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定年) 제도는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사회의 상식처럼 자리 잡았다. 일정 연령이 되면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관념은 '은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냉정히 보면 정년제는 '일할 자유’를 법으로 제한하는 연령차별의 한 형태다. 개인의 능력과 의지가 아닌 나이만으로 일터에서 배제하는 제도는 자유주의 사회의 기본 원칙과도 맞지 않는다.
초저출산·초고령화 시대라는 현실은 분명히 고령층 노동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지만, '65세 정년 연장’ 입법으로 대응하는 것은 근본적 해법이 아니다. 오히려 기업의 부담을 키우고, 청년층의 기회를 줄이며,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더욱 경직시킬 위험이 크다.
◆ 정년 연장은 고령층 보호보다 청년층 기회 박탈과 노동시장 이중구조 확대
정년 연장 시행 때마다 고령층 고용은 늘었지만 청년층 채용은 감소했다는 연구결과는 이미 여럿 확인된 바 있다. KDI는 60세 정년 의무화 이후 고령자 1명 증가당 청년 0.2명 감소 현상을 지적했고, 한국은행은 그 수치를 최대 1.5명까지 추정했다. 2016년 정년 60세 도입 당시 혜택은 주로 대기업 정규직 고령근로자에게 집중되었고, 중소기업과 청년층은 그만큼 기회를 잃었다.
문제의 본질은 노동생산성과 괴리 된 연공서열형 임금체계에 있다. 실제 한국경제인협회 추산 결과, 정년 65세 연장 시 5년 내 추가 인건비가 3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 부담은 결국 신규 청년채용 축소, 자동화 투자 가속, 생산기지 해외 이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법정 정년 상향의 직접 수혜는 주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에 집중될 것이다. 반면 중소기업, 비정규직, 특고·플랫폼 노동자, 자영업자는 정년 규정 밖 사각지대에 있어 혜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같은 '고령 노동자’ 사이에서도 격차와 갈등이 커지고,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더 확대될 수 있다.
◆ 정년제는 '나이로 고용 통제’, 퇴직 후 재고용이 합리적
정년의 수치를 높이는 것은 일자리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로 고용을 통제’하는 행정 개입의 연장선이다. 정년을 없애면 모두가 불안정해진다는 오해가 있지만, 실제로 필요한 것은 퇴직 후에도 능력에 따라 다시 일할 수 있는 제도적 길을 넓히는 일이다.
정년 연장보다 '퇴직 후 재고용 제도’가 합리적인 대안이다. 이미 일본과 유럽 다수 국가는 법정 정년 대신 계속고용 제도를 통해 고령 근로자의 일할 기회를 보장하고 있다. 이는 기업이 직무·성과를 기준으로 근로자를 선별해 재고용할 수 있게 하여, 세대 간 일자리 경합을 최소화한다. '일 할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시장의 효율성을 지키는 길이다.
◆ 정년 연장 보다 임금체계 개혁과 생산성 향상 논의가 우선
지금 필요한 것은 '나이’의 문제가 아닌 '일’의 문제다. 연공급 중심의 임금체계가 지속되는 한, 정년 논의는 결국 기업의 부담과 세대 갈등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능력 중심의 임금체계로 전환해야 노동시장의 지속가능성이 생긴다. 직무․성과급제 확대는 단순한 임금 구조 조정이 아니라, 생산성 중심 사회로의 전환을 뜻한다
◆ 초고령화 시대 해법, 정년 연장 아닌 '나이와 상관 없이 능력껏 일할 자유’
즉, 나이를 떠나 능력껏 보상이 이루어지면, 고령 근로자에게는 자신의 경험과 숙련을 시장에서 평가받으며 더 일할 수 있고, 기업은 합리적 인건비 관리가 가능해져 청년층에게는 공정한 일자리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게 된다, 이것이 초고령화 시대 가장 자유롭고 시장친화적인 해법이다.
고광용 자유기업원 정책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