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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굿즈가 만들어 낸 작은 시장

글쓴이
김연우 2025-12-12

최근 <체인소맨>이라는 애니메이션의 극장판이 개봉했다. 한국의 누적 관객 수는 무려 300만 명이다. 이 애니메이션의 열렬한 팬들을 위해 극장들은 치열한 굿즈 경쟁을 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나와서 카운터에 영화 티켓을 제시하면 포스터, 스페셜 티켓, 필름 등의 굿즈를 제공받을 수 있다. 이 굿즈는 영화사별로, 주차 별로 다르다. 인기가 많은 캐릭터가 그려져 있지만 물량이 별로 풀리지 않은 포스터는 한 장에 얼마로 거래되는지 아는가? 무려 85,000원이다. 종이 한 장이 희소성과 수요에 의해 새로운 가치를 물질 그 이상의 가치를 얻은 것이다.


영화 굿즈는 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탐내지 않는다. 그 영화의 인기, 굿즈의 희소성 등을 고려하고 오직 ‘리셀’만을 목적으로 하는 수집가들도 열을 올린다. 고로 영화 굿즈 리셀이 단순 팬심의 부산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리셀러들과 영화의 팬들이 상호작용하는 판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시장이다. 영화 굿즈의 가격이 제작사나 극장이 아닌 시장 참여자들에 의해 다시 정해지는 것이다.


[리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는 시장경제의 핵심 원리인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작동한 결과다. 굿즈의 물량이 적고, 이를 소유하려는 사람이 많을수록 가격은 상승한다. 그 결과 영화 사은품, 즉 무료였던 포스터가 몇만 원으로 거래되는 것이다. 이는 시장이 작동하는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러나 시장이 효율적이라고 해서 무조건 공정한 것은 아니다. 일부는 리셀을 비판하고, 근절해야 할 행위로 여긴다. <허생전>에 등장하는 허생은 부자에게 거액의 돈을 빌린 후 한양의 과일을 모두 사들인다. 그러자 한양에서는 과일이 없어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허생은 이때 가지고 있던 과일을 모두 팔며 큰 차익을 남기게 된다. 허생은 막대한 이윤을 얻었지만, 사회의 거래 질서를 흔들었다. 이처럼 소수의 사람이 공급을 독점하면 시장은 균형을 잃는다.


현대의 많은 리셀러들도 허생과 같은 행위를 한다. 영화 굿즈뿐만이 아니라 의류, 콘서트 티켓 등 다양한 물품을 대량으로 사들여 되파는 행위는 시장 지배나 마찬가지다. 이들은 희소성을 인위적으로 강화하며 가격을 폭등시키고, 소비자들이 상품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다.


이에 따라 외부의 개입이 필요할 때도 있다. 국가는 매점매석을 막기 위해 ‘물가 안정에 관한 법률’로 시장에 개입한다. 영화 굿즈 리셀 시장에는 영화관이 개입한다. 영화관에서는 티켓을 최대 1인 2매까지만 예매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자율성과 공정성의 균형이야말로 시장경제를 지속하는 조건이다.


[리셀 시장에 숨은 경제 효과]
<극장판 체인소맨: 레제 편>의 아트그라피 포스터는 높은 희소성과 좋은 품질로 인해 리셀 가격대가 높게 형성되었다. 그러나 7주차 포스터가 공개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7주차 포스터가 아트그라피 포스터와 거의 비슷했기 때문이다. 대체재가 등장하자 아트그라피 포스터의 가격이 내려갔고, 일부 리셀러들은 일찍 팔길 잘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여기에는 대체재가 시장에 영향을 끼치는 원리가 드러나 있다. 비슷한 디자인의 포스터가 새로 등장하며, 대부분의 팬은 굳이 비싼 포스터를 살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희소성의 힘으로 치솟은 가격이 대체재의 등장으로 인해 조정되는 것이다. 이는 시장경제가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수요가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을 때, 대체재가 등장하면 가격이 안정된다.


[맺으며]
이렇듯 영화 굿즈 리셀 시장은 실제 시장만큼이나 변화무쌍하다. 희소성과 품질로 리셀가가 결정되고, 대체재의 등장으로 가격이 하락하기도 한다. 굿즈로 티켓 판매량을 끌어올리려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제작사와 영화관이지만, 중간 판매자의 역할을 하는 리셀러라는 새로운 존재가 이익을 보고 있기도 하다.


리셀 시장을 비판하든, 옹호하든, 그 시장은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 영화 굿즈에 대한 욕망과 감정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포스터는 한 장의 종이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기억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투자다. 마음이 존재하는 한 리셀 시장은 그 자리에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리셀 시장의 자유와 공정을 어떻게 보장하느냐가 앞으로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