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E Home

홈플러스 위기에 다시 선 질문… 유통법 개정 시험대

글쓴이
자유기업원 2026-07-08 , 천지일보

[천지일보=양효선 기자] 홈플러스가 법원의 회생절차 폐지 결정으로 청산 위기에 놓이면서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개정 논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쿠팡을 비롯한 온라인 플랫폼이 규제 밖에서 24시간 새벽배송으로 시장을 장악하는 사이 대형마트는 의무휴업과 심야 영업 제한, 점포 기반 새벽배송 제한 등 규제를 적용받고 있어 유통환경 변화에 맞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면 전통시장 보호라는 명분으로 도입된 규제가 정작 전통시장 매출은 살리지 못한 채 온라인 플랫폼 성장만 키웠다는 이른바 ‘규제의 역설’도 홈플러스 사태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 셈이다.


◆온라인은 24시간… 대형마트만 2012년에 묶였다


현행 유통법은 대형마트에 월 2회 의무휴업과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 제한을 적용한다. 점포를 활용한 새벽배송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규제가 도입된 2012년 이후 시장은 완전히 달라졌다. 산업통상부가 발표한 ‘5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대형마트 비중은 2021년 15.1%에서 올해 5월 8.1%까지 반 토막 났다. 올해 1∼5월 대형마트 소매판매액도 지난해보다 6.3% 감소했고 대한상공회의소의 대형마트 경기전망지수(RBSI)는 금융위기와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수준인 60대에 머물고 있다.


산업통상부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2026년 4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온라인 유통업체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7.5% 증가한 반면 오프라인 매출 증가율은 6.7%에 그쳤다. 대형마트 매출은 6.6% 줄었다. 의무휴업일과 심야 영업 제한으로 온라인 배송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는 대형마트 업계의 목소리가 이어지는 이유다.


한국경제인협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KERI)이 농촌진흥청 소비자패널 자료를 토대로 2015년과 2022년 연간 130만건의 소비자 구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22년 기준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전통시장 평균 식료품 구매액은 610만원으로 대형마트 영업일 630만원보다 오히려 낮았다. 2015년 대비 2022년 전통시장 구매액은 55% 감소한 반면 온라인몰 구매액은 20배 이상 증가했다.


◆KDI “규제 재검토 필요”… 지자체는 이미 움직였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최근 보고서에서 규제 실효성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이공 KDI 연구위원은 ‘온라인 유통의 성장과 유통시장정책 개선 방향’ 보고서에서 “현행 유통법은 대형마트 규제로 전통시장을 보호하는 구조로 설계돼 있지만, 온라인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는 상황에서 대형마트 규제가 전통시장 보호에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크다”고 밝혔다. 또 “온라인 유통이 성장함에 따라 대형마트 매출이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는 대형마트 규제가 재검토될 필요성이 있음을 시사한다”며 “온라인 중심으로 유통법을 개정해 온·오프라인 채널 간 규제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KDI가 지난달 30일 발간한 ‘KDI FOCUS’ 제154호는 이를 데이터로 뒷받침했다. 신한카드 결제 데이터를 활용해 2020년 1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전국 3518개 읍면동 단위를 분석한 결과, 1인당 온라인 지출이 1% 증가할 때 오프라인 전체 매출은 오히려 0.186%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잠식한다는 기존 통념과 다른 결과다. 그러나 업태별로 파고들면 결과는 엇갈린다. 온라인 지출 1% 증가 시 SSM은 +0.221%, 편의점은 +0.324%, 기타 전문유통업은 +0.356% 증가한 반면 대형마트만 유일하게 -0.264% 감소했다. 온라인 성장의 타격이 대형마트에만 집중적으로 쏠리고 있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이를 근거로 온·오프라인 채널 간 규제 불균형 해소를 위한 유통법 개정 필요성을 제언하는 한편, 쿠팡으로 대표되는 특정 온라인 플랫폼의 시장 집중에 대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 차원의 거래상지위 남용행위 모니터링 강화와 플랫폼·입점 사업자 간 거래 조건의 투명성 확보 등 공정경쟁 환경 조성도 함께 촉구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이미 규제 완화에 나섰다. 지난 2023년 2월 대구를 시작으로 서울·부산·경기·청주 등이 의무휴업일을 주말에서 평일로 전환했다. KDI는 지난 5월 보고서에서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진국 KDI 재정투자평가실장은 “평일 전환 이후 대형마트 매출은 늘어난 반면 전통시장 매출 감소를 뒷받침하는 일관된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며 “소비자 편의와 지역 여건을 고려한 유연한 제도 운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용진 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민간부위원장도 10일 페이스북을 통해 규제 재검토 필요성을 공개 제기했다. 그는 “쿠팡·마켓컬리는 365일 24시간 영업하고 대형마트는 한 달에 두 번 문을 닫는다.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KDI 분석을 근거로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한 지역에서 오히려 소비가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이동하고 주변 상권과 전통시장까지 함께 찾는 흐름이 관찰됐다”고 주장했다.


해외도 완화 흐름이다. 프랑스는 2016년 이른바 ‘마크롱법’을 제정해 연 5회이던 일요일 영업 허용 횟수를 연 12회로 늘렸고 상업지역 내 판매면적 2만㎡ 이상·연간 200만명 이상 고객이 있는 대형마트는 일요일 영업을 전면 허용했다. 일본도 소비자 불편과 유통시장 위축 등을 이유로 2000년 관련 규제를 폐지했다.


◆경영 실패인가, 제도의 한계인가


홈플러스 위기의 배경으로는 MBK파트너스의 차입매수(LBO)와 이후 자산 유동화 중심의 경영 전략이 주요 원인으로 거론된다. 2015년 약 7조 2000억원에 회사를 인수한 뒤 점포 매각과 자산 유동화에 집중해 10년 동안 점포와 물류시설 28곳을 처분하며 4조원 넘는 현금을 확보했다. 그러나 투자 여력이 줄어든 홈플러스는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된 시장에 대응하지 못했고 2021년 이후 5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다 결국 법원의 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맞았다.


대형마트가 파산 위기에 몰릴 경우 근로자·납품업체·입점상인·지역 소비자까지 피해가 연쇄적으로 확산된다는 점에서 단순한 기업 실패를 넘어 오프라인 유통 생태계 전반의 구조적 위기로 번지고 있다. 한국신용평가와 NICE신용평가는 홈플러스의 영업 축소 또는 시장 이탈 가능성이 현실화될 경우 이마트와 롯데마트가 단기적인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온라인 침투 확대와 소비 패턴 변화, 규제 등 구조적 한계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분석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온라인 쇼핑으로 소비자가 이동하면서 오프라인 유통이 전반적으로 어려워진 상황에서 과도한 규제가 대형마트의 퇴조를 더 가속화하고 있다”며 “현 규제 구조가 유지될 경우 다른 대형마트도 홈플러스처럼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국회 소위 계류… 찬반 팽팽


국회에는 의무휴업 완화와 새벽배송 허용 등을 담은 유통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지난 5월 19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회부됐지만 후반기 원 구성 일정에 막혀 사실상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6일 비공개 최고위에서 홈플러스 인수자를 끌어내기 위한 유인책으로 유통법 개정 방안을 논의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근로자와 협력업체 등에 많은 피해가 예상되는 만큼 특단의 조치도 필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소비자 인식은 달라졌다. 한국유통학회가 윈지코리아컨설팅에 의뢰해 올해 4월 1일부터 5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유통산업 인식 조사’ 결과 의무휴업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59.5%로 현행 유지(30.4%)를 크게 웃돌았다. 영업시간 제한 규제도 완화·폐지 의견이 합쳐 58.8%를 기록했다. 새벽배송 허용에는 65.1%가 찬성했고 반대는 15.8%에 그쳤다. 응답자의 75.8%는 대형마트 업계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느낀다고 답했으며 점포 폐점이 이어질 경우 가장 우려되는 점으로 지역 생활 인프라 축소(66.6%)를 꼽았다.


장명균 호서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민들은 대형마트를 단순한 규제 대상이 아니라 소비자 생활 안정과 지역경제를 뒷받침하는 핵심 유통 인프라로 인식하고 있다”며 “10여 년간 유지된 규제 체계를 소비자 편익과 유통환경 변화 관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자영 한국유통학회장(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은 “의무휴업과 심야영업 제한 등 오프라인 규제를 완화해도 온라인 강세는 이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시장 원리에 맞게 규제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전통시장 상인단체·중소마트협회·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대책위원회는 “대형마트 규제 완화가 아닌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규제 강화, 중소상인 지원 확대, 지속가능한 유통생태계 구축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법안 통과 시 헌법소원을 예고하며 “790만 소상공인의 이름으로 찬성 정치인들에게 반드시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노총 마트노조와 참여연대 등 노동·시민단체도 “산재 승인건수의 81.3%가 자정부터 새벽 5시 사이에 집중되는 상황에서 새벽배송 확대는 노동자 과로사를 더 키울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규제 완화가 시장 효율성 측면에서 진일보한 것이지만 소상공인 상생 협력 차원에서 보완책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규제 유지냐 폐지냐 아닌, 현실에 맞는 재설계”


온라인쇼핑은 2026년 전년 대비 3.2% 성장이 예상되는 반면,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은 나란히 -0.9% 역성장할 전망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소매유통업체 300곳을 조사한 결과 2026년 국내 소매유통시장 성장률은 0.6%로 최근 5년 내 가장 낮은 수준이 될 것으로 나타났다. 규제를 유지한 채 온라인 중심으로 소비가 이동하는 흐름을 방치할 경우 제2·제3의 홈플러스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자유기업원은 최근 논평에서 “대형마트의 영업을 제한한다고 해서 온라인 중심의 유통시장 재편이 멈추는 것이 아니며 경영이 어려워진 대형마트가 폐점하면 근로자와 입점업체, 납품업체와 지역 소비자도 함께 피해를 입는다”며 “변화한 소비환경을 외면한 채 특정 유통업태를 차별해 온 규제체계를 이제는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형마트를 옥죄는 규제는 여전히 2012년에 멈춰 있다. 시장은 이미 온라인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됐지만 제도는 오프라인 대형마트가 유통 강자이던 14년 전 프레임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홈플러스 청산 위기를 시장과 정책의 간극이 한계에 도달한 결과로 보고 있다.


유통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계류 중이지만 후반기 원 구성 난항으로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소비자 편익과 대형마트 경쟁력 회복, 전통시장 보호와 노동자 권익을 어떻게 조화시킬지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