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이라는 이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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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권승훈 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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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의 길」을 집어 든 건 제목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노예라니, 요즘 세상에. 그런데 하이에크가 이 책을 "모든 당파의 사회주의자들에게" 바쳤다는 헌정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반대편을 조롱하려고 쓴 것이 아니라,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좋은 뜻으로 낸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보여주려 했다. 미워하는 글이 아니라 걱정하는 글이었다. 자유기업원이 이 책을 굳이 다시 펴낸 이유도 거기 있을 것이다.
내가 가장 오래 멈춘 대목은 안전에 관한 문장이었다. 하이에크는 안전을 너무 절대적인 것으로 이해하면 그것을 향한 추구가 오히려 자유의 가장 큰 위협이 된다고 썼다. 나는 고등학생 때 팬데믹을 지났다. 그때 우리는 안전을 위해 많은 것을 잠시 내려놓았다. 어디에 다녀왔는지 기록되고, 모이지 못하고, 정해진 자리에만 앉았다. 그럴 만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다만 서늘했던 건 바이러스가 아니라, 그 유예가 얼마나 빨리 당연해지던가였다. 안전하다는 말 앞에서 질문이 사라지는 속도가 빨랐고, 나 역시 그 침묵에 안도했다.
하이에크의 논리는 거창한 음모론이 아니다. 그는 먼저 계획이 왜 불가능한지를 말한다. 중앙에서 경제를 계획하려면 수많은 사람의 사정과 형편, 그 순간의 판단까지 한곳에 모아야 하는데, 그 지식은 원래 흩어져 있어서 어떤 한 사람의 머리로도 담을 수 없다. 그래서 계획은 자꾸 예외와 재량을 만들고, 재량이 늘어나면 법의 지배가 자리를 비운다. 법이 모두에게 같은 틀일 때 나는 내 삶을 설계할 수 있지만, 권력이 그때그때 누구를 우대할지 정하기 시작하면 나는 그 눈치부터 보게 된다. 통제가 경제에서 시작해 태도로, 결국 정치로 번지는 길을 그는 담담하게 따라간다.
특히 오래 곱씹은 생각은, 경제를 통제하는 일이 단지 돈을 통제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돈은 우리가 저마다 다른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다. 누군가는 그것으로 책을 사고 누군가는 악기를 배우고 누군가는 부모님께 밥을 사드린다. 그래서 경제적 수단을 한곳에서 정해버리면, 그것은 곧 우리가 무엇을 원해도 되는지까지 정하는 일이 된다. 하이에크가 경제적 통제를 그저 삶의 한 부분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목적을 위한 수단에 대한 통제'라고 부른 이유가 그것이었다. 자유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내가 오늘 무엇을 살지 스스로 고를 수 있는 아주 구체적인 힘이라는 걸, 나는 이 대목에서 처음 또렷이 실감했다.
가장 오래 남은 장은 "왜 최악이 정상에 오르는가"였다. 나는 사악한 개인이 우연히 권력을 잡는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하이에크는 반대로 말한다. 큰 무리가 빠르게 하나로 뭉치는 가장 쉬운 길은 함께 만들 목표가 아니라 함께 미워할 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세 가지를 짚는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가치가 갈라져 합의가 어렵고, 그래서 가장 낮은 기준에서 가장 큰 집단이 만들어진다는 것. 확고한 신념 없이 주어진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가장 다루기 쉽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은 무엇을 이루자는 말보다 누구를 미워하자는 말에 더 빨리 모인다는 것. 이 대목에서 나는 내 타임라인을 떠올렸다. 우리는 함께 만들자는 글보다 함께 미워하자는 글에 훨씬 빠르게 모인다. 80년 전 한 경제학자의 진단이 내 손안의 화면에서 매일 재생되고 있었다. 그 장의 머리에 하이에크는 액턴 경의 문장을 걸어 두었다. 모든 권력은 부패하며,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익숙한 말인데 이 자리에 놓이니 다르게 읽혔다. 부패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자리라는 뜻이었다.
바로 다음 장의 제목은 「진리의 종말」이다. 제목만으로도 서늘했다. 하나의 계획을 오래 끌고 가려면 사람들이 그 목표를 계속 믿어 주어야 하고, 믿지 않는 사람이 생기면 그는 설득의 상대가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 된다. 그때 가장 먼저 손대는 것이 말이다. 같은 단어의 뜻이 조금씩 옮겨 가고, 어떤 질문은 묻는다는 사실만으로 불온해진다. 나는 이 순서가 무서웠다. 자유가 좁아지는 자리에서는 언제나 말이 먼저 좁아진다.
물론 반론도 든다. 시장을 그대로 두면 안전은 누가 지키나. 가난이 사람을 실제로 부자유하게 만든다는 말도 옳다. 하이에크도 안전을 전부 부정하지는 않았다. 모두에게 최소한의 생계와 재난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까지 그가 부인한 것은 아니다. 그가 선을 그은 자리는 다른 데였다.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규칙으로 바닥을 받치는 일과, 누가 무엇을 얼마나 가질지를 위에서 정해 주는 일은 겉으로 비슷해 보여도 방향이 반대다. 앞의 것은 내가 설 자리를 넓히지만, 뒤의 것은 내가 누구 눈치를 볼지를 정한다. 그가 경계한 것은 안전 자체가 아니라, 안전을 가장 높은 가치로 올려 자유를 그 아래 두는 태도였다. 그 한 뼘의 차이가 이 책의 전부라고 나는 읽었다.
책을 덮으며 다시 헌정으로 돌아갔다. 하이에크는 반대편을 이기려 한 것이 아니라 설득하려 했다. 나는 그 태도가 이 책의 진짜 주제라고 생각한다. 자유를 지키는 첫걸음은 다른 생각을 미워하지 않는 것, 그래서 최악이 올라설 사다리를 미리 치우는 것이다. 안전해 보이는 길일수록 한 번 더 의심하는 일, 그것이 노예가 되지 않는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