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E Home

밤 열 시와 밤 열두 시

글쓴이
심미형 2026-08-26

자정이 되면 아이들의 게임 화면이 저절로 꺼진다는 제도가 생겼을 때, 나는 그 소식을 반가운 쪽으로 들었다. 아이 방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파란빛을 보며 몇 시까지 저러고 있으려나 헤아리던 밤이 잦았고, 아침 식탁에서 눈을 반쯤 감은 얼굴을 마주하는 날도 잦았다. 내 저녁은 늘 그 빛이 꺼지기를 기다리다 끝났는데, 열두 시만 지나면 나 대신 누가 그 빛을 꺼준다고 했다. 아이 키우는 사람들끼리는 같은 말이 오갔다. 이제 좀 낫겠다고, 자기도 먼저 잠들 수 있겠다고. '아이를 위해서'라는 말 앞에서 나는 한 번도 반대편에 서본 적이 없다. 반대하는 순간 아이를 덜 생각하는 부모가 되어버리니, 걸리는 대목이 있어도 묻지 않는 쪽이 편했다. 그때 내가 놓아버린 것이 무엇인지는 한참 뒤에야 보였다.

그 제도의 이름은 셧다운제였다. 청소년보호법에 근거해 2011년 11월에 시행되어, 만 열여섯 살이 안 된 아이에게 자정부터 새벽 여섯 시까지 인터넷 게임을 제공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2021년의 마지막 날을 끝으로 사라졌다. 십 년 남짓이었다. 그사이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로 인증을 넘어서는 일은 아이들 사이에 공공연했다. 밤마다 확인된 것은 계정의 나이였지 화면 앞에 앉은 사람의 나이가 아니었다. 제도가 겨눈 화면이 책상 위에 묶여 있는 동안 아이들의 화면은 이미 손안으로 옮겨 가고 있었다. 그 제도가 아이들의 잠을 얼마나 늘렸는지는 끝까지 논쟁으로만 남았다. 그 십 년 동안 확실하게 꺼진 것 하나는 내 걱정이었다.

이혁우의 『가짜 공공성: 모두를 위한다는 거짓말』을 읽다가 그 시절을 뒤늦게 정리했다. 저자는 첫머리에서 "공공성은 고약하다. 논쟁을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적었다. 그 고약함의 실물은 학교 앞 규제를 따지는 대목에 있다. 학교 경계에서 이백 미터까지는 교육환경보호구역이라 특정 업종이 들어서지 못한다. 전국으로는 국토의 3퍼센트지만 학교가 촘촘한 서울에서는 38퍼센트에 이른다. 문제는 넓이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이에 산이 있든 팔차선 도로가 가로막든 지도 위 직선거리만 재고, 유치원 잣대를 대학가에도 그대로 댄다. 금지 목록에는 청소년이 밤 열 시까지 자유롭게 드나드는 노래연습장까지 들어 있다. 저자의 말대로 "아이들이 이용하는 시설을 아이들 곁에 못 짓게 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다." 전국 82곳의 가축시장도 같은 목록에 있는데, 대개 학교보다 먼저 그 자리에 있었고 그 옆에 학교가 새로 들어설 일도 없다. 이미 다른 법이 촘촘하게 관리하는 시설을 교육법이 한 번 더 묶어두는 중복도 드물지 않다. 노래방은 밤 열 시까지 괜찮고 학교 옆은 안 된다. 게임은 밤 열두 시까지 괜찮고 그 뒤로는 안 된다. 두 시각 모두 아이를 위해 그어졌고, 두 시각 모두 우리 집 사정을 물은 적이 없다.

학교 앞에 아무 선도 그어지지 않았다면 등굣길은 훨씬 위태로웠을 것이다. 밤늦도록 화면 앞에 앉은 아이를 걱정하던 마음도 정당했다. 밤에 아이를 지켜볼 어른이 없는 집도 있으니, 모든 판단을 가정으로 돌려놓자는 말은 그런 집 앞에서 쉽게 무책임해진다. 다만 그런 집에 필요했던 것은 모두의 화면을 끄는 스위치보다 그 집에 닿는 손이었을 것이다. 저자 역시 규제를 걷어내자고 말하지 않는다. 그가 요구하는 것은 비례다. 위험이 없는 자리는 어디에도 없으니, 감당할 수준을 정하고 규제를 거기 맞추라고 한다. 오래 들여다본 문장은 따로 있다. "그러나 '선한 의도'가 늘 '합리적인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자정마다 놓이던 내 안심도 분명 선한 의도였다. 선한 의도는 집행하기 쉬운 모양으로만 제도가 되고, 집행하기 쉬운 선은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몇 시에 잠드는 아이인지, 무엇 때문에 늦는지를 시각 하나가 담을 수는 없다. 내가 사는 동네만 해도 학교를 낀 상가에는 학원과 카페와 편의점이 비슷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다. 그 반듯함이 아이들에게 준 것이 안전인지 단조로움인지 나는 아직 말하지 못한다.

셧다운제가 사라진 자리에는 아이나 보호자가 요청하면 이용 시간을 정할 수 있는 제도가 남았다. 한꺼번에 내리던 스위치를 각 가정으로 돌려준 셈이다. 십 년 전의 내 안심은 실은 위임이었다. 아이와 시간을 두고 매번 부딪치는 일이 버거워 자정에 대신 나서주는 손을 반겼고, 반대할 수 없는 문장이 그 손을 정당화해 주었다. 이제는 시간을 정하려면 마주 앉아야 한다. 몇 시까지가 적당한지, 시험 기간에는 어떻게 할지, 약속을 어기면 무엇을 내놓을지 우리는 번번이 협상하고 자주 실패한다. 그래도 그 실패는 우리 것이어서 다음 주에 고칠 수 있다. 열 시와 열두 시는 서로 다른 법에서 나왔지만 우리 집에서는 같은 일을 했다. 나는 그 두 시각이 아이의 밤을 지켜준다고 오래 믿었다. 정작 지켜지고 있던 쪽은 마주 앉기를 자꾸 미루던 내 저녁이었다. 아이를 위한다는 말을 들으면 나는 이제 시계를 보기 전에, 그 말이 무엇을 끄고 무엇을 남기는지부터 헤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