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은 법으로 일괄 상향할 문제가 아니다. 현행법은 정년을 최소 60세 이상으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다음은 속도가 아니라 방식의 문제다. 정년 수치만 올리기보다 임금체계와 직무 전환, 계속 고용 장치를 함께 설계해 세대·기업 간 부담을 균형 있게 나눠야 한다.
정부와 여당은 현재 정년을 2033년까지 단계적으로 65세로 높이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명분은 국민연금 수급 연령과의 간극, 이른바 '소득 크레바스’를 메우기 위함이다. 하지만 '얼마나 늘릴 것인가’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지속 가능한 구조로 만들 것인가’다.
생산성과 임금 구조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정년만 늘리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청년층의 일자리 기회는 그만큼 줄어든다. 한국은행은 고령 근로자 1명이 늘면 청년 채용이 약 1명(0.4~1.5명)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서도 청년의 70% 이상이 '정년연장이 채용문을 좁힐 것'이라 답했다.
문제는 정치권이 이 거대한 세대 변화를 표심의 논리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공형 호봉제가 유지된 채 법정 정년만 늘어난다면, 기업은 신규 채용 여력을 상실하고 세대 간 '머릿수 싸움’만 남게 된다. 고령층의 선거 영향력이 커질수록 청년층의 목소리는 더욱 작아진다. 단기적 인기 영합이 아닌, 장기적 지속성을 고려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이유다.
임금피크제는 비용 상승을 완화했지만, 고용 개선 효과는 미미했다. 따라서 정년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임금피크제의 실질화,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 전환, 재배치·재교육 시스템이 병행되어야 한다.
단순한 연장보다 구조적 개혁이 먼저다. 직무 중심의 임금체계로 전환하면 숙련과 성과에 따라 근속의 연속성을 인정받을 수 있고, 기업은 인건비 부담을 통제하면서도 고령 인력의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유연한 '계속 고용체계’다. 기업과 근로자가 자율적으로 계약을 연장하고, 성과와 역량에 따라 근속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고령자 재교육과 재취업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고령층이 단기·프로젝트형 업무로 전환하고, 청년층은 새로운 일자리로 진입하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될 때 고용 연장은 진정한 '세대 상생’의 제도가 된다.
고령층이 주 5일보다 적게, 탄력적으로 일할 수 있는 근로 모델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년연장이 반드시 정규직 유지로만 이어질 필요는 없다. 기업에 단계적 근로시간제나 탄력근무제를 허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개인이 생애주기별로 일할 수 있는 경로를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정년을 늘리는 법 조항보다, 세대 간 이동과 재훈련을 촉진하는 제도적 사다리가 더 중요하다. '얼마나 오래 일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일할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이다.
초고령사회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에 맞는 고용 생태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고용 균형은 달라질 것이다. 국회는 입법 과정에서 정치적 유불리보다 현장의 적합성과 실행 가능성을 우선해야 한다.
김상엽 자유기업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