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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의 공적환수? 위험을 짊어진 `주주`가 보상 받는 게 마땅하다

글쓴이
정필립 2026-05-19 , 마켓뉴스

반도체 사업, 천문학적 규모의 자본적 지출과 연구개발비 투입, 기업가의 투자 결정 결과 / 호황을 횡재로 규정하려면 불황의 손실도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한다 / 횡재세 부과-차세대 공정 투자, 신규 R&D, 해외 거점 확장 재원-미래 투자 여력 약화 / 기업의 주인은 주주, '국민'은 삼성전자에 자본 투자한 적 없으니 국민배당금 안돼


최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반도체 기업들이 거둔 초과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개념의 '국민배당금'을 제안했다. 청와대는 이를 두고 "기업 이익에 새로운 횡재세를 부과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AI 산업 호황으로 자연스럽게 늘어난 초과 세수를 활용하자는 의미"라고 해명했지만,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코스피는 6% 폭락했고, 블룸버그 통신은 김 실장의 제안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표현의 외피만 보면 '초과세수 활용'이지만, 그 발상의 뿌리에는 횡재세(windfall tax)의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부동산, 금융, 반도체 등 특정 산업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냈을 때 그 열매를 한국 사회가 누구와 어떻게 나누느냐에 대한 어젠다가 등장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외생적 요인으로 누군가는 손실을 입고 누군가는 이익을 얻었으니, 조세를 통해 그 불균형을 바로잡겠다는 발상이다. 그러나 이 논리를 반도체 산업에 적용하는 순간, 두 가지 근본적인 문제가 드러난다.


첫번째 문제는 반도체 호황을 '횡재'로 규정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횡재세의 원형은 에너지 산업에 있다. 산유국 카르텔의 담합, 지정학적 충돌, 정치적 결정과 같은 외부 충격이 가격을 끌어올리고, 그 결과 별다른 노력 없이 이익이 발생한다는 전제다.


반도체는 그렇지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오늘의 위치에 서기까지 수십 년에 걸쳐 천문학적 규모의 자본적 지출과 연구개발비가 투입되었다. 미세공정 한 세대를 진입하는 데만 수십조 원이 들고, HBM과 같은 신규 제품군은 십수 년의 인적, 물적 자본 축적 위에서 나왔다. AI 인프라 호황은 하늘에서 떨어진 횡재가 아니라, 기업가가 불확실성을 감수하며 내린 일련의 투자 결정이 시장의 수요와 맞아떨어진 결과다.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의 본질은 불확실성 속에서 자본을 배분하는 일이다. 만약 메모리 가격이 폭락했다면, 그 손실은 자본을 댄 주주와 회사가 떠안았을 것이다. 호황을 횡재로 규정하려면, 불황의 손실도 사회가 함께 짊어졌어야 한다. 손실은 사적으로 떠안고 이익만 공적으로 환수한다면, 그것은 횡재세가 아니라 일방적 약탈이다.


설령 반도체 호황을 외생적 요인의 결과로 가정한다 해도, 두 번째 문제가 남는다. 정부가 과연 그 이익에 대한 배당을 청구할 자격이 있는가.


주주는 자본을 투입한 대가로 배당을 받는다. 그들은 주가가 하락하면 평가손을 떠안고, 영업손실이 나면 배당이 끊길 수 있음을 알면서도 유동성을 회사에 묶어두는 사람들이다. 배당은 위험을 감수한 자본에 대한 보상이며, 이 보상이 보장되지 않으면 애초에 누구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반면 정부는 인프라와 제도를 제공한다고 하지만, 그 대가는 이미 법인세와 각종 부담금을 통해 받고 있다. 정부는 기업이 흑자를 기록할 때는 법인세를 부과하지만, 적자를 기록한다고 해서 법인세를 환급하지는 않는다. 손실은 오롯이 자본의 몫이고, 이익은 모두의 몫이라는 발상은 위험 부담의 비대칭성을 묵살한다. 이것이야말로 약탈적 분배의 본질이다.


문제는 횡재세 부과가 회사의 살점만이 아니라, 미래의 투자 여력까지 함께 뜯어간다는 데 있다. 영업이익은 단순한 분배의 대상이 아니라, 차세대 공정 투자, 신규 R&D, 해외 거점 확장의 재원이다. 이를 외부로 빼앗기는 순간 다음 사이클의 경쟁력은 그만큼 약화된다. 메모리반도체 산업은 가격과 수요가 크게 출렁이며, 불황기에 발생하는 적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AI 인프라 시대의 과실을 국민이 누리고자 한다면, 그 과실을 만들어 낸 나무의 뿌리부터 보호해야 한다. 뿌리를 뽑아 열매를 나누자는 발상은 한 해의 풍년을 위해 다음 해의 흉작을 자초하는 일이다.


기업의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답은 결국 누가 위험을 짊어지느냐에 달려 있다. 주주는 자본을 댔고, 손실을 감내하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잔여 이익을 청구할 권리를 갖는다. 이것이 주식회사 제도가 안착시킨 가장 단순하고도 강력한 원리다.


'국민배당금'이라는 이름은 듣기에 좋다. 그러나 '국민'이 삼성전자에 자본을 투자한 적이 없다면, 그들은 배당의 정당한 수령자가 아니다. 삼성전자에 자본을 댄 국민은 이미 존재하며, 우리는 그들을 '주주'라 부른다. 수백만 명을 헤아리는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기업의 주인은 주주다. 위험을 짊어진 자가 보상을 받는다는 단순한 원칙을 지키는 일은 특정 기업을 옹호하는 일이 아니라, 다음 사이클의 호황을 한국에 붙들어 두는 일이다.


정필립 자유기업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