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내년 경제 정책에 물음표 찍어
기저효과·착시효과로 감춰진 부정적 현실
현실 외면한 주52시간제, 중소기업 직격탄
정부가 내년 한국경제의 V자 반등을 이뤄내겠다고 선언했다. 대외여건이 올해보다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적극적인 경제 정책 추진에 힘입어 내수와 수출의 동반 개선을 노리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정부가 내년 한국경제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민간 소비의 부진, 반도체를 제외한 주력 산업의 수출경쟁력 약화 등 하방요인이 상존한 데다 경제 회생을 위해 내놓은 정책들이 정부의 바람대로 효과를 낼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성장률 3.2%, 못말리는 정부의 낙관론…기저효과에 불과"
기획재정부가 내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GDP)을 3.2%로 전망했다. 백신 개발에 따른 글로벌 경기의 회복, 반도체 업황의 개선, 확장적 거시정책 효과가 내년 성장세 회복을 뒷받침한다는 전제하에서다.
이는 그 어떤 국내외 전망기관보다 낙관적인 수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3.1%, 한국은행은 3.0%를 각각 내놨고, 한국경제연구원 등 민간 연구기관들도 2.7~2.9%의 전망치를 내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8%를 예상했다. 정부의 전망이 공신력 있는 타 기관들과 비교할 때 가장 높다. 경제 전문가들은 보수적으로 잡아야 할 정부의 성장률 전망치가 매번 낙관적인 수준을 나타내는 것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내년 성장률의 플러스전환은 마이너스성장(-1.1%)을 보인 올해와 비교되며 나타난 기저효과일 뿐이므로 확대해석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경제성장률은 IMF를 겪은 1998년(-6.9%) 이후 줄곧 플러스성장을 기록해오다 올해 첫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했다"며 "경기침체가 극심한 올해 GDP와 비교되면서 마치 경제가 회복된 것처럼 나타난 기저효과일뿐 실물경제가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였다고 볼 수 없다"고 진단했다.
"수출 호재는 반도체 착시효과…사실상 주력산업 수출경쟁력 상실"
정부가 내년 반도체 호조세와 신산업 육성을 통해 세계 7위 수출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반도체 설비투자가 견조한 증가세를 나타내면서 전체 수출(통관) 실적이 8.6%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의 호조세를 인정하면서도 정부가 반도체를 제외한 주력업종의 수출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는 현실은 외면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추광호 실장은 "전체 수출에서의 반도체 비중이 적을 때는 15%, 평균 20% 언저리를 차지하고 있다"며 "수출이 1년 6개월 내내 줄다가 최근 몇 달 사이 상승과 하강 주기를 반복하고 있는데 이는 호조세를 내고 있는 반도체 성과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반도체 이외 자동차, 기계, 조선, 석유·화학 등 타 주력업종들은 최근 몇 년 동안 심각한 수출 부진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0년 반도체 수출 전망은 970억달러(약 105조원)로, 작년보다 3.3% 증가했다. 내년엔 1020억달러(약 111조원)으로 올해보다 5.1% 오를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반해 전체 수출액은 400~500억달러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다른 업종들은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데 반도체에 가려 보이지 않는 이른바 '반도체 착시효과'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반도체는 공장을 짓는 데만 조 단위가 투입되는 대규모 장치산업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파급효과가 미미하다.
홍성연 한경연 경제정책팀장은 "반도체 부문이 수출 실적은 챙겨줄지 몰라도 소비 증진과 직결된 가계소득, 지역경기, 협력업체 등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제한적"이라며 "반면 자동차 등 타 주력업종은 부품 수만 개를 제조하기 위해 수많은 협력사들이 공동상승 효과를 누림에도 불구하고 수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이러한 점은 간과하고 낙관적으로만 해석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소비쿠폰, 소비 진작 일으키기엔 한계…先방역 후 활용해야“
정부가 내년 4+4바우처·쿠폰 온라인 사용 확대를 추진하고, 지역사랑·온누리상품권을 18조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또 코리아세일페스타를 적극 지원하는 등 소비 활성화를 통해 내수 진작을 노리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의 전망에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 홍성연 팀장은 "이미 올해 경험을 통해서 온라인 쿠폰 등은 투입 대비 효과가 제한적일뿐더러 전체 소비를 일으키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기엔 역부족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런 단발성 정책은 방역을 통해 코로나가 잡힌 이후에 지엽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일 뿐 근본적인 소비 대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기재부는 14조원 규모의 1차 재난지원금이 지역사랑상품권, 온누리상품권 등 전자화폐 형태로 지급된 데 대해 그 효과는 33% 언저리에 불과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소비 쿠폰이 실제 소비로 이어진 것은 3분의 1에 불과했던 셈이다.
홍 팀장은 "소비 증진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대면 업종 활동을 열어주는 것으로, 정부당국의 방역 성과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며 "또다른 방법으로는 세금, 공과금 등 비소비지출을 줄여 소비에 사용할 재정의 여력을 늘려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을 고려해볼 때 두 가지 모두 내년에 획기적으로 좋아질 것 같지는 않다"고 밝혔다.
"경제계 현실 외면한 주52시간제…중소기업 직격탄"
정부는 내년부터 50~299인 중소기업에 주52시간제를 적용한다. 당초 올해부터 적용하기로 했으나 1년을 유예했다. 내년 7월에는 5~49인 소기업까지 확대 적용될 방침이다.
유관업계는 주52시간제가 산업계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탁상정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여파로 매상이 급락한 중소기업들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52시간제 이행 부담까지 겹치며 초비상이 걸렸다.
양옥석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업종 특성상 불가피하게 주52시간을 초과할 수밖에 없는 조선, 건설, 기계설비, 뿌리산업 등에 한해서라도 코로나가 종료될 때까지 시행을 유예해달라고 요구해왔지만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특히 조선, 건설, 기계설비 등은 도색, 시멘트 등 야외작업이 많아 계절과 날씨의 영향을 많는다"며 "연중 일할 수 있는 기간이 제한돼있기 때문에 주52시간제를 지키기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계에 따르면 각 기업들마다 실정에 맞게 주52시간제가 안착되기 위해서 컨설팅이 필요한 실정이다. 그런데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이러한 컨설팅은 배부른 소리가 됐다는 전언이다. 바이어 활동이 중단되고 공장 가동조차 어려운 형편에 몰린 상황에서 내년 주 52시간제가 시행될 경우 극심한 경영난에 빠질 우려가 있다.
나아가 중소기업들은 근로시간이 단축되는 만큼 근로자 수를 늘려야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 그러나 채용할 사람이 없어 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특히 외국인 고용률이 높은 기업들은 코로나로 외국인들의 입국이 제한되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근로시간만 단축하자는 정부의 처사에 기업들은 반발하고 있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은 "대기업은 수익이 줄더라도 비용으로 만회하며 버티지만 영세한 중소기업들은 버틸 힘이 없다"며 "정부가 비용을 지원하는 것도 아니고 기업이 다 감내하라고 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한 처사"라고 꼬집었다. 이어 "특히 근로시간에 유연성을 담보해야 할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은 최대 피해자들이 될 것"이라며 "ICT기술을 탑재한 제조 강국이 되겠다면서 주 52시간제를 시행하는 것은 정책의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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