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 임대료 상한과 건설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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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박효숙 2025-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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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착한 임대료’와 보이지 않는 대가
최근 한국의 주택정책 논쟁에서 가장 뜨거운 키워드 가운데 하나는 전·월세 상한제다. 2020년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은 계약갱신청구권과 함께, 갱신 시 임대료 인상률을 5% 이내로 제한하는 상한을 도입했다. 2년마다 불안하게 집을 옮기던 세입자 입장에서 보면 “더 이상 갑자기 20%씩 임대료가 오르지는 않는다”는 약속이 주어졌고, 언론과 정치권에서도 이를 세입자 보호를 위한 대표적인 서민 정책으로 소개했다.
그러나 경제학 교과서에서 임대료 상한제는 다른 이름으로 등장한다. 바로 “가격 상한(price ceiling)”이라는 전형적인 가격 통제 수단이다. 미국 상원 공동경제위원회가 2022년 발표한 보고서는 1970년대 에너지 가격 상한, 임대료 규제 등의 사례를 검토하며, 가격 상한이 단기적으로는 물가를 눌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공급 감소와 품질 저하, 암시장, 대기열 등의 부작용을 낳았다고 정리한다(United States Joint Economic Committee, 2022).
이 글은 임대료 상한제를 둘러싼 논쟁을 “찬성 vs 반대”의 구도로만 보지 않고, 세입자 보호 효과와 주택 공급·건설 유인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살펴본 뒤, 무엇이 더 이로운 설계인가라는 질문으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2. 연구가 보여주는 임대료 상한의 ‘명암’
2-1. 세입자 보호: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을 지키는 힘
먼저 상한제가 의도한 목표인 세입자 보호 측면을 보자. 서울 대단지 아파트의 실거래 데이터를 이용해 2015~2021년 전세시장을 분석한 민인식(2021)은, 임대차 2법 시행 이후 기존 세입자가 갱신할 때 임대료 상승이 억제되면서 단기적으로는 기존 거주자의 주거 안정성이 분명히 높아졌음을 보여준다(민인식, 2021)
국제 연구도 비슷한 그림을 그린다. 샌프란시스코에서 1990년대 중반에 시행된 임대료 규제 확대를 분석한 다이아몬드·맥쿼드·치엔(2019)은, 임대료 상한 적용을 받은 세입자들의 퇴거와 도시 밖으로의 이주가 줄어들고, 거주 기간이 길어졌다는 결과를 제시한다. 임대료 상한제가 일종의 “주거권 보호 장치”로 작동했다는 의미다(Diamond et al., 2019).
이처럼 상한제는 “지금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확실한 안전망이 된다. 임대료 폭등 위험이 줄어들면 자녀 교육이나 직장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지역에 머물러야 하는 가구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 이 점 때문에 임대료 상한제는 정치적으로도 강한 지지를 얻는다.
2-2. 공급 위축과 시장 왜곡 : 내 집이 없는 사람에게 돌아올 부담
문제는 그다음이다. 같은 연구에서 다이아몬드 등은, 상한제를 적용받은 건물의 집주인들 임대주택을 매각해 자가로 전환하거나, 재개발을 통해 전월세 시장에서 빼버리는 방식으로 대응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임대주택 공급이 15% 정도 줄었고, 그 결과 도시 전체 평균 임대료가 약 5% 상승했다고 지적한다(Diamond et al., 2019).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 오히려 전체 임대료 수준을 밀어 올리고, 특히 새로 유입되는 세입자에게 더 비싼 집값을 떠넘긴 셈이다.
콘스탄틴 홀로딜린은 최근 저널 Journal of Housing Economics에 발표한 대규모 문헌 검토에서, 전 세계 임대료 규제 사례를 종합 분석했다. 그의 결론은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임대료 상한은 규제가 적용되는 주택의 임대료 상승을 억제하는 데는 꽤 효과적이다. 둘째,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신규 주택 건설과 임대주택 공급, 주택 품질, 인구 혼합도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다수다(Kholodilin, 2024). 여러 연구를 정리한 결과, 건설 투자와 주택 품질에 대해서는 “부정적 효과가 우세하다”는 것이 공통된 결론이다.
한국의 경험도 비슷한 고민을 던진다. 민인식(2021)의 분석에 따르면, 전·월세 상한제 시행 후 서울 전세시장은 “기존 계약과 신규 계약이 다른 가격 궤적을 보이는 이중 구조”가 심화되었다. 기존 세입자의 갱신 전세가격은 상한에 묶여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되지만,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가는 신규 전세가격은 반사실적 시나리오에서 예측되는 가격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형성된다. 상한제가 단기적으로는 일부 세입자를 보호하지만, 그 부담이 향후 신규 세입자에게 집중되는 구조가 나타나는 것이다(민인식, 2021).
또 다른 정책 연구에서는, 임대료 상한이 도입되면 임대인이 “규제를 받지 않는 영역”으로 이동할 유인이 커진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보증부 월세로 전환하거나, 아예 임대 시장에서 주택을 빼고 자가로 쓰거나 매각하는 방식이다. 한국토지주택·국토연구원 등은 전월세 상한제 논의 초기부터 정확한 임대료·계약정보를 축적하는 전월세 등록제와 표준임대료 체계가 갖춰지지 않으면, 상한제는 일부 계약에만 부분적으로 작동하고, 오히려 시장 왜곡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KRIHS, 2016).
이러한 현상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가격 통제의 전형적인 부작용”과 닿아 있다. 가격이 수요·공급을 조정하는 신호 역할을 하는데, 상한이 도입되면 이 신호가 왜곡되고, 공급자는 장기 투자(신규 건설·리모델링)를 줄이거나 다른 시장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의 교육 자료는 뉴욕의 임대료 규제 사례를 소개하며, 임대료 상한이 도입되면 건설업자들은 더 이상 추가 아파트를 지을 인센티브를 느끼지 못하고, 그 결과 만성적인 주택 부족이 이어진다고 설명한다(EBF 200, Penn State).
2-3. 건설 유인과 임대료 상한: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임대료 상한제는 항상 나쁜 정책일까? 홀로딜린(2024)의 리뷰는 조금 더 미묘한 그림을 제시한다. 단기·중기에는 상한제가 특정 계층의 임대료 상승을 눌러 주거비 부담을 줄이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며, 특히 급격한 gentrification이 진행되는 도심에서는 퇴거와 쫓겨남을 완화하는 안전판이 될 수 있다(Kholodilin, 2024).
그러나 그와 동시에, 임대료 상한제만을 앞세우고 주택 공급 확대와 도시계획 개혁이 뒤따르지 않을 경우, 중장기적으로는 공급 위축과 시장 왜곡이 누적되어 결국 “임대료 상한제를 적용받지 못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높은 주거비라는 형태로 비용이 전가될 위험이 크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제기된다. 서울의 전세시장 데이터를 이용해 임대차 3법의 장·단기 효과를 분석한 연구들은, 임대료 상한제와 갱신청구권이 단기적으로는 전세 상승률을 낮추지만, 2년 이후 갱신·신규 계약 시점에서는 오히려 가격 급등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민인식, 2021 등).
건설 유인의 관점에서 보면, 중요한 것은 “임대료 상한제를 할까 말까”가 아니라, 어떤 범위와 기간, 어떤 시장에서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이다. 예를 들어 전체 민간 임대시장에 영구적인 강한 상한을 거는 방식은 장기적으로 건설 투자와 주택 품질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크다. 반면, 저소득층이 밀집한 일부 지역·소형 주택에 한정해 상한제를 적용하고, 동시에 그 외 영역에서는 용적률 완화, 공공 인프라 투자, 세제 인센티브 등을 통해 민간 건설 유인을 높이는 방식이라면 “세입자 보호”와 “공급 확대”를 어느 정도 함께 추구할 수 있다.
국토연구원 보고서는 상한제를 설계할 때 정확한 임대정보 인프라(등록·신고제), 표준임대료와 물가연동 상한, 주거비 보조와의 연계, 지역별·시장 상황별 차등 도입을 권고한다(KRIHS, 2016). 이런 요소가 갖춰져야만, 상한제가 무분별한 가격 통제가 아니라, 공급 유인을 완전히 죽이지 않으면서도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정밀한 정책도구”로 작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3. 세입자 보호와 건설 유인의 균형점 찾기
임대료 상한제는 직관적으로 매력적인 정책이다. “임대료 인상률 5% 상한”이라는 한 줄 문장은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되며, 불안한 세입자에게는 즉각적인 안도감을 준다. 실제로 국내외 연구는 상한제가 현재 그 집에 살고 있는 세입자를 보호하고, 단기적으로 임대료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임대료 상한은 주택 공급과 건설 투자, 임대주택의 품질·유지보수, 신규 세입자의 진입 비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확인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착해 보이는 정책”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임대료 상한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더 많은 세입자에게 불리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임대료 상한 vs 건설 유인, 어느 쪽이 더 이로운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둘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에 가깝다. 바람직한 방향은 임대료 상한제를 좁고 깊게, 즉 보호가 꼭 필요한 계층·지역·기간에 한정해 정밀하게 적용하면서, 그 밖의 영역에서는 규제 완화·공급 확대·공공임대와 바우처 등으로 건설 유인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임대료 상한제는 건설 유인을 파괴하는 “가격 통제”가 아니라, 주택 공급 확대 전략과 함께 움직이는 하나의 보완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