 했다. 가끔 나도 물건을 내놓기도 했다. 어느 날 150불을 주고 산 미사용 주방용품을 큰맘 먹고 10만 원에 내놓았는데 아무 연락도 받지 못했다. 8만 원으로 내려봤지만, 상황은 같았다. 6만 원으로 내려서 겨우 팔았다. 싸게 살 때는 그렇게 좋더니, 물건을 팔려고 보니 속이 아리다. 그래도 보이지도 않는 집 어느 구석에 안 쓰고 쌓아두느니 파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이게 바로 시장인가 보다. 


첫 거래 때가 생각난다. 혹시 사기를 당할까 잔뜩 긴장했지만,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옆 아파트에 산다는 아주머니는 막 이사 왔다는 내 얘기를 듣더니 남는 옷걸이를 주시고 동네 맛집도 알려주셨다. 어떤 분은 책 거래를 할 때, 한 권 더 주기도 하셨다. 안 쓰는  물건을 공짜로 나눠주신 분도 있다. 뭔가, 콩나물 1,000원 어치를 사면 조금 더 얹어 주시던 그 옛날 동네 장터 아주머니의 따뜻함을 오랜만에 느낀 것 같았다. 기프트콘은 직접 만나지 않고 자동이체로 거래했다. 또 첫 온라인 거래인만큼 사기당하지 않을까 잔뜩 걱정했지만, “맛있게 드세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잘 도착한 기프트콘을 보며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거래했던 분을 마트에서 만나 인사했던 적도 있다. 


좋은 물건을 싼 값에 얻으려는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시작된 거래였지만, 거래를 통해 우리 사회가 참 신뢰할만하다는 믿음이 생겼다. 물건을 먼저 볼 수 있어 거래 물건의 품질도 안심할 수 있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재미났다. 또 직거래를 위해 여기저기 다니며, 새로운 도시에 대한 낯섦은 익숙함으로 조금씩 변했다. 


언제부턴가 온라인과 대형 상점 구매가 주를 이루고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이 줄어들며 인간성이 점점 메말라가는 것 같았다.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는 필요 없어지고, 본적도 없는 내 이웃은 더 이상 이웃이 아니었다. 버려지는 물건도 많아졌다. 할인 받으려 대량으로 구매한 물건은 집안 어딘가로 사라지고 유통기한을 넘기기 다반사였다. 이때 등장한 동네 온라인 중고 시장은 개인의 경제적 이익과 사회의 유익, 즉 다수의 행복을 만족시키는 새로운 시장의 형태가 아닌가 싶다. 유익이란 상호작용을 통해 전달되는 따뜻함과 신뢰감이다. 그리고 꼭 의도치 않더라도 재활용을 통해 환경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도 있다. 


서로의 이익과 유익이 공유되는 경제 체제는 멋지지 않은가!


여름 기사를 보니 당근이 전자상거래 앱 부문에서 2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중고 거래 앱 중에서는 1위다. 중고 거래가 많아진 이유는 불황이 주원인이겠지만 그 중, 당근이 1위를 한 이유는 한번 생각해 볼 만하다. 내가 물건을 거래를 하며 이웃과 연결되고 동네에 소속감이 생긴 것과 그 이유가 맞닿아 있지 않을까.   

 

고등학교 때,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배우며 참 이상한 단어들이 조합된 냉정한 글이라고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손’, '이기심’, '이익’, '경쟁’, '유익’, '자유 방임’. 책임감 없고 차갑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단어들의 전제에는 『도덕감정론』의 '도덕성’과 '공감(sympathy)’이 존재해야 한다. 여기서 공감이란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이해하는 마음이다. 물론, 인간이 타인을 생각할 때 마냥 이타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시장에는 제약과 규율이 존재한다. 


당근이 그어놓은 반경 6km 내 사람 간의 거래. 그것이 현재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이웃의 범위, 신뢰의 범위이며 이타성을 발휘할 수 있는 최대 거리인가 싶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최고 이익 추구와 모두의 유익을 위해 해야 할 것은,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이웃의 범위를 6km에서 더 넓게 확장하는 게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의 2년. 보이지 않는 손은 참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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