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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최고가격제, 유가를 안정시킬 수 있을까?

글쓴이
안서정 2026-05-27

1. 급격하게 치솟은 유가, 흔들리는 한국의 에너지 안보
필자는 요즘 습관적으로 주유소 앞 가격표를 확인한다. 지난 2월 28일 시작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으로 인해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된 이후, 일종의 습관이 되었다. 세계 원유 공급의 약 20%를 책임지는 ‘핵심 에너지 수송경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배럴당 70달러 내외였던 유가가 100달러를 돌파했다. 실제로 전쟁 직전 주간 평균 유가가 리터(ℓ)당 1,600원대였던 것과 비교해 가격이 1,900원을 넘어섰으며, 일부 주유소는 리터당 2,000원까지도 기록했다. 유가의 상승은 단순히 주유소 기름값 인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생산 원가와 물류비를 높여 소비자 물가 상승과 기업의 수익성 악화를 초래하면서 수출을 포함한 국가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원유 수입의 약 7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이를 결코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 없다. 전 세계가 1970년대 석유 파동 이후 최악의 에너지 위기를 우려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제’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석유제품 공급 도매가격에 상한선을 설정해 시장 전반에 가격 인하 압력을 유도하는 것이다. 소비자에게 곧바로 적용되는 소매가격을 직접 통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30년 만에 정부가 석유 시장 가격에 직접 개입하는 이례적인 조치다. 하지만 정부가 가격표 숫자를 강제로 고정한다고 해서 전 세계를 덮친 에너지 위기라는 실체적인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것일까?

2. 가격의 역할과 가격통제의 효과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인 ‘가격’의 본질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시장에서 ‘가격’이란 단순히 물건의 값을 나타내는 숫자가 아니다. ‘시장가격’은 수많은 수요자와 공급자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되며, 최종적으로는 소비자가 구매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수량이 생산자가 공급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수량과 일치하는 지점인 ‘균형가격’을 향해 움직인다. 이 과정에서 가격은 수요·공급 상황을 반영해 개별 경제주체에게 합리적 의사결정 기준을 제시하는 '신호등‘의 역할을 한다.
만약 시장 가격과 균형 가격이 일치하지 않는 불균형 상태가 되면, 시장은 자연스럽게 이를 바로잡기 시작한다. 예컨대 시장가격이 균형가격보다 높으면 공급이 수요보다 많은 '공급 과잉' 상태가 된다. 이때 판매자들은 재고를 줄이기 위해 스스로 가격을 낮추게 되고, 낮아진 가격을 보고 소비자는 다시 구매하려한다. 반대로 시장가격이 균형가격에 비해 낮다면 소비자들은 너도나도 물건을 구매하려 경쟁하면서 ‘초과 수요’ 상태가 된다. 물량 부족으로 가격이 오르면서 큰 이익을 얻게 된 판매자들은 공급을 늘리고자 한다. 이처럼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변화를 민감하게 반영해, 개별경제 주체들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고 장기적으로 균형가격을 향해 수렴한다.
하지만 정부가 특정 목적을 위해 시장 가격에 직접 개입하는 '가격 통제'가 시작되면 이 역할이 마비된다. 특히 이번에 시행된 '석유 최고가격제(가격상한제)'는 시장의 균형 가격보다 낮은 지점에 '천장'을 설정하는 제도로 이러한 신호등을 꺼버리는 방식이다. 가격이 인위적으로 낮게 고정되면 저렴해진 가격을 보고 사려는 사람이 늘어나는 '초과 수요' 현상이 지속되는 반면, 생산자 입장에서는 낮은 가격 때문에 생산 유인을 느끼지 못하거나 생산원가를 감당하지 못해 물량을 줄이는 등 공급이 위축된다.

3. 단기적 성과 뒤 숨은 임계점
정부의 이번 결단은 즉각적인 수치로 나타났다. 최고가격제 시행 직후, 천정부지로 치솟던 국내 유가가 고점 대비 70원 내외로 하락하면서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1,800원대의 가격 안정화 흐름을 보였다. 유류세 인하나 직접 지원과 같은 정책과 비교했을 때 가격 급등 속도를 억제하고 소비자 부담을 완화했다고 평가되면서 단기적인 효과는 증명한 셈이다.
그렇다고 절대 안심할 수는 없다. 시장이 이러한 인위적인 압박을 언제까지고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가격이라는 신호등이 꺼지자, 벌써부터 부작용의 전조 현상이 관측된다. 국제 유가는 여전히 높은데 국내 공급가가 묶여있다 보니, 정유사-대리점-주유소 간의 유통망에서 이윤을 창출하지 못해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이다. 특히 석유대리점은 정유사와 달리 사후 정산을 보장받지 못했기 때문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4. 위기 속의 결단, 앞으로의 방향
중동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 속에서, 민생 경제의 붕괴를 막고자 가격 상한선을 설정한 것은 국가 차원의 대응으로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맥락이다. 또한 실제로 가격 안정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는 것도 사실이며, 치솟는 가격을 보고도 ‘시장이 알아서 해줄 것’이라고 손 놓고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나친 낙관주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정책의 이면 또한 분명히 알아야 한다. 최고가격제는 당장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지언정 이를 남발하거나 장기화할 경우 시장 왜곡과 공급 축소를 초래해, 정책적 타당성을 잃을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의 정책적 성과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대외 충격이 완화되는 시점에 맞춰 시장의 기능을 점진적으로 회복 시킬 대안에 대해 고민하는 일이다. 우리 경제가 직면한 에너지 안보 위기를 실질적으로 타파하기 위해서는 앞으로의 방향이 더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