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4년째다. 경영자에게 강한 책임을 물어 산업재해를 줄이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처벌은 강화되고 사고는 줄지 않았다. 최근에는 금융당국이 중대재해 발생 기업에 대해 대출 제한까지 검토하면서 형사처벌에 금융제재까지 더해졌다. 이제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 생존을 위협하는 리스크가 됐다.
처벌 강화에도 산재는 늘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5년 3분기까지 누적 산업재해 발생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3.2% 증가했다. 특히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의 사망자는 10.4%나 늘었다. 처벌 강화만으로 예방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현장의 인식도 다르지 않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은 과징금이나 형사처벌 같은 경제·형벌적 제재가 중대재해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고 응답했다. 반면 현행 사업주 처벌 수준은 이미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기업 현장에서는 처벌 중심으로 설계된 제도가 실질적인 예방과는 거리가 멀다고 판명되었다.
피해를 보는 쪽은 근로자다. 건설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전사적으로 현장을 중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정부의 엄격한 잣대를 의식한 '자기검열식 중단’이다. 그 결과 일할 기회를 잃는 것은 현장의 근로자들이고, 소득 감소와 고용 불안으로 이어진다. 안전을 위한 제도가 오히려 노동의 연속성을 해치고 삶을 곤궁하게 만드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
제도의 방향부터 어긋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조문은 1,200여 개가 넘지만, 법의 초점은 사고 예방이 아니라 사후 처벌에 맞춰져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167조처럼 근로자 사망시 사업주 처벌을 전제로 한 규정이 이를 보여준다. 규제가 늘어날수록 현장은 안전 관리보다 법적 리스크 관리에 매달리게 된다.
산업안전 선진국들은 다른 길을 택했다. 대표적으로 영국은 기업의 자율적 위험성 평가와 예방 시스템을 중심으로 정책을 운영한다. 구체적인 안전 관리 방식은 기업과 현장에 맡긴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주체가 안전 기준을 설계하고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현장의 특성을 반영한 실질적 안전을 가능하게 한다.
비용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사고 이후 과징금과 소송에 돈을 쓰기보다, 사전에 안전 설비와 교육에 투자하는 편이 사회 전체로 이롭다. 기업은 불필요한 부담을 줄일 수 있고, 근로자는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다. 처벌만으로는 중대재해를 줄일 수 없다.
산재를 줄이겠다는 의지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 방식의 제도를 만들어 비용을 늘리고 사업 운영을 경직적으로 만드는 것이 문제이다. 처벌만 강조하는 규제가 늘수록 책임 회피와 형식적 대응이 확산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4년의 결과는 이 명확한 사실을 보여준다.
겁을 주고 수사를 강화해도 산재는 줄지 않았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엄벌 위주의 정책만으로 중대재해를 줄일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필요한 것은 처벌의 추가가 아니라 방향의 전환이다.
산업현장의 안전은 현장에서 개선되어야 한다. 처벌로 통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예방을 중심으로 한 자율과 책임의 구조로 바꿔야 한다. 현장을 아는 사람들이 위험을 설계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제도를 재정비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산업안전이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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