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업·반자본…인명진 비대위원장의 경제인식

자유경제원 / 2017-01-28 / 조회: 9,555       미디어펜
인명진, 한국경제를 십자가에 못 박는 바리새인 되나

인명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발표한 정책쇄신안은 그야말로 '反기업 反자본’의 결정체다. 대기업은 '악’이요, 중소기업과 영세 상공인은 '선’이라는 지극히 시대착오적이고 그릇된 레토릭의 반복이다. 아무리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외연 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곤 하나, 새누리당은 엄연히 '정통 보수’를 표방하는 정당이다. 광풍처럼 몰아치는 반기업 정서로부터 자유시장경제를 지켜나가려 노력해도 모자랄 판에, 지난 대선에 이어 또 다시 경제민주화라는 허황된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대기업은 국민의 지원과 희생 속에서 대기업 우선 육성정책으로 성장했다”는 인 위원장의 주장부터가 틀린 것이다. 경제개발시기 대기업들에 돌아간 각종 금융적, 제도적 지원들은 '수출 경쟁력’을 기준 삼아 이뤄진 것들이다. 즉 당시 정부의 지원을 받은 기업들은 그 시기에 존재했던 수많은 '벤처기업’들 중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가장 빠른 속도로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인 것이다. 그러한 지원을 '국민의 희생’ 내지는 '대기업 우선 육성정책’이라 표현하는 게 과연 옳은가.

오히려 정부는 대기업으로 하여금 모두가 꺼리는 산업으로 진출하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적자투성이 대한항공을 떠맡은 한진그룹이나, 박정희 대통령의 협박에 가까운 애원으로 조선 산업에 진출한 현대그룹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 97년 외환위기 당시엔 30대 대기업 중 16개가 경영 실패로 공중분해 됐다. 요컨대 현존하는 재벌들은 정부의 지원 속에 어영부영 자라난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닌, 매서운 전 지구적 경쟁에서 살아남은 '승리자’들이다. 

  
▲ 인명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의 정책쇄신안은 큰 틀에서 재벌 대기업을 '마녀'로 규정하고, 무작정 때려잡아야 한다는 운동권적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사진=연합뉴스


진짜로 국민의 희생과 우선정책으로 수혜를 본 이들은 중소기업 적합업종(舊 고유업종) 지정제도로 수 십년간 경쟁으로부터 보호받아 온 중소기업과 영세 상공인들이다. 이들의 상당수는 각종 공제 혜택으로 세금의 대부분을 면제받고, 160여 개에 달하는 법적 우대 혜택까지 누리고 있다. 이들에 대한 정부기관 보증의 누적 규모는 75조 원 수준이고, 한 해 지원되는 각종 정책 자금의 규모 또한 10조 원에 달한다. 

'대기업의 탐욕으로부터 골목상권을 보호해 모두가 잘사는 경제를 만들겠다'는 허황된 구호는 '과당 경쟁'이라는 메아리로 돌아왔다. 이 작은 나라에 중소기업이 300만 개, 자영업자가 600만 명에 달한다. 도소매/음식/숙박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의 수는 전체 인구수 대비 미국의 6배고, 중소기업들 역시 수출 경쟁력이 적은 저가 소비재 산업에 몰려 있는 게 현실이다. 상기한 각종 '모르핀 지원’ 탓에 부실기업들이 망하지 않고 있으니, 정상기업까지 과당 경쟁에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이다. 강력한 경쟁자의 진입까지 막아 버린 상황에서 혁신 의지가 생겨날 리도 만무하니, 산업은 '만날 그 타령'이다. 

대기업 진입 제한과 각종 편파 지원은 일자리 창출 측면에서도 지독한 악순환을 낳았다. '그저 그런(mediocre)' 기업들만 득실대는 시장에서 산업의 고도화와 대규모화는 요원했고, 양질의 일자리도 나올 수 없었다. 고도화와 대규모화는 곧 상품과 판로의 다양성의 의미하는데, 그것이 일어나지 않으니 다양성은 부족해지고, 결국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지 못한 것이다. 일자리가 부족해지자 사람들은 다시 자영업과 영세 산업으로 뛰어들고, 과당경쟁은 지독하게 반복됐고, 이는 다시 '좋은 자리'의 만성적 부족을 야기했다. 이것이 우리가 겪고 있는 구직난의 본질이다. 

요컨대 우리는 우리를 먹여살릴 대기업을 필요한 만큼 많이 만들어내지 못했다. 유통기업에 유통하지 말고, 제빵기업에 제빵하지 말라 했으니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상황이 이런데도 오히려 인 위원장은 "대기업에 대한 골목상권 진입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황당함과 분노를 금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경제사적 배경과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재벌은 국민의 희생으로 성장했으니 이제는 그 은혜를 보답하라’는 '재벌 맏아들論’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백번 양보해 받아들인다 해도 의문은 남는다. 지난 역사에서 재벌 대기업이 얼마나 맏아들 역할을 잘 수행해 왔는지 되돌아보면 그렇다. 

  
▲ 인명진의 정책쇄신안은 "대기업은 악이요, 중소기업과 영세 상공인은 선"이라는 지극히 시대착오적이고 그릇된 레토릭의 반복이다./사진=연합뉴스


상위 0.1%의 대기업이 전체 법인세수의 64%를 납부한다. 30대 대기업 대상의 준조세만 1조 원이 넘는다는 게 세간의 통계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중산층의 보고(寶庫)도 그들이다. '납품단가 후려치기’라는 자극적 수사로 중소기업을 죽이는 악한들인 양 묘사하지만, 잘 나가는 대기업 하청업체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30대 그룹 상장사 평균보다도 높다는 것, 3차 벤더까지 내려가도 임금이 전체의 중위 수준을 넘어간다는 사실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주요 강소기업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협력업체라는 사실, 그들이 어떻게 원청으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았는지를 알면 '후려치기'와 같은 선동적 수사는 쓰지 못할 것이다. 

기업분할명령제나 일감몰아주기 규제 등 민감한 정책에 대해 충분한 토론과 숙고 없이 도입 의사를 밝힌 것 또한 이번 정책쇄신안 발표의 큰 문제였다. 기업분할명령제는 미국과 EU의 반독점법에 명시되어 있으나, 그 효과에 의문이 제기되어 1970년대에 이후 실제 활용된 적이 없는 제도다. 미국 정부가 이 제도를 활용해 MS에 건 소송이 사실상 패배로 끝난 것도 그 실효성과 관련이 있다.(김정호 교수의 '누가 소비자를 가두는가' 참조) 한편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다른 나라엔 아예 존재하지 않는데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시행 중이다. 

물론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실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인 위원장이 그저께 함께 언급한 소비자 집단소송제 도입이나, 징벌적 손해배상제 강화, 준조세 금지법 등은 그러한 문제의식의 발로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정책쇄신안은 큰 틀에서 재벌 대기업을 '마녀'로 규정하고, 무작정 때려잡아야 한다는 운동권적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일자리 창출과 소비자 후생 증대의 주체를 그렇게 못 살게 굴면, 저성장의 도탄에 빠질 위기에 처한 이 나라 경제를 누가 구원하나. 인 위원장이 한국경제를 십자가에 못 박는 바리새인으로 전락하지 않길 바란다. /박진우 리버럴이코노미스트 편집인


(이 글은 자유경제원 오해풀기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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