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절약, 복거일 지음/자유기업원 펴냄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빛이 점점 희미해진다. 일식이 시작되는 듯, 으스스한 느낌이 몸을 감싼다"는 말로 책을 시작한다. "유럽에 유령이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는 말과 비슷한 뉘앙스인데, 실제 빛을 흐리게 하는 그 존재도 바로 그 유령과 일란성쌍둥이다. 공산 전체주의 유령이 '평등' '민주집중제' 같은 언어로 위장해 21세기를 떠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외친다. "분노하시오. 분노하시오. 빛의 죽음에 대해서." 영국 시인 딜런 토마스의 시 '고이 잠들지 마십시오'에 나오는 시구다. 생명이 꺼져가는 극한의 순간엔 가만있지 말고 죽음에 맞서 저항하라는 절규다. 아버지의 임종 앞에서 아버지에 대한 절절한 사랑과 안타까움을 표현한 시인의 심경을 떠올려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닥친 빛의 죽음은 무엇인가. 개인의 자유, 재산권, 명예를 앗아가려는 불의와 전체주의 망령이다. 생명을 거두려는 힘에 맞서야 할 때처럼 이들에 대항하려면 전심전력 특별한 전략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저자는 분노를 에너지로 효과적으로 표출하기 위해 거악(巨惡)들의 실체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고 한다. 우리의 분노가 향해야 할 불의의 뿌리를 찾아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저자는 불의에 분노를 쏟아내는 것은 사회적으로 소중한 자산이며 사회를 구성하고 지탱하는 힘이라고 강조한다.
저자 복거일의 글이 언제나 그렇듯 그의 주장은 연원에 대한 객관적 탐구를 바탕으로 전개된다. 예를 들어 재산권이 왜 보호돼야 하고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는 말은 쉽고 명료하다. 재산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자신의 심신(心身)을 사용해서 만들기에, 한 개인의 유기적 부분으로 실질적으로 인권과 동의어'라는 것이다.
책은 소설가이자 비평가요 자유민주 진영의 대표적 논객인 복거일의 칼럼을 묶은 것이다. 복 작가는 "세상을 제대로 알기 전에 작은 불의에 너무 많은 분노를 퍼부은 사람들이 뒤에 냉소주의자가 되는 경우를 흔히 본다"며 큰 불의에 제대로 저항하려면 분노를 절약해야 한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때를 기다렸다가 적시에 분출하라는 조언이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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