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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품을 사는 합리적인 바보들: 얼리 액세스 게임이 증명하는 시장의 자율적 질서

글쓴이
송민규 2026-05-27

우리는 보통 완성된 영화의 티켓을 사고, 만들어진 재화를 구매한다. 결함이 있거나 아직 제작 중인 미완성품을 제돈 주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디지털 게임 시장은 이 상식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 게임 플랫폼 스팀에서는 최근 독특한 거래가 주류로 자리 잡았다. 정식 출시되지 않은 게임을 앞서 해보는 '얼리 액세스' 게임이 등장한 것이다.

한국의 대학생 인디 팀이 개발한 게임 <산나비>는 얼리 액세스를 통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산나비>는 2022년 얼리 액세스로 처음 선보인 이후, 유저들의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반영하며 완성도를 높였고, 정식 출시 후 엄청난 호평을 받으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우리가 어릴 적 자주 하던 게임들을 생각해보자]
우리가 어릴 적 <메이플스토리>, <피파온라인3> 등 거대 유통사의 게임을 즐겨 했던 것을 떠올릴 수 있듯이, 게임 시장은 넥슨과 같은 거대 유통사의 자본력에 의존하는 독과점 시장이었다. 소규모 개발사 및 개발자들은 게임을 출시하는 것 그 자체를 거대한 진입장벽처럼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얼리 액세스는 수요자인 게이머가 싼값에 게임을 즐기는 동시에, 초기 자본을 제공하는 투자자의 역할을 겸하게 함으로써 이 장벽을 허물었다. 그 결과, 거대 자본의 논리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온 것이다.

[얼리 액세스 게임의 위험성]
대기업의 독과점적 시장 형태를 깬 이 모델에도 잠재적인 위험이 존재한다. 개발사가 얼리 액세스라는 명목으로 판매 수익만 챙긴 뒤, 돌연 업데이트를 중단해버리는 이른바 '먹튀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현상의 원인은 정보 비대칭성에 있다. 게임에 대한 완성 의지와 각종 자금 정보에 대해서, 개발자는 완벽한 정보를 쥐고 있지만 게이머는 그렇지 않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극심해질 경우, 조지 애컬로프의 레몬 시장 이론에 따라 진정성 있는 개발자는 떠나고 겉만 그럴싸한 불량품인 레몬 게임들만 시장에 남게 될 것이다. 이후 배신당한 사람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시장 실패의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 균형을 찾는 시장]
놀랍게도 얼리 액세스 시장은 붕괴하지 않았다. <산나비>처럼, 자본의 한계를 뛰어넘은 새롭고 혁신적인 게임들이 여전히 쏟아져 나오고, 수많은 게이머들이 이를 즐기고 있다. 이는 외부의 강력한 규제 없이, 시장이 스스로 신뢰를 회복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실제 스팀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유저 리뷰 시스템은 아주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개발자가 약속을 어기고 업데이트를 방치할 경우, “압도적으로 부정적”이라는 유저들의 평가가 낙인처럼 찍히며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도태된다. 반면, 진정성 있는 개발자는 주기적으로 패치 노트를 공개하고 피드백을 수용하며 끊임없이 유저들과 소통한다. 이들에게는 “대체로 긍정적”, “압도적으로 긍정적”과 같은 좋은 평가가 주어질 것이다.

또한 스팀은 플레이 시간이 2시간 이내일 경우 구매를 철회하도록 도와주는 정책을 운영한다. 우리는 개발자의 행보가 미심쩍을 경우 구매를 철회할 수 있고, 미완성된 게임에 대한 궁금증을 안전하게 해소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우리가 원하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얼리 액세스 시장을 지탱하는 진정한 힘은 소비자에게 있다. 우리 게이머들은 개발자와 함께 게임을 깎고 다듬는 과정 그 자체에 큰 효용을 느낀다. 게임의 연구, 즉 생산에 참여하는 프로슈머(Prosumer)로서의 자발적 기여는 얼리 액세스 시장의 불확실성을 혁신으로 전환하는 핵심 동력인 것이다.

게임 <산나비>는 죽은 후 로봇이 된 아버지와 그를 그리워하는 딸의 기적적인 만남,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여행을 그린다. 이 감동적인 스토리는 결코 개발자 혼자 써 내려간 것이 아니다. 정보 비대칭의 위기를 신뢰로 극복하고, 수년간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함께 게임을 완성해 온 시장의 참여자들이 있었기에 비로소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시장에서 개발자와 게이머가 함께 만들어낸 것은 단순한 게임을 넘어선, 시장의 자생적 질서 그 자체다. 시장은 오늘도 스스로 길을 개척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질서의 힘을 믿고 다음 혁신이라는 미완성품을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