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명분, 조용한 청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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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범준 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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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다." 이 말 앞에서 우리는 쉽게 무장해제된다. 공공성을 내세우는 순간 반박은 무례가 되고, 이의를 다는 사람은 '공공성도 모르는 이기주의자'로 몰린다. 이혁우 교수의 『가짜 공공성』은 바로 그 무장해제의 순간을 의심하라고 말한다. 따뜻하고 옳게 들리는 말일수록, 그 온도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보라는 것이다.
저자의 칼끝은 공공성 자체를 향하지 않는다. 공공성이라는 이름으로 도리어 공공성을 훼손하는 '가짜'를 겨눈다. 책을 관통하는 문장은 선명하다. 좋은 취지가 좋은 효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명분이 선하다는 이유만으로 결과까지 선하리라 믿는 순간, 우리는 가짜 공공성의 첫 단추를 끼운다.
1장에서 저자는 공공성이 어쩌다 성역이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루소의 '일반의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유니콘인데도, 정치인은 그것을 "국민의 뜻"으로 포장해 자기 욕망을 전체의 의지로 둔갑시킨다. '정치적 올바름'은 자유를 포위하고, '사회적 약자'는 어떤 주장도 통과시키는 만능키가 된다. 반박이 봉쇄된 자리에서 토론은 멈추고, 명분만 남는다. 명분은 대개 그렇게, 반론을 미리 잘라내기 위해 동원된다.
가장 오래 멈춰 선 대목은 5장과 6장이었다. 안전운임제, 중대재해처벌법, 교육환경보호구역처럼 누구도 대놓고 반대하기 어려운 정책들. 그 '착함' 뒤에 보이지 않는 청구서가 따라붙는다는 지적은 서늘했다. 저자는 비정규직 보호법이 오히려 비정규직을 내쫓은 역설을 든다. 약자를 위한다는 법이 약자의 일자리를 지운 것이다.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세입자를 지키겠다던 임대차 3법은 전세 물량을 말리고 값을 밀어 올려, 정작 보호하려던 세입자의 등을 떠밀었다. 선의는 알리바이가 되고, 비용은 가장 약한 자에게 조용히 전가된다.
여기서 책은 공공선택론의 오래된 진실과 만난다. 편익은 소수에게 집중되고, 비용은 다수에게 분산된다. 편익을 받는 소수는 목소리를 내지만, 비용을 나눠 지는 다수는 자기 몫이 얼마인지조차 모른다. 그래서 가짜 공공성은 늘 시끄럽게 정의롭고, 조용하게 누군가의 주머니를 턴다. 정치가 이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 있다. 명분을 파는 쪽은 지금 표를 얻고, 청구서는 임기가 끝난 뒤에야 도착한다. 규제를 만드는 쪽도 예외가 아니다. 규제는 곧 권한이고 예산이며, 관료에게 규제의 확대는 곧 자기 존재의 확대다. 그래서 한번 세워진 명분은 좀처럼 철회되지 않는다. 포퓰리즘은 공공성이 아니라 매표라는 저자의 단언 앞에서,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지하철 무임승차였다. 어르신의 이동권이라는, 누구도 대놓고 반대하기 어려운 명분. 그러나 그 따뜻한 명분의 청구서는 만성 적자라는 이름으로 교통공사에, 끝내는 시민과 다음 세대에게 조용히 넘겨진다. 편익은 한 세대에 집중되고, 비용은 모두에게 분산된다. 책의 문장 그대로였다. 게다가 그 청구서의 최종 수취인은 아직 태어나지도, 투표하지도 않은 세대다. 반대할 수 없는 이에게 비용을 미루는 것 — 분산의 가장 손쉽고, 가장 비겁한 형태가 거기 있었다.
물론 반론도 가능하다. 규제가 없었다면 산업 현장에서 스러진 노동자는 누가 지키며,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면 힘없는 이들은 어디에 기대느냐는 물음이다. 정당한 질문이고, 저자도 이를 가볍게 넘기지 않는다. 다만 그의 답은 회피가 아니다. 진짜 약자를 지키는 것은 약자를 명분으로 내건 규제가 아니라, 약자가 스스로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열린 질서라는 것이다. 문제는 보호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그 보호가 도리어 사다리를 걷어차는 결과다. 세상을 바꾼 건 상인이었고, 분업과 교환이야말로 우리가 서로를 돕는 방식이라는 3장의 통찰이 여기에 포개진다. 다만 한 가지는 짚어두고 싶다. 이 책은 가짜를 겨누지만, 성급한 독자는 자칫 모든 공적 개입을 가짜로 의심하는 반대편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저자가 부정한 것은 공공성이 아니라 공공성의 참칭임을 놓치면, 건강한 회의는 무기력한 냉소로 미끄러진다. 좋은 회의는 더 나은 공공성을 향하지만, 냉소는 아무 데도 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짜 공공성은 어디에 있는가. 저자의 답은 뜻밖에 단순하다. 자유다. 서로 다른 욕망이 광장에서 시끄럽게 떠들도록 놔두는 사회, 보호가 아니라 도전을 허용하는 사회. 위에서 설계된 질서가 아니라 아래에서 자생하는 질서. 저자는 그 전환을 닫힌 사회에서 열린 사회로 가는 길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진짜와 가짜는 어떻게 가르는가. 책을 덮고 내 나름으로 정리한 기준은 이렇다. 가짜 공공성은 명분으로 시작해 명분으로 끝난다. 제 비용을 숨기고, 결과로 검증받기를 한사코 거부한다. 반면 진짜 공공성은 청구서를 먼저 펼쳐 보인다. 누가, 얼마를, 언제 치르는지를 밝히고, 틀렸다면 거두겠다고 약속한다. 명분의 목소리가 클수록 청구서를 요구하라 — 이 한 문장이야말로 저자가 독자의 손에 쥐여주는 가장 실용적인 무기였다.
부끄럽게도 나 역시 그 따뜻함에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착한 이름이 붙은 정책 앞에서 청구서를 묻는 일은 늘 인색해 보였고, 그 인색함이 두려워 침묵한 적도 많다. 이 책의 미덕은, 바로 그 인색해 보이는 질문이야말로 공공성을 지키는 일임을 일깨운 데 있다.
책을 덮으며 남은 건 한 줄의 질문이었다. 그토록 많은 공공성의 이름을 내걸고, 우리 사회는 정말 더 좋아졌는가. 솔직히 답하기가 두렵다. 우리는 너무 오래 가짜의 따뜻함에 길들여졌다.
진짜 공공성은 구호가 아니라 결과로 증명된다. 명분이 아니라 청구서로 검증된다. 저자가 끝내 요구하는 건 거창한 이념이 아니다. 가짜를 가짜라 부를 최소한의 용기다. 그 용기를 잃는 순간, 사회의 지속가능성도 함께 사라진다. 가짜의 따뜻함은 오늘의 우리를 위로하지만, 진짜의 서늘함만이 내일의 우리를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