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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화폐의 갈림길, 한국의 해법은

글쓴이
이명운 2025-12-12

지난 8월 21일, 최대 스테이블 코인 기업 ‘서클’의 총괄 사장 히스 타버트가 한국을 방문했다. 이어 22일에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면담을 가지며 원화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한국은 결제 인프라가 이미 세계적 수준이지만 원화 스테이블 코인 도입을 통해 온체인 경제에서도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스테이블 코인이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보다 우월함을 강조했다. 국내 시중은행 역시 스테이블 코인 사전준비와 내부적 기술검증을 통해 국내 스테이블 코인 도입의 가속화를 이끌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스테이블 코인 도입시 통화정책의 효율성 저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재 한국은행은 스테이블 코인 도입이 아닌 프로젝트 ‘한강’을 통해 CBDC 도입을 주도하고 있다. 이는 민간 금융업의 기조와 다른 안전성에 초점을 둔 정책이다. 이렇듯 스테이블 코인과 CBDC 관련 행보에 대해 관심이 몰리는 만큼, 이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형성되고 있다.


가상자산은 크게 안정성, 통화정책의 적용, 효율성, 그리고 투명성이란 기준 하에 그 활용을 인정받아야 한다. 스테이블 코인과 CBDC 모두 기준을 완벽히 충족하지 못하는 실상이다. 무엇보다 스테이블 코인은 비교적 안정적인 금융 상품으로 보기 어렵다. 스테이블 코인은 민간이 발행하는 상품이므로 투자자의 원금 보호가 법적으로 어렵다. 또한 코인 발행 기업은 복합자산을 담보로 구성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가령, 현재 코인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USDT는 45% 이상의 담보가 회사채, 대출, 펀드 투자금, 자원광물 투자금 등 비현금 자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현금성 자산으로만 구성된 담보에 비해 유동성이 떨어지며, 경제 위기 상황에서 비현금 자산에 끼친 여파가 코인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정성 보장이 어려울 수 있다. 무엇보다 스테이블 코인이 민간 신뢰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투자 심리에 따라 테라 사태와 같은 급격한 디패깅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에 비해 CBDC는 국가 주도의 가상화폐이며, 모두가 예금자보호법 상의 안정적인 자산 보유를 약속 받는다. 또한 중앙은행의 감독하에 전자화폐 관리가 용이하다. 이처럼 심리에 따라 혹은 경제 위기에 따라 가치가 급변하는 스테이블코인과는 달리 CBDC는 비교적 안정적이다.


통화정책에 대한 영향력 측면에서도 CBDC는 스테이블코인에 비해 강점을 가진다. CBDC는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고 유통량을 관리하기 때문에 기존 통화정책의 효과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민간 스테이블코인이 확산될 경우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영향력은 약화될 수 있다. 만약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은행 예금을 대체할 정도로 성장한다면, 중앙은행의 금리 정책이 시중에 미치는 파급력이 줄어들 수 있다. 또한, 대규모 자금이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동할 경우 금융 시스템의 불안정성을 야기할 수도 있다. 이는 중앙은행이 통화량 조절을 통해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을 꾀하는 전통적인 통화정책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활용성의 잣대에서는, CBDC의 한계가 두드러진다. CBDC는 본원통화의 ‘전자화’이므로 그 범용성이 국내에 제한된다. 또한 전세계적으로 CBDC 구축보다는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시스템 형성이 우선되고 있는 실상에서 CBDC도입은 해외 결제 시스템에서의 고립을 야기할 수 있다. 반면, 스테이블 코인은 기존의 코인보다 안정한 가격과 고정적 이자를 바탕으로 해외 결제 및 송금이 자유로워지는 장점이 있으며 거래 수수료 역시 굉장히 낮다. 거래 시점과 규모에 따라 상이하겠지만, BOSTON CONSULTING GROUP의 보고서에 따르면 Aptos의 최소 수수료는 0.0001$이며 Ethereum의 최소 수수료는 0.01$으로 굉장히 낮은 외화 거래 수수료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기존의 시중 은행 내의 외환 교류에 비해 즉각적인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에 경제 유동성에도 기여한다.


투명성 문제는 CBDC와 스테이블코인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다. 스테이블코인의 경우 준비금 관리에 대한 법적 근거가 불명확하면 안정성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제도적 명료성을 위해서는 채권 담보와 물권 담보의 구분, 준비금의 투명성에 대한 국가별 제도 차이 해소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또한 스테이블코인에 과도한 익명성이 보장될 경우 자금세탁이나 불법거래 등 범죄 악용 위험이 높아진다는 점에서도 투명성 확보가 필수적이다. 반면 CBDC는 제도 설계상 높은 투명성이 내재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곧 개인 거래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감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이러한 보편적인 쟁점들을 넘어, '원화'라는 특정 통화에 기반한 스테이블코인을 한국의 금융 환경에 도입하려 할 때, 우리는 또 다른 제약 요인들을 고려해야 한다. 먼저, 준비자산 마련의 어려움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한다. 안정적인 스테이블코인 운영을 위해서는 발행량에 상응하는 안전자산을 준비금으로 보유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단기 국채가 가장 이상적인 준비자산으로 꼽히지만, 한국은 국가재정법상 단기 국고채를 상시적으로 발행하지 않는다. 이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안정적인 준비자산을 확보하는 데 상당한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 통화안정증권이나 재정증권 등이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시장 규모나 유동성 측면에서 충분한 공급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충분한 수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도 의문이 제기된다. 현재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테더와 서클이 발행하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90% 이상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미 강력한 생태계를 구축한 달러 스테이블코인과의 경쟁에서, 과연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얼마나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고 국제적 사용 기반을 갖출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CBDC와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각각 명확한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현 단계에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두 제도를 상호 보완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CBDC는 국가가 직접 발행·관리하는 디지털 화폐로서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과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보장할 수 있다. 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글로벌 디지털 금융 환경에서 결제 효율성을 제공할 수 있다. 따라서 국내 금융 시스템은 CBDC를 중심축으로 삼아 안정성을 확보하고, 원화 스테이블코인으로 효율성과 혁신을 보완하는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 이렇게 두 제도가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할 때, 한국은 디지털 경제 전환 과정에서 균형 잡힌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