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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공재` 논란, 정당한 이윤 존중이 혁신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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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공재’? 헌법상 재산권 흔드는 일 / 초과이윤 나누자는 논리는 책임 없는 분배 / "이윤 죄악시" 멈추고 투자·혁신 이어가야


공공재라는 말이 너무 쉽게 쓰이고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삼성전자 성과급 논쟁을 계기로 반도체가 사실상 공공재가 되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반도체가 국가적으로 중요한 산업이라는 사실과 반도체 기업의 이윤을 공공의 몫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번 논란은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다. 헌법 제119조 제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가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또한 헌법 제23조는 모든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업이 정당한 투자와 경쟁을 통해 얻은 이윤은 기업과 주주에게 귀속되는 재산적 성과다. 이를 공공재론이나 초과이윤론의 이름으로 사회적 배분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은 시장경제 질서와 사유재산권 보장의 원칙을 동시에 흔드는 일이다.


공공재는 경제학적으로 엄밀한 개념이다. 대가를 치르지 않은 사람도 소비를 막기 어렵고, 한 사람이 소비해도 다른 사람의 소비가 줄어들지 않는 재화가 공공재다. 그러나 반도체는 기업이 막대한 자본을 들여 생산하고, 시장에서 가격을 받고 판매하는 사적 재화다. 국가 경제에 중요하다는 이유만으로 반도체를 공공재라고 부른다면 자동차, 철강, 배터리, 바이오, 통신까지 모두 공공재가 될 수 있다.


초과이윤이라는 말도 매우 위험하다. 어디까지가 정상 이윤이고 어디서부터가 초과이윤인가.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할 것인가, 순이익을 기준으로 할 것인가. 반도체 산업은 경기 변동이 심하고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비용이 막대하기 때문에, 호황기에 남긴 이익도 다음 불황과 미래 경쟁을 버티기 위한 안전판이다.


이윤은 기업이 위험을 감수한 결과다. 기업은 투자 실패, 기술 실패, 시장 변화, 경쟁 심화, 환율 변동, 수요 침체의 위험을 떠안는다. 만약 이윤이 많이 나면 초과이윤이라며 나누고, 손실이 나면 기업 책임이라고 방치한다면 그것은 공정한 질서가 아니다. 위험은 기업이 지고 과실는 사회가 나누자는 논리는 시장경제가 아니라 책임 없는 분배정치다.


더구나 기업 이윤은 추상적 공공재가 아니라 구체적인 재산권의 대상이다. 기업의 이익은 임직원 보상, 연구개발, 설비투자, 협력업체 거래, 주주 배당, 미래 위기 대응 재원으로 쓰인다. 이를 공공의 이름으로 사후적으로 재단하기 시작하면 기업의 재산권은 불안정해지고, 투자와 혁신의 예측 가능성도 약화된다.


성과를 문제 삼는 사회는 성장할 수 없다. 기업이 더 나은 제품을 만들고, 더 효율적인 공정을 개발하고,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 큰 이익을 냈다면 그것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의 대상이다. 그런데 정부가 기업의 이익을 사회적 분배의 원천으로 보기 시작하면 기업은 성공할수록 불리해진다고 느끼게 된다.


이 같은 논란은 횡재세 논란과도 닮아 있다. 특정 산업이 예기치 못한 호황으로 이익을 얻었으니 추가로 세금을 걷거나 사회적으로 나누자는 주장은 듣기에는 그럴듯하다. 그러나 시장에서 발생한 이익을 '횡재’로 부르는 순간 기업의 노력과 위험 부담은 사라지고, 결과만 정치적 배분의 대상이 된다.


정부는 기업의 이익을 나눌 방법을 찾기보다 기업이 이익을 낼 자유와 그 성과에 대한 재산권을 지켜야 한다. 반도체 산업은 정부 구호가 아니라 기업의 투자, 기술자의 노력, 주주의 위험 부담,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 성장했다. 시장에서 성공한 기업을 의심하고 이윤을 분배의 대상으로 삼는 순간 경제의 활력은 사라진다.


반도체가 국가적으로 중요하다는 말은 맞다. 그러나 중요하다고 해서 공공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략산업이라는 이유로 기업의 이윤을 공공의 몫처럼 바라보는 순간, 헌법 제119조 제1항이 전제한 시장경제 질서와 헌법 제23조가 보장한 사유재산권은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윤을 죄악시하는 사회가 아니라, 이윤을 통해 투자와 혁신이 이어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