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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눈으로 본 근대 일본의 역사> 4~6장

글쓴이
자유주의 입문 독서토론모임 2026-07-16

일시: 7/15 21시 온라인

참석자: kdg, mori, 벤치프레스


도서명: 한국인의 눈으로 본 근대 일본의 역사

저자: 박훈

출판년도: 2025

출판사: 어크로스

해당 범위: 4~6장


​ 1. 메이지 유신 직후의 내상과 정한론 대두 ​


메이지 유신 이후 특권을 잃은 사무라이들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사이고 다카모리 주도로 '정한론'이 등장합니다.


이와쿠라 사절단으로 서구 문물을 경험하고 온 이토 히로부미와 오쿠보 도시미치는 '내치 우선'을 내세워 이를 반대합니다.


결국 정한론이 수용되지 않자 사이고 다카모리는 낙향하고, 이는 훗날 사무라이들의 반란인 세이난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참여자들은 이미 18세기 말~19세기 초부터 일본 내에 대만이나 조선을 침략하자는 해외 팽창적 사고가 싹트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합니다.


갑신정변 실패 후 김옥균 등 개화파가 일본으로 망명하지만, 일본 정부는 조선과의 마찰을 우려하여 이들을 지원하기를 꺼려합니다. ​


2. 조선의 취약성과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 배경 ​


당시 조선은 권력이 소수에게 독점된 당쟁의 결과물이었으며, 이러한 내부적 취약성이 일본의 침략을 용이하게 만든 배경으로 지적됩니다.


참여자들은 조선의 무능과 강화도 조약 등 일련의 수탈 과정이 성공을 거두면서, 이것이 오히려 일본이 만주 침략을 비롯한 전체주의와 제국주의의 수렁으로 빠지는 '촉매제'가 되었다고 분석합니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때까지만 해도 청나라와의 충돌을 피하던 일본이 동학농민운동을 기점으로는 객관적인 전력 우위를 확신하고 청일전쟁을 일으키는 등, 치밀한 형세 판단 능력을 보여주었음이 논의됩니다. ​


3. 메이지 유신의 특수성과 일본 군부의 파벌주의 ​


메이지 유신이 프랑스나 러시아 혁명처럼 극단적인 유혈 사태로 번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 고찰합니다.


천황의 권력이 절대적이지 않았고, 각 지방의 다이묘들이 독자적인 경제적·정치적 기반을 가지고 있어 적절한 수준의 타협과 균형이 가능했다고 평가합니다.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조슈 번(육군)'과 '사쓰마 번(해군)'의 역사적 라이벌 의식이 언급됩니다.


이 두 파벌 간의 극심한 견제와 비협조가 훗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배하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는 점이 지적됩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역사와 전통을 기반으로 형성된 군 조직의 중요성으로 이어지며, 효율성만 따져 사관학교 등 군 조직을 무리하게 통폐합하려는 현대의 일부 시각에 대한 우려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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