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곡동의 골목 식당들에서 찾은 시장경제의 따뜻함

김채연 / 2020-12-08 / 조회: 557

지난 10월, 저녁을 먹기에는 아직 이른 5시쯤에 우리 가족은 서울 중곡동을 찾았다. 집에서 차를 타고 40여분이 걸리는 중곡동에 굳이 찾아간 것은 TV 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중곡동의 음식점들이 나온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에는 중곡동의 한 골목에 위치한 자영업 식당 세 곳의 문제점을 변화시키는 과정이 소개되었다. 세 가게는 방송 이후 큰 인기를 얻었고, 우리 가족은 긴 줄에 서서 기다린 끝에 만둣국 가게과 분식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가게 운영방식의 문제점에 더해 코로나19 사태가 겹쳐지면서 손님의 발길이 끊겼던 가게들이 영향력 있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뒤로는 사람들이 멀리서 찾아오는 가게로 거듭난 것이다. 새로 개발한 메뉴로 인기가 많아진 한 가게의 사장님은 ‘손님이 늘어서 힘드시겠어요’ 라는 지인의 말에 웃으며 ‘힘들지만 감사한 일이죠’라고 답했다. 방송 출연 이후 중곡동 골목 상권의 경제가 활력을 띠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장님들의 마음 역시 훈훈해진 것이 방문자인 나에게도 한 눈에 보였다.


내가 흥미롭게 본 것은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경험이 골목 식당의 자영업자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시장경제 체제 내에서 치열한 경쟁에 적응하지 못한 자들’에서 ‘시장경제의 도움으로 회복하고 성장할 수 있는 이들’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흔히 언론과 미디어에서는 골목 상권이나 영세 소상인의 장사가 잘 되지 않는 이유를 그들이 대형 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렸다는 점에서 찾곤 한다. 법적으로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의무휴업일을 지정하게 된 것도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을 보호하고자 한 취지에서 나온 대안이다. 물론 대형마트의 운영을 제한했을 때 선택지가 없어진 소비자들의 수요가 전통시장이나 소상공인에게로 옮겨갈 것이라는 생각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는 상호 호혜와 공존을 위한 방법이라기보다는 한 쪽을 억제함으로써 다른 한 쪽을 살리는 방안에 불과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비롯해 작은 음식점들을 소개하며 시청자를 확보하는 방송 프로그램들은 시장경제에서 경쟁뿐만이 아니라 상호 호혜의 원리가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주로 방영되는 지상파 방송사들은 온전히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기보다는 공익적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기관들이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사들 역시 시청률 경쟁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을 소비자로 바라보고 그에 따라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하는 시장의 원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방송 취지에는 골목 상권을 살리려는 공익적인 목적도 있지만, 이러한 주제와 내용이 저녁 시간대에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골목 식당들이 가진 나름의 스토리가 방송사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면 이 식당들은 반대로 방송을 통해 가게의 경쟁력을 높이고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가령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백종원은 종종 가게들에게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거나 인테리어를 바꾸도록 권유해 가게의 경쟁력을 높여준다. 이 과정을 통해 골목 식당들은 시장경제 체제에서 언제나 경쟁에 뒤처지는 피해자가 아니라 특유의 역사와 개성을 살려 방송 프로그램과 호영향을 주고받는 적극적인 참여 주체가 된다. 


시장경제 체제는 작은 음식점들이 되살아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한편으로는 가게들이 긴장감을 놓지 않고 경쟁력을 유지하도록 채찍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식당에서 제공하는 재화와 서비스가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곧바로 반응하는 시장의 원리에 의해 가게들은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가게의 환경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것을 요구받는다. 음식의 맛이 달라지거나 점원이 손님에게 무례한 태도를 보이면 유명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음식점이더라도 인터넷과 SNS를 통해 순식간에 안 좋은 평가가 퍼지고 수요는 줄어들게 된다. 반대로 방송을 보고 온 손님들의 기대를 충족시킨 음식점은 소비자들의 좋은 평가에 의해 인기를 이어갈 수 있게 된다. 이 때 소비자는 음식점들이 안주하거나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고 계속해서 시장경제 안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역할을 한다.


시장경제는 흔히 끝없는 경쟁, 불평등, 혹은 착취 구조를 낳는 부정적인 체제로 생각되곤 한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사례는 시장경제의 원리가 방송사와 소상공인 모두에게 더 나은 길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소상공인은 법적인 배려를 받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취약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시장경제의 원리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경제주체가 된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TV 프로그램이 작은 음식점들을 출연시키는 것을 음식점에 대한 착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제적 불황의 시기에 골목 상권을 살리고자 하는 프로그램의 취지가 따뜻하고 인간적이라고 느낀다. 가령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출연한 한 사장님은 방송에 출연한 이후 손님이 늘어 가게를 열고나서 제일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말한다. 끝으로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자. 시장 경제는 경쟁에서 도태된 이들이 회복할 수 없는 위험하고 불공정한 체제에 불과한가?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어쩌면 시장경제는 자신의 상처를 건강하게 회복시키는 방법을 내재하고 있는 체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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