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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재산권, 국가가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인간 존엄의 마지노선

글쓴이
임행연 2026-08-26

인간은 왜 국가라는 것을 만들었을까.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체는 과연 개인 위에 군림하며 그 삶을 재단할 자격을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는가. 오늘날 당연하게 여겨지는 민주주의와 헌법 질서 아래에서도, 우리는 수시로 공익(公益)이라는 거창한 이름 앞에 개인의 권리가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목격한다. 존 로크와 하이에크, 로버트 노직 등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권위자로 꼽히는 에릭 맥이 쓴 《로크는 왜 왕 앞에서 개인의 권리를 외쳤을까》는 이런 현대적 혼돈 속에서 길을 잃은 우리에게 17세기 자연법 사상가 존 로크의 치열한 목소리를 빌려 단호한 답을 건넨다. 그것은 바로 국가는 개인의 본질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 태어난 ‘대리인’에 불과하다는 뼈아픈 경종이다.


로크 사상의 핵심은 정부의 목적이 개인의 사유재산을 보존하는 데 있으며, 이를 침해하는 권력은 더 이상 복종의 대상이 아니라는 명제로 요약된다. 그는 국가가 존재하기 이전의 ‘자연 상태’에서부터 인간은 생명과 자유, 그리고 자신의 노동이 투입된 ‘재산’에 대한 신성한 권리를 지니고 태어났다고 보았다. 인간이 굳이 자발적으로 사회계약을 맺고 국가를 창설한 유일한 이유는, 이 천부적인 개인의 권리들을 보다 안전하게 지키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즉, 사유재산권이란 국가가 법으로 베풀어 준 시혜가 아니라, 국가라는 권력 자체가 출범하게 된 정당성의 근원이자 뿌리인 셈이다.


이러한 로크의 사상적 탁월함은 동시대의 또 다른 위대한 사상가 토마스 홉스의 국가론과 날카롭게 대비될 때 더욱 명징하게 드러난다. 홉스는 그의 대작 《리바이어던》에서 자연 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지옥도로 묘사했다. 홉스에 따르면 인간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권리와 자유를 군주라는 절대적 국가 권력에 전면 양도해야만 한다. 홉스의 세계관 안에서 국가는 생존을 담보로 개인의 재산과 자유를 언제든 처분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군주적 존재다. 반면 로크는 국가에 권력을 맡기는 행위를 어디까지나 ‘신탁(Trust)’으로 이해했다. 국민은 안전한 재산 관리를 위해 국가라는 전문 대리인에게 잠시 권한을 위임했을 뿐, 소유권의 주인은 여전히 개인이라는 것이다. 만약 국가가 본분을 잊고 국민의 재산을 침해한다면, 국민에게는 그 정부를 교체할 저항권(Revolution)이 있다. 국가를 절대자로 본 홉스와 유한한 대리인으로 본 로크의 이 전선은, 오늘날 큰 정부를 옹호하는 이들과 자유주의를 지키려는 이들의 대립으로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 철학적 논쟁은 21세기 현재에도 매우 강력한 생명력을 지닌다. 다수의 투표 결과라는 형식적 민주주의를 앞세워 부유층에게 징벌적 중과세를 가하거나, 사유 재산의 처분권을 법으로 광범위하게 제한하려는 시도들은 로크의 관점에서 보면 국민이 위임한 신탁의 취지를 벗어난 것일 수 있다. 물론 세금과 재분배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진지한 논쟁이 존재하는 만큼 섣불리 단정할 문제는 아니다. 다만 사유재산권이 무너지면 개인의 독립성도 함께 붕괴된다는 로크의 문제의식만큼은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내 재산을 국가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다면, 나는 더 이상 내 삶의 온전한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로크는 왜 왕 앞에서 개인의 권리를 외쳤을까》를 통해 나는 비로소 헌법이 규정하는 ‘자유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되짚게 되었다. 국가는 우리 삶의 구원자가 아니다. 국가의 역할은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과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외부의 약탈을 막아주는 든든한 ‘울타리’에 머물러야 마땅하다.


이 책은 왕권신수설이라는 절대 권력에 맞섰던 로크의 불꽃 같은 사유를 통해, 오늘날 법이라는 가면을 쓰고 개인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권력의 논리를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제공해 준다. 국가의 권력은 오직 개인의 권리를 지킬 때만 정당하며, 그 선을 넘는 순간 정부는 언제든 국민에게 재신임을 물어야 하는 계약직 대리인일 뿐이라는 사실을 늘 명심해야 한다. 나의 생명, 나의 자유, 그리고 나의 신성한 영토인 재산을 지키기 위해, 오늘날 우리 안의 ‘로크’를 다시 깨워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