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합 사고와 정치적 신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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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라이너 지텔만 2026-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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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연구자들은 더욱더 영합 사고(zero-sum thinking)에, 즉 한 집단에 대한 경제적, 사회적, 혹은 정치적 이득이 오직 다른 집단들의 희생으로만 달성될 수 있다는 널리 퍼진 신념에 집중했다.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 대학교의 샤이 다비다이(Shai Davidai)와 마르티노 온기스(Martino Ongis)는 영합 사고와 정치적 이데올로기들 사이 관계를 연구한 사람들에 속한다. 그 두 연구자는 영합 사고방식을 보수주의자들이나 좌파 중 어느 쪽이−그리고 어느 정치적 쟁점들에 대해서−더 채택할 것 같을지 확인하기 위해서 3,223명 참가자를 포함하는 여섯 개 연구를 집행했다. 그들의 결론: “우리는 리버럴들과 보수주의자들 양쪽 다 삶을 영합으로 보는 것이 자기들에게 이익이 될 때 그렇게 한다는 점을 발견한다. 보수주의자들은 현상 유지가 도전받을 때 영합 사고를 보이지만, 리버럴들은 현상이 유지되고 있을 때 그렇게 한다.”
연구자들은 보수주의자들이 리버럴들보다 재분배의 쟁점에 관해 영합 사고 쪽으로의 경향을 현저하게 덜 보였지만, 그들이 사회적 약자 우대 정책에 관해 영합 사고로의 경향을 더 보였다고 지적한다. 사회적 약자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은, 고용이나 대학 입학 허가들에서 우대를 통해, 여자들이나 흑인들 같은, 일정 집단들의 발달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정부 혹은 제도 조처들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리버럴들은 진술문 “사람들은 오직 다른 사람들의 희생으로 부유해질 수 있을 뿐이다,”에 더 동의할 것 같았지만, 보수주의자들은, “흑인 학생들이 대학 입학 허가를 얻는 것이 더 쉬울수록, 백인 학생들이 입학 허가되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 같은, 진술문들에 더 동의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연구 결과들은 또한 다비다이와 온기스가 도출한 결론들과 다른 결론들에 이를 수도 있다. 결정적인 차이점은 상황을 영합으로 보는 것이 실제로 현실에 일치하느냐 아니냐에 있다. 부자들이 오직 가난한 사람들의 희생으로 부유해질 수 있을 뿐이라는 위의 진술문은 그저 진실이 아닐 뿐이다. 누구든 억만장자들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했으나 세계적 빈곤에서 거대한 감소를 경험한 최근 몇십 년간 사태 진전들을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나 진술문 “흑인 학생들이 대학 입학 허가를 얻는 것이 더 쉬울수록, 백인 학생들이 입학 허가되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와 관련해서는 상황이 다르다. 만약 대학이 단지 1,000명 지원자만 입학 허가하고, 할당들을 도입한다거나 입학시험 요건들을 줄임으로써 흑인 학생들에 대한 장벽들을 낮춘다면, 그것은 참으로 더 적은 백인 학생이 이 대학에 입학 허가될 수 있을 경우이다. 영합 사고가 경제 성장의 비영합 본질 때문에 경제에서는 타당하지 않지만, 그것은 대학 입학 허가들에는 정말 적용되는데, 왜냐하면 이것은 객관적으로 영합 상황이기 때문이다.
“영합 사고와 미국 정치 차이들의 근원(Zero-Sum Thinking and the Roots of U.S. Political Differences)”이 2025년 8월 하버드 대학교,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그리고 런던 경제 대학의 사힐 치노이(Sahil Chinoy), 네이선 넌(Nathan Nunn), 산드라 세케이라(Sandra Sequeira), 그리고 스테파니 스탠체바(Stefanie Stantcheva)에 의해 발표되었다. 이 연구는 20,400명 미국 시민의 설문 조사들에 기초하였다. 그들의 연구 결과들 가운데서, 연구자들은 영합 사고가 재분배 및 더 제한적인 이민 정책들의 지지와 상관관계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 발견은 또한 다른 나라들에서도 확증되었는데, 영합 사고와 재분배 지지 사이 통계적 상관관계가 영합 사고와 제한적인 이민 정책들의 지지 사이 상관관계보다 현저하게 더 강하기는 하다.
여기서 다시, 다음이 적용된다: 진술문 “만약 한 집단이 더 부유해지면, 이것이 다른 집단들의 희생으로 생긴다는 점이 보통 사실이다,”는 객관적으로 허위이지만, 이민의 쟁점은 더 복잡하다. 다비다이와 온기스가 한 연구는 명백한 결론에 도달했다: “더 많은 참가자가 이민을 영합으로 보았을수록, 그들이 이민에 반대하는 강경한 자세를 취하는 것을 더 많이 지지했다.”
이민에 관해서는, 상황이 그렇게 명백하지 않다. 많은 유럽 나라에서 주요 역할을 하고 또한 미국에서도 존재하는, 사회 복지 제도들로의 이민은 영합 질문과 관련하여 노동 시장으로의 이민과 다르게 평가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가난한 나라로부터 이민하고 그다음 복지에 의지하여 사느냐, 아니면, 예를 들면, 고도로 자격 있는 전문가가 미국 회사에 의해 고용되느냐는 차이를 가져온다.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만약 이민자가 미국 경제에 생산적으로 이바지하지 않고 주로 복지에 의지하여 산다면, 경제적 “파이(pie)”가 그 결과로 증가하지 않으므로, 그것은 객관적으로 영합 상황이다. 반대로,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그것은 영합 게임이 아닌데, 왜냐하면 이민자는 전반적인 경제적 부가가치를 증가시키고 “파이”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그릇된 현실 인식으로서 영합 사고는 정치적 스펙트럼의 전역에서, 좌파와 우파 양쪽 다에서, 발견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와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 양쪽 다 무역이 영합 게임이라고 믿는데, 경제학자들에 의해 반복해서 논박되는 견해이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 우대 정책과 관련한 영합 사고는, 경제에서와 달리, 그릇된 현실 인식이 아니다. 그리고 이민과 관련해서는, 영합 사고의 타당성은 관련된 이민 유형에 달려 있다. 영합 사고는 오직−무역이나, 빈곤과 부 사이 관계 같은−비영합 상황이 잘못 영합으로 인식될 때에만 그릇될 뿐이다.
이 칼럼은 2025년 12월 31일에 작성되었고, 2026년 1월 2일 ≪미국의 회복(Restoring America)≫에 “좌파는 자기의 영합 사고를 그만두어야 한다(The Left must quit its zero-sum thinking),”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다. https://www.washingtonexaminer.com/restoring-america/faith-freedom-self-reliance/4399291/left-must-quit-zero-sum-thinking/
라이너 지텔만(Rainer Zitelmann)은 역사학자이자 사회학자이고, ≪국가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방법: 베트남, 폴란드, 그리고 번영의 기원(How Nations Escape Poverty: Vietnam, Poland, and the Origins of Prosperity)≫(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830632), ≪히틀러의 국가 사회주의(Hitler's National Socialism)≫(https://hitlers-national-socialism.com/), 그리고 ≪부유한 자본주의 가난한 사회주의(The Power of Capitalism)≫(https://the-power-of-capitalism.com/)의 저자이다.
번역: 황수연[미제스와이어(mises.kr)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