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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식으면 경제 온기 사라져, 기업 성장 환경 마련 시급

글쓴이
이호경 2025-10-28 , 마켓뉴스

한국 제조업의 실적이 코로나 시기보다 더 나빠졌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전국 2275개 제조기업 중 75%가 올해 영업이익이 연초 목표에 미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팬데믹 초기인 2020년보다도 높은 수치다. 내수는 소비 회복이 지연되고, 수출은 반도체를 제외하면 감소세를 이어가며 산업 전반이 활력을 잃고 있다.

제조업은 여전히 한국 경제의 중심축이다. 국내총생산(GDP)의 약 27%를 차지하며, 수출과 고용, 기술혁신을 이끌어온 분야다. 그러나 최근의 어려움은 일시적인 경기 둔화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에 가깝다. 특히 중소 제조업은 자금 사정이 악화되고, 숙련 인력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 중국과의 기술 격차마저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15년 전만 해도 압도적이던 한·중 기술 경쟁력 구도는 이제 '비슷하다’는 평가가 절반을 넘으며, 생산 효율성에서도 중국이 앞서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제도적 환경이 기업의 회복력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응답 기업의 44%가 올해 들어 법·제도 부담이 오히려 늘었다고 답했다. 근로시간 단축 논의, 법인세 인상 가능성 등은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이러한 제도는 현장의 여건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생산과 투자 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다.

산업 경쟁력의 핵심은 기업이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활동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기업은 투자 대신 비용 절감과 위험 회피를 선택한다. 국내 산업이 경직되면, 생산 거점은 해외로 이전되고, 일자리는 줄어든다. 이는 단순히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전반의 체질 약화로 이어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방향을 현실에 맞추는 일이다.

세계 각국은 제조업의 기반을 지키기 위해 구조 개편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주요 산업의 자국 내 복귀를 추진하고, 일본과 유럽은 첨단 기술 산업을 육성하며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 역시 제조업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 일률적인 규제보다는 산업의 특성과 규모를 고려한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복잡한 절차를 단순화하고, 기업이 스스로 혁신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기 부양책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의 복원이다. AI나 디지털 기술 같은 신산업도 결국 제조업과의 결합을 통해서만 지속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 새로운 산업이 성장하려면 기존 산업의 기반이 탄탄해야 한다. 기업이 투자를 망설이지 않도록 제도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현장의 효율성을 가로막는 규제를 정비해야 한다.

제조업이 식으면, 경제의 온기도 식는다. 국가의 경쟁력은 공장에서 나온다. 산업의 활력은 단순히 경제지표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일자리와 삶의 질을 지탱하는 근간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시장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정비하는 일이다. 제조업의 회복이 곧 한국 경제의 회복이며,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장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이호경 자유기업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