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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통제의 역설: 1974년 워싱턴과 2026년 서울

글쓴이
조영재 2026-05-27

서울에서 재현되는 52년 전 워싱턴
요즘 주유소 앞을 지나다 보면 전광판 숫자에 자꾸 눈이 간다. 리터당 2,000원을 훌쩍 넘긴 숫자는 중동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내 지갑과 얼마나 가까운지 실감하게 한다. 시민들은 주말 드라이브 대신 지하철을 택하고, 카풀 앱을 내려받으며, 전기차 시승 예약에 몰린다. 정부는 지난 3월 13일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해 정유사 공급가에 상한선을 걸었고, 이번 주 4차 고시를 앞두고 있다. 3차 고시가는 휘발유 리터당 1,934원이지만, 서울 주유소의 평균 판매가는 이미 2,029원을 넘어섰다. 미국·이란 전쟁으로 두바이유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면서 벌어진 풍경이다. 이 풍경에는 짙은 기시감이 있다. 1974년 워싱턴에서 실패로 끝난 실험이 지금 서울에서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격이라는 시장의 언어
가격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시장이 보내는 언어다. 유가가 치솟자 소비자는 자가용 대신 지하철을 택하고 전기차 구매를 저울질하며, 기업은 태양광 투자를 다시 고려한다. 주목할 점은 이 반응들이 누구의 지시도 없이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며칠 만에 주유소 전광판에 새겨지면, 수백만 명이 각자의 사정에 맞춰 반응한다. 어떤 정부도, 어떤 알고리즘도 이처럼 빠르고 정밀하게 의사결정을 조율할 수는 없다. 전광판의 네 자리 숫자 하나가 수백만 개의 선택을 조용히 조율하는 셈이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주유소 전광판 위에서 지금도 구체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신호등을 꺼 버린 결과
문제는 정부가 이 신호를 인위적으로 억누르려 한다는 점이다. 고시가가 시장가보다 낮으면 부작용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공급자는 팔수록 손해이기에 공급을 줄이고, 소비자는 잘못된 신호를 받아 수요를 유지한다. 1974년 닉슨 행정부의 가격상한제가 대표적인 정부실패 사례로 남은 이유다. 당시 미국의 주유소 앞에는 차량이 수 마일씩 늘어섰고, 홀짝제와 같은 배급제까지 등장했다. 반면 통제가 없던 나라에서는 높은 가격이 수요를 억제하고 신규 투자를 자극해 시장이 스스로 균형을 찾았다. 현재의 서울은 그 실패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가고 있다. 정유사 손실이 쌓이자 정부는 고시가 인상을 고민 중이고, 그 손실은 결국 국채로 메워야 한다. 당장의 고통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청구서를 미래 세대에게 떠넘기는 셈이다.


유류세 인하도 임시방편일 뿐
정부는 동시에 유류세 인하 폭을 휘발유 15%, 경유 25%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리터당 휘발유 가격은 65원, 경유는 87원 낮아진다. 당장의 부담은 줄어들겠지만, 구멍 난 세수는 결국 다른 세금을 올리거나 국채를 발행해 메워야 한다. 비용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만 바꾸어 국민에게 돌아올 뿐이다. 더욱이 유류세 인하의 혜택은 기름을 많이 쓰는 사람일수록 커진다. 인위적으로 낮춘 가격은 에너지 절약 동기를 꺾고 전기차 전환마저 늦춘다. 선의의 개입이 부작용을 낳는 전형적인 정부실패이다.


시장을 억누르지 말고 사람을 지원하라
물론 위기의 고통은 현실이다. 난방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저소득 가정, 유류비에 민감한 영세 화물차주의 어려움은 통계가 아니라 일상이다. 그러나 해법은 가격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직접 지원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에너지 바우처 확대, 저소득층 대중교통 할인, 영세 화물차 유가보조금 한시 증액 같은 맞춤형 지원은 시장 원리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형평성을 달성한다. 모든 사람의 기름값을 낮추는 게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진정한 복지다. 전자는 시장을 왜곡시키지만, 후자는 시장을 살린 채 사람을 구한다. 전광판의 2,029원은 불편하지만 정직하다. 1974년 닉슨은 이 원칙을 무시한 대가로 주유소 앞에 끝없는 대기 행렬을 남겼다. 2026년 서울이 같은 실패를 되풀이할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