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턴테이블 위에서 돌아가는 보이지 않는 손: LP 가격은 왜 비쌀까?

글쓴이
장인혁 2026-05-27

작년부터 음악을 소비하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스마트폰 터치 한 번이면 수천만 곡을 들을 수 있는 스트리밍 시대를 역행하여, 물리적인 형태를 갖춘 CD와 LP를 수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내 수집품의 가치가 궁금해져 크림(KREAM)에 접속했다가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년에 구매했던 싱어송라이터 한로로의 '이상비행' LP 중고 거래 가격이 원가 5만 7천원에서 무려 23만 원까지 치솟아 있었기 때문이다. 놀란 마음에 다른 인디 가수들의 LP 가격도 검색해 보았다. 상황은 비슷했다. 검정치마의 'TEAM BABY' LP는 45만 원, 유다빈밴드의 '이그나이트' LP는 11만 원, 윤마치의 'Oh Life' LP는 26만 원 등 최초 발매가를 아득히 뛰어넘는 높은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 음반들이 이렇게 엄청난 프리미엄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는 이를 두고 음반을 매점매석하여 폭리를 취하려는 이른바 리셀러들의 탐욕 때문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정적인 잣대를 거두고 냉정한 시장경제의 관점에서 접근해 보면, 이 현상은 누군가의 악의가 아니라 시장이 지극히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완벽한 예시라고 할 것이다.


LP의 높은 가격을 설명하는 핵심은 바로 희소성과 한정된 공급이다. LP는 CD와 달리 한정된 수량을 판매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따라서 기획사와 아티스트는 수요에 맞게 예약주문을 받아 한시적으로 생산하는 방식을 택한다. 즉, 시장에 풀리는 LP의 공급량은 사실상 완벽하게 고정되어 있다.이러한 고정된 공급 속에서 아티스트의 인지도가 올라가고 팬덤이 커지면 어떻게 될까? 수요 곡선은 우측으로 급격히 이동하지만, 공급 곡선은 수직의 형태를 유지하며 꼼짝하지 않는다. 수요는 폭발하는데 공급은 멈춰 있으니 가격이 상승하는 것은 경제학 교과서의 첫 장에 나오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다. 


또한 시장에서 가격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신호다. 검정치마의 LP에 붙은 45만 원이라는 꼬리표는 시장의 왜곡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그 음반을 소유하는 가치가 45만 원 이상의 효용을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자들은 단순히 음악을 듣기 위해 지갑을 여는 것이 아니다. 아티스트의 철학이 담긴 굿즈, 아날로그 감성에 대한 동경, 그리고 한정판을 소유했다는 심리적 만족감이라는 주관적 가치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가격을 통제하려는 시선에서는 이러한 고가 거래가 불합리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시장경제에서 가격이 오르면, 한정된 자원은 그것을 가장 간절히 원하고 그만한 대가를 지불할 용의가 있는 사람에게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된다. 만약 LP의 중고 거래 가격을 최초 발매가 수준으로 강제하는 규제가 생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은 해소되지 않고 암시장이 형성되는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높은 가격은 희소한 자원을 배분하는 가장 공정하고 합리적인 시장의 조정 장치인 셈이다. 


기획사 역시 시장의 합리적인 행위자다. 그들은 왜 수요가 많은데도 LP를 무한정 찍어내지 않을까? 추가 생산에 따르는 시간과 물리적 비용의 한계도 있지만, 한정판이라는 희소성을 유지함으로써 아티스트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팬들의 소유욕을 자극하는 것이 장기적인 이윤 극대화에 더 유리하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역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전략이다.


 이처럼 턴테이블 위에서 조용히 돌아가는 LP판 속에는  수요와 공급, 희소성, 그리고 주관적 가치라는 시장경제의 거대한 원리가 CHACHAG 새겨져 있다. 그러니 내가 조심스레 턴테이블에 바늘을 얹을 때마다 흘러나오는 것은 단지 아름다운 음악만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수많은 이들의 열망과 가치가 교차하며 끊임없이 최적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 즉 ‘보이지 않는 손’이 지휘하는 지극히 역동적이고도 경이로운 시장경제의 교향곡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