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받는 도둑질 – 가짜 공공성이 감춘 진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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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정연서 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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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공공성: 모두를 위한다는 거짓말」이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나는 그 모순된 단어 조합에 이끌려 공모전 도서 목록 중 이 책을 골랐다. ‘공공성’과 ‘거짓말’이 한 문장 안에 나란히 놓인다는 것 자체가 낯설었다. 그 낯섦은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붙잡았다.
책은 우리가 언제부턴가 사익 추구를 은근히 죄악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 살고 있다는 지적으로 시작한다. 인간은 본래 자기중심적인 존재이므로 사익을 우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공익을 말하는 사람이 도덕적으로 더 나은 취급을 받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돌이켜보니 대학 동기들과의 대화나 SNS에서도 ‘공익’을 언급하면 은근한 칭찬이 따라붙는 걸 여러 번 목격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것이 이상하다는 자각조차 없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말로는 공공성과 공익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사익을 추구해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이중적인 풍경이 있었다. 저자는 이 가짜 공공성이 특히 정치의 영역에서 만들어진다고 짚는다. 실제로 선거철이 되면 ‘청년 맞춤형 정책’, ‘행복한 ○○’처럼 특정 계층의 마음을 겨냥한 공약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나 역시 그런 공약을 보면서 ‘나 같은 청년을 위해 이런 정책을 생각해주는구나’ 하고 단순하게 받아들이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선거 당시 크게 내세웠던 약속이 실제 생활에서는 잘 체감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책에 나온 ‘마이크로 타겟팅’이라는 개념, 즉 국민을 유권자가 아닌 ‘소비자’로 보고 기호에 맞는 공약을 진열한다는 설명을 읽고 나서야 생각이 달라졌다. 공약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의 문제뿐 아니라, 애초에 왜 정치인들이 특정 집단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골라 제시하는지도 함께 생각하게 된 것이다. 공익을 위한 정책처럼 보이는 말 속에도 결국 표를 얻기 위한 계산이 들어가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포장지에 속아 박수를 보낸다.
가짜 공공성은 ‘다수결’이라는 절차 뒤에도 쉽게 숨는다. 저자는 여야의 합의 없이 한 정당이 표결로 안건을 밀어붙이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다수의 폭력’에 가깝다고 말한다. 나치 역시 다수결이라는 합법적 절차를 통해 수많은 비극적인 법을 통과시켰다는 사례를 읽으며 마음이 무거웠다. 나는 그동안 ‘다수결로 결정됐으니 정당하다’는 말을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여왔는데, 그 절차 자체가 목적을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실감했다.
저자는 이런 가짜 공공성이 자라나는 또 다른 토양으로 ‘입법 만능주의’를 지목한다. 사회 문제가 생길 때마다 국회가 핀셋으로 집어내듯 구체적인 상황을 규율하는 법을 쏟아내면서, 정작 법이 갖춰야 할 추상성과 일반성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하이에크가 ’법(Law)’과 ’입법(Legislation)’을 구분했다는 대목을 읽으며, ‘좋은 법을 많이 만드는 정부’가 사실은 시민의 자율 영역을 침범하는 정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책의 경고가 지금 우리 사회에도 이어져 있다고 느꼈다. 요즘은 공공성이라는 이름 아래 규제와 입법이 너무 쉽게, 너무 자주 늘어난다. 무슨 문제만 생기면 곧바로 법을 만들거나 개정하겠다는 이야기부터 나온다. 여야를 막론하고 다수 의석을 가진 쪽이 충분한 합의 없이 법안을 밀어붙이는 모습이 반복되는 걸 보면, 앞서 말한 경고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법이 많아지고 촘촘해질수록 우리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의 폭은 좁아진다. 그런데도 그 법이 ‘공공성’이라는 이름을 달고 오면 아무도 쉽게 반대하지 못한다. 나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일수록 더 신중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반대로 흘러가는 듯하다.
더 나아가 나는 우리 사회가 ‘공공성’이라는 단어 자체를 조금 지나치게 성역화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사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에게 당연한 일인데도, 공공성을 조금이라도 의심하거나 반대하면 어딘가 불편한 시선을 받는 분위기가 있다. 진짜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오히려 공공성이라는 이름 앞에서 한 번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흥미로웠던 것은 저자가 ‘진짜’ 공공의 이익이 만들어지는 방식으로 시장과 교환을 제시한다는 점이었다. 기부는 고결하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고, 약탈은 야만적이어서 사회 전체의 부를 쪼그라들게 만든다. 반면 분업을 통해 각자가 전문성을 나누고 교환할 때, 강요된 선의 없이도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채워진다. 공공성이란 거창한 명분이나 국가의 개입이 아니라, 오히려 각자가 제 몫을 하며 자연스럽게 맞물리는 데서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다.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와닿은 부분은 따로 있다. 우리가 왜 이렇게 국가와 정부를 문제 해결의 만능열쇠처럼 소환하게 되었는가 하는 지점이다. 요즘은 사고가 나거나 누군가 세상을 떠났을 때, 곧바로 국가와 정부가 소환되어 책임과 대책을 요구받는다. 원래는 우리 스스로, 혹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들까지도 정부의 몫으로 떠넘긴다. 그러다 정부가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여론은 순식간에 들끓는다. 그런데 정작 그 문제가 터지기 전까지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떳떳하게 답할 자신이 없었다. 우리는 행동은 하지 않으면서 결과에 대한 비난만 던지는, 다소 소극적인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가짜 공공성이 그토록 오래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우리가 진짜 공공성을 감시하고 요구하는 일에 소홀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 책은 명쾌한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남기는 쪽에 가깝다. 공공성이라는 이름을 두른 것들이 정말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사익을 정당화하는 도구인지 구별하는 눈. 그 눈을 기르는 일은 정치인이나 전문가가 아니라 결국 시민 각자의 몫이다. 가짜 공공성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사회는, 화려한 명분에 쉽게 속지 않고 그 이면을 들여다보려는 시민들의 시선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 책을 덮으며 나는 앞으로 ‘공익’이라는 말 앞에서 한 번 더 멈춰 서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