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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은 정체를 용납하지 않는다: e스포츠 패권의 이동과 시장경제의 냉정한 논리

글쓴이
권석무 2025-12-12

- e스포츠의 모국, 한국이 중심에서 밀려나는 이유 - 사우디아라비아와 싱가포르가 재편하는 글로벌 e스포츠 헤게모니 -


e스포츠는 대한민국이 세계 시장에 제시한 가장 성공적인 문화산업 혁신이었다. 2000년대 초반, 스타크래프트 리그와 프로게이머 제도, 케이블 중계 시스템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며 한국을 ‘e스포츠의 모국(motherland of e-Sports)’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시장경제의 원리는 냉정하다. 공급자는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며, 수요자는 더 큰 자본과 효율을 따라 움직인다. 지금의 글로벌 e스포츠 시장에서 그 중심은 더 이상 한국이라고 단언하기에 어려운 현실이다.


1. 자본이 있는 곳이 중심이 된다


시장경제의 본질은 자본의 흐름이다. 2020년대 중반, 글로벌 e스포츠 자본의 무게중심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싱가포르로 이미 옮겨졌다고 보아도 과장이 아니다. 사우디는 ‘비전 2030(Vision2030)’을 통해 원유 수출로 축적한 국부를 디지털 산업으로 전환하는 투자 다각화 전략을 실행 중이다. 국부펀드(PIF)는 EWC(Esports World Cup)라는 초대형 프로 대회를 출범시키며, 상금 규모만으로 기존 시장의 규칙을 재편했다. 이 거대한 자본은 시장에서 일종의 가격 신호로 작용해, 글로벌 게임사와 선수, 중계 플랫폼이 모두 사우디 수도 리야드로 몰려드는 현상을 낳았다.


한국의 e스포츠가 한때 자생적 경쟁력으로 세계 시장을 선도했지만, 지속 가능한 자본 재투자 체계를 구축하지 못한 점은 치명적이었다. 시장은 기술보다 자본 순환의 지속성에 따라 보상한다. 반면, 사우디는 중앙집권적 투자 구조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단숨에 확보했다. 이는 “자본은 가장 높은 효율과 수익이 보장되는 곳으로 흐른다.”라는 시장경제의 핵심을 되내이게 만든다.


2. 글로벌 e스포츠의 경제 질서, 효율성의 논리로 재편되다


한편 싱가포르는 자본보다 거버넌스의 효율성으로 시장을 장악했다. 글로벌e스포츠연맹(GEF)은 단일 종목 중심의 협회 모델이 아닌, 국제표준·지속가능발전·문화외교를 결합한 멀티 거버넌스 플랫폼으로서 작동한다. 이 구조는 시장경제의 ‘규제 효율성’ 원리를 따른다. 즉, 복잡한 이해관계를 단일 규범 체계로 조정함으로써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을 최소화하고, 네트워크 확장을 통해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를 달성하는 방식이다.


반면 한국의 국제e스포츠연맹(IESF)은 여전히 국내 중심의 폐쇄적 운영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시장경제 관점에서 혁신의 기회비용(opportunity cost) 을 스스로 높이는 행위다. 세계 자본은 이제 기술과 원류의 본고장보다도 운영 효율성과 제도적 안정성을 찾아 가고 있다. 결과적으로 싱가포르와 사우디는 각각 효율성과 자본력을 앞세워 e스포츠 시장의 새로운 쌍두마차로 자리매김했다.


3. e스포츠 시장의 경쟁과 혁신, 그리고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시장경제에서 경쟁은 혁신의 동력이다. e스포츠의 초기 성장 단계에서 한국은 공급자 혁신의 모범이었다. 그러나 성숙기에 접어든 지금의 글로벌 시장에서는 제도 혁신과 정책 혁신이 핵심 경쟁 요소로 바뀌었다. 사우디는 e스포츠를 국가 브랜드 산업으로, 싱가포르는 국제 규범 산업으로 포지셔닝함으로써 시장 질서를 재설계하고 있다.
이와 달리 한국은 여전히 공공 규제와 민간 자율성의 불균형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청소년 게임시간 규제, 산업 진흥과 중독 논쟁의 병존, 불명확한 세제 정책 등은 시장 효율성을 훼손한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결국 정책의 일관성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성을 요구한다. 이러한 구조적 제약이 풀리지 않는 한, 한국은 e스포츠 시장의 창의적 선도자에서 기술 공급자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4. e스포츠 외교와 자본 시장의 융합


e스포츠는 더 이상 단일 산업이 아니다. 디지털 콘텐츠, MICE, 관광, 교육, 그리고 외교가 결합된 복합 시장 플랫폼이다. GEF가 유네스코(UNESCO), IOC, 유누스스포츠허브(YSH) 등과 협력하는 이유는 바로 이 복합성 때문이다. 국제기구와 연계된 e스포츠는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ESG 투자 흐름과 직결된 신경제 모델이다.


사우디와 싱가포르가 이 시장을 선도하는 이유도 명확하다. 이들은 e스포츠를 통해 금융 자본과 문화 자본의 융합을 실현하고 있으며, 이는 곧 국가 브랜드 가치 상승으로 이어진다. 한국이 국제적 헤게모니를 되찾기 위해서는 e스포츠 외교 전략을 산업 정책과 분리하지 않고, 국가 자본시장 및 글로벌 투자정책과 통합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5. 자본의 논리를 이해하는 자가 미래 e스포츠를 지배한다.


한국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게임 개발력과 선수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은 기술보다 자본의 방향성과 정책의 신뢰성을 더 높게 평가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우디와 싱가포르의 사례는 시장경제의 본질을 보여준다.


e스포츠의 국제적 헤게모니는 단순히 누가 먼저 시작했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시장을 더 잘 이해하고, 자본의 흐름을 전략적으로 설계했는가의 문제다. 한국이 다시금 중심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원조의 자부심을 넘어, 자본의 언어로 세계를 설득하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