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을 살리자’며 시작된 대형마트 규제가 어느덧 시행 12년을 맞았다. 일요일 의무휴업, 심야영업 금지, 출점 제한 등 촘촘히 짜인 유통산업발전법의 그물망은 대형마트를 옥죄었고, 규제의 명분은 줄곧 '골목상권 보호’였다. 그러나 이 규제가 진정 전통시장을 지키고 소비자를 위한 것이었는지는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현실은 통계가 말해준다. 전통시장의 매출은 10년 전보다 소폭 증가했지만 시장 점유율은 오히려 하락했고, 점포 수와 고용은 정체 상태다. 카드 단말기나 POS 기기, 온라인 판매 시스템 도입 등 기본적인 현대화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자구책은 부족했고, 규제만 덧씌워진 결과다.
그렇다고 대형마트가 반사이익을 본 것도 아니다. 오프라인 유통시장 전체가 위축됐다. 시장은 변했다. 경쟁 구도는 더 이상 '대형마트 vs 전통시장’이 아니다. 진짜 경쟁자는 온라인이다. 규제로 묶인 대형마트는 온라인 플랫폼에 소비자를 뺏겼고, 전통시장은 여전히 낙후된 환경 속에 머물렀다. 결과적으로 승자는 아무도 없고, 소비자 선택권만 침해받은 셈이다.
2020년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러한 흐름을 가속화 했다. 비대면 소비가 일상화되며 온라인 유통의 매출은 급격히 상승했고, 대형마트의 규제는 오히려 디지털 전환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되었다. 전통시장 보호는커녕 유통산업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만 키운 것이다.
정책은 현실을 따라야 한다. 이미 현장에서는 변화가 시작됐다. 대구시는 지역 상인회, 슈퍼마켓 협동조합과 협약을 맺고 주말 의무휴업을 폐지한 바 있다. 지자체별 자율적인 규제 완화가 속도를 내고 있으며, 산업통상자원부도 상생협약 방식으로 제도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이제 국회가 응답할 차례다. 유통법 개정안은 이미 발의된 지 4년이 넘도록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온라인 쇼핑에 한해 의무휴업을 면제하거나, 통신판매업에 대한 영업시간 제한을 풀자는 내용이 핵심이다. 전면적인 규제 철폐는 어렵더라도 소비자 편익과 유통시장 현실을 반영한 단계적 개선이 시급하다.
정책은 명분보다 실효성이 중요하다. '전통시장 보호’라는 이름으로 소비자의 선택권을 희생하고, 헌법상 비례의 원칙까지 침해하는 규제는 이제 폐기해야 한다. 전통시장을 살릴 유일한 길은 규제가 아니라 스스로의 경쟁력이다. 현대화, 홍보, 서비스 개선 등 시장 상인의 자구 노력 없이는 어떤 법도 시장을 지킬 수 없다.
12년의 교훈은 분명하다. 누구도 이기지 못한 규제는 결국 모두를 패자로 만들었다. 이제는 유통의 현실을 직시하고, 소비자를 위한 합리적 유통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할 때다. 규제를 풀어야 소비자도 온․오프라인 마켓도 모두가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고광용 자유기업원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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