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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하면 손해, 이상한 금리체계

글쓴이
손호철 2026-05-27

우리는 '약자'라는 단어 앞에서 쉽게 무장해제된다. 약자를 돕는 일은 곧 선한 일이고, 그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냉혹한 것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약자를 돕겠다는 명분 아래 시장경제의 근본 원리를 무너뜨리고 있다면, 그 선의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최근 정부의 금융 정책을 살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대목이 있다. 햇살론, 새희망홀씨, 최저신용자 특례보증 같은 정책금융 상품들이 그것이다. 저소득자와 저신용자에게 시장 금리보다 현저히 낮은 우대 금리로, 그것도 더 많은 금액의 대출을 제공하는 정책이다. 언뜻 들으면 어려운 사람을 배려하는 따뜻한 정책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장경제의 원리에 비추어 보면, 이는 명백한 모순이다.


금리란 본질적으로 돈의 가치이며, 그 가격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신용, 즉 상환 능력과 상환 의지에 대한 평가다. 신용이 높은 사람은 돈을 빌려주는 입장에서 위험이 낮기 때문에 낮은 금리가 적용된다. 반대로 신용이 낮은 사람에게는 부도 위험을 반영한 높은 금리가 책정되는 것이 시장의 원칙이다. 이것은 차별이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 책정이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살 때 돈이 없는 사람에게 더 싸게 파는 가게는 없다. 그런데 유독 금융 시장에서만 이 상식이 뒤집어지고 있다.


더 깊이 생각해보면, 금리는 단순한 비용이 아니다. 경제학자 하이에크가 강조했듯, 가격은 시장 참여자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신호다. 금리라는 신호가 왜곡되면 자원 배분 전체가 흔들린다. 낮은 금리 보조를 받은 저신용자는 상환 능력을 초과하는 대출을 받게 되고, 이는 역선택(adverse selection)과 도덕적 해이를 동시에 심화시킨다. 성실히 신용을 쌓고 상환해 온 사람은 높은 금리를 부담하면서도 대출 한도는 오히려 적다. 과연 누가 신용 관리에 노력을 기울이겠는가? 열심히 일하고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손해를 보는 구조는 결국 사회 전체의 경제적 활력을 떨어뜨린다. '노력하면 손해'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순간, 시장경제의 근간인 자발적 동기와 공정한 경쟁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또한 이런 정책의 재원은 어디서 오는가? 정부가 시장 금리와 우대 금리의 차액을 메워주는 이자 보전분은 사실상 세금으로 충당되는 암묵적 보조금이다. 이는 형식만 대출일 뿐, 실질적으로는 이전지출의 성격을 띤다. 금융기관이 정책적으로 저신용자에게 낮은 금리를 적용하면, 그 손실은 고스란히 다른 고객의 금리 인상이나 수수료 확대로 전가된다. 이른바 '보이지 않는 세금'이다. 선량하게 자기 몫을 다하는 다수의 국민이 소수를 위한 정책의 비용을 조용히 떠안고 있는 셈이다.


물론 사회적 안전망은 필요하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은 공동체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장의 가격 기능을 왜곡하는 방식으로 이를 실현하려 해서는 안 된다. 저소득층에게 필요한 것은 시장 원리를 비틀어 만든 특혜 대출이 아니라, 직접적인 소득 보전이나 직업 훈련·취업 연계 지원처럼 시장 신호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실질적인 자립을 돕는 방식이다.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오래된 격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약자'라는 프레임은 강력하다. 그 앞에서 합리적 비판은 쉽게 '약자 혐오'로 매도당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약자를 위한다면, 그들을 영원히 수혜의 대상으로 고정시키는 정책이 아니라, 시장 안에서 당당한 주체로 설 수 있게 하는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시장경제의 원리를 존중하는 것은 냉정함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구성원에 대한 깊은 신뢰의 표현이다.


약자는 과연 선량한가. 이 물음은 약자 개인의 도덕성을 묻는 것이 아니다. '약자 보호'라는 이름 아래 무비판적으로 쏟아지는 이전지출과 암묵적 보조금 정책이 과연 선량한 결과를 낳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시장의 원칙을 무시한 선의는 때로 악의보다 큰 해를 끼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성적 동정이 아니라, 냉철한 원칙 위에 세워진 진짜 배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