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수강신청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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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안정필 2025-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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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신청 날 아침 10시, 캠퍼스는 보이지 않는 전쟁터가 된다. 마우스를 손에 쥐고 초 단위로 새로고침(F5)을 누르는 손가락은 떨리고 숨은 점점 짧아진다. 대학의 모든 서버가 동시에 비명을 지르고 누군가는 환호하고 누군가는 좌절한다. 누가 먼저 클릭하느냐에 따라 한 학기의 운명이 결정된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수강신청은 대학생판 시장경제였다.
1. 인기 강의와 수요·공급의 법칙
경제학의 첫 장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 가격은 상승한다.”
대학의 강의도 마찬가지다. 듣고 싶어 하는 학생은 많지만 좌석 수는 한정되어 있다. 특히 A+ 비율이 높거나 교수님의 평판이 좋은 강의는 항상 '완매진’이다. 공급(수강 인원)이 고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수요(학생의 희망)가 폭발하니 가격 대신 경쟁률이 오른다. 결국 수강신청 성공 여부가 시장 균형의 결과처럼 결정된다. 누군가는 클릭 한 번으로 기회를 얻고 누군가는 “대기번호 42번”이라는 숫자에 좌절한다. 교수님 한 분의 시간표조차 '희소 자원’이 되어버린 것이다.
2. 선택의 순간, 기회비용의 법칙
수강신청의 진짜 고민은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다. 전공필수, 교양, 학점 관리, 흥미, 시간표 편의성까지 이 모든 걸 동시에 만족시키기는 불가능하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기회비용은 바로 이때 등장한다. 한 과목을 선택하는 순간, 다른 과목을 듣지 못하는 비용이 발생한다. 나는 좋아하는 심리학 개론을 포기하고, 졸업 요건에 필요한 무역영어를 넣었다. 즉각적인 흥미보다 미래의 효용을 선택한 셈이다. 시장에서 소비자가 필요를 기준으로 구매 결정을 내리듯 나도 수강신청이라는 시장에서 합리적 선택을 한 것이다. 다만 그 선택이 만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한 학기가 지나면 때로는 “그 과목을 들을걸” 하는 후회가 찾아온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완전히 합리적일 수 없는 이유다.
3. 수강신청 대리제와 시장의 자율 조정
몇 해 전, '수강신청 대행’이라는 서비스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등장했다.
“수강신청 3만 원에 대신 해드립니다.”
공식적인 제도는 아니었지만 이는 시장의 자율 조정 메커니즘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시간이 부족하거나 기술에 자신 없는 학생은 돈을 주고 효율을 산다. 그만큼의 대가를 치를 의사가 있는 수요가 존재하니 공급(대행 서비스)이 생겨난 것이다. 물론 학교는 이를 금지하지만 시장의 논리는 언제나 인간의 필요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공식 제도가 허용하지 않아도 수요가 존재하는 한 시장은 반드시 새로운 형태로 균형을 찾는다.
4. 수강신청 서버와 시장의 한계
매 학기마다 터지는 서버 오류는 시장 실패의 상징 같다. 수많은 학생이 동시에 몰리며 시스템이 붕괴되고,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못한다. 공급 구조가 한계에 부딪히면 시장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학교는 서버를 증설하거나 시간대를 분리해 '수요 분산 정책’을 시행한다. 이것은 정부의 시장 개입과도 닮았다. 완전한 자유시장만으로는 효율적 분배가 어렵기에 적절한 개입을 통해 시장이 다시 안정을 찾는 것이다.
5. 클릭 한 번에 담긴 시장의 언어
수강신청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그 안에는 수요와 공급, 기회비용, 효율성, 시장 조정, 그리고 인간의 선택이 모두 담겨 있다. 학생은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과목을 선택하고, 학교는 제한된 자원을 분배하며 시장처럼 보이지 않는 손이 각자의 클릭을 통해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 시장에도 한계가 있다. 인기 강의를 얻지 못한 학생의 좌절, 불공정한 경쟁, 시스템의 오류는 시장이 인간의 욕망을 완벽히 충족시키지 못함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 학기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또다시 로그인한다. 왜냐하면 그 과정이 불완전하더라도 그 속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강신청은 경쟁이 아니라, 선택의 경제학이다.”
클릭 한 번, 그 짧은 순간에 시장경제의 모든 원리가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