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파공작원의 증언]통진당 위에 있던 북한의 대남공작

자유경제원 / 2017-02-04 / 조회: 10,546       미디어펜
통진당과 북한의 대남전략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의 위헌정당 해산청구심판 판결로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해산된 지 2년이 지났다. 통진당은 2000년 1월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으로 시작해 2011년 12월 민노당과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 등이 합쳐 창당되었으나 3년 만에 해산된 것이다.

나는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청구심판 판결이 내려지기 6개월 전인 2014년 6월 헌법재판소 대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통진당의 이념과 활동이 북한의 대남전략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에 대해 증언하였다.

오늘은 통진당 해산청구심판 증인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남파공작원으로 활동하는 과정에 실제로 진보정당 공작에도 관여했던 경험자로서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통진당이 왜 해산될 수밖에 없었느냐에 대해 언급하려고 한다.

북한의 대남전략에 대한 일반적 이해

통진당이 해산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려면 먼저 북한의 대남전략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전략은 전략주체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과 추구하는 이익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떤 수단을 이용하여 어떠한 방법으로 달성할 것인가를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북한의 대남전략은 전략의 주체인 북한이 전략의 대상인 남한을 상대로 하여 달성하려는 목적(또는 목표)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떤 수단을 가지고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 실현할 것이냐 하는 것을 의미한다.

1) 대남전략 목표

먼저 북한이 남한을 상대로 달성하려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북한이 남한을 상대로 해결하거나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북한이 달성하고자 하는 첫 번째 목적은 북한 노동당규약에도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을 완수’하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이 대남혁명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전취(戰取)목표이다. 이러한 북한의 인식은 기본적으로 남한이 미국의 식민지인 동시에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라는 시각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을 철수시킴으로써 미국의 식민지통치를 끝장내는 민족해방혁명의 과제와 남한의 자본주의체제를 전복하는 민주주의혁명의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바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이라는 것이다.

물론 북한은 노동당의 당면목적이기도 한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을 완수’한 다음 자주적 민주정권을 세우고 이를 더욱 발전시켜 사회주의체제를 수립하는 것을 최종목표로 설정해놓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의도는 ‘노동당의 최종목적은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 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데 있다’고 규정한 노동당규약 전문에 그대로 명시되어 있다.

북한이 달성하고자 하는 두 번째 대남전략 목표는 분단을 극복하고 남북을 통일하는 것이다. 북한은 조국통일이 본질에 있어서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종식시키고 조선민족의 자주권을 완전히 실현하며, 인위적으로 갈라진 민족의 혈맥을 다시 잇고 북과 남 사이의 불신과 대립을 없애고 민족적 단합을 이룩하는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인식은 남부통일 문제가 발생하게 된 근본원인이 미국의 남한 강점과 외세에 의한 남북분단에 있다는 시각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의도하는 남북통일은 분단극복으로서의 순수한 통일 그 자체가 아니라 철저히 ‘자주적인 통일’ 즉 주한미군 철수를 전제로 해서 북한이 주도하는 통일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북한이 평화통일의 전제조건으로 남북 간 불가침협정 체결 및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있는데서 표출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북한이 추구하는 통일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남한에 존재하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시장경제체제를 북한과 같이 주체사상에 기초한 사회주의 정치체제로, 계획경제체제로 만드는 것을 염두에 둔 적화통일(赤化統一)이며 북한이 주도하는 통일 즉 흡수통일이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 통진당 해산청구심판 시 통진당 측에서는 ‘진보적 민주주의 실현’에 대해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라며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했다./자료사진=연합뉴스


2) 대남전략 실현을 위한 수단과 방법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대남전략 목표는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이 마련되고 방법을 제대로 적용할 때 달성 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수단과 방법은 대남전략 목표인 대남혁명과 조국통일을 어떠한 역량(수단)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실현하겠느냐 하는 문제이다.

북한은 대남혁명과 조국통일을 위한 역량을 마련하기 위해 1960년대 초반에 3대 혁명역량 강화 방침을 제시했다. ‘주체적 혁명역량’이라고 일컫는 북한 자체의 역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남한 내 강력한 혁명역량을 마련하고 국제적 혁명역량도 튼튼히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3대 혁명역량 강화노선의 핵심이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매진하는 등 국방력 강화에 주력하는 것은 미국의 위협 때문이라고 강변하고 있으나 아울러 남한에 대한 힘의 우위를 차지함으로써 대남혁명을 용이하게 완수하기 위해서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와 함께 남파공작원들을 침투시켜 주사파 등 종북인사들을 포섭해 지하당을 만들고 통진당과 같은 진보정당에 대한 공작을 하는 것은 강력한 대남혁명역량을 구축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다. 그리고 공산권 국가들은 물론 비동맹국들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도 대남전략 실현을 위한 강력한 국제혁명역량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결국 3대 혁명역량이 제대로 준비될 때 북한이 의도하는 대남혁명과 조국통일이 순조롭게 실현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북한의 3대 혁명역량 강화 방침은 오래전에 제시되었고 실현 가능성에 있어서도 회의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아직도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북한은 대남혁명과 조국통일 실현 방법에 대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놓고 방도를 모색하고 있다.

김일성은 “어떤 반동계급이 반혁명적 폭력을 쓰지 않고 공순히 정권에서 물러선 실례를 알지 못한다”며 대남혁명의 기본 목표인 남한정권 타도는 오직 전민항쟁, 군사쿠데타 등 폭력적인 방법에 의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체제수호의 마지막 보루인 국군을 상대로 하는 국군와해전취공작(國軍瓦解戰取工作)을 상당히 중요시해 왔다.

그러나 조국통일 실현 방법에 있어서는 평화적 방법과 폭력적인 방법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방법을 모색해왔다.

북한이 생각하고 있는 첫 번째 평화적인 통일 실현 가능성은 남한 정부가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수용할 경우이다. 두 번째 평화통일 가능성은 남한에 반제자주적인 정권이 수립되거나 국내외 정세변화에 의해 남한이 중립화되는 경우이다. 세 번째 가능성은 남한에서 강력한 혁명역량이 구축되고 이들의 투쟁에 의해 대남혁명이 승리하는 경우이다. 

그리고 첫 번째 비평화적 통일의 경우는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는 경우이다. 두 번째로 미국이 이러저러한 요인들에 의해 약화되었을 경우 북한이 무력으로 주한미군을 몰아내고 통일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남한 민중들이 결정적인 투쟁에 떨쳐 일어나 북한의 지원을 요구할 때 북한이 이를 수용하여 주동적으로 대남공격을 감행할 경우에도 무력에 의한 통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식은 아직도 대체로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지만 몇 가지 문제에 있어서는 정세변화에 따라 변화된 것도 있다.

대남정세 변화와 북한의 대남공작

1) 1980년대 초 대남공작부서가 직면했던 두 가지 문제

남한을 상대로 하는 대남공작은 필연적으로 남한정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내가 남파공작원으로 선발된 시기가 1981년 2월이었는데, 당시 남한의 집권자는 전두환 대통령이었다.

전두환 대통령 집권 당시 북한 대남공작부서에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남한내부 정세를 평가하고 그에 따르는 전술을 구사하고 있었다.

하나는 전두환 대통령 집권이후 ‘공안통치’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대남 직접침투와 공작을 상당히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1980~1987년까지 대남 직접침투에 의한 대남공작은 소강상태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따라서 대부분의 대남공작은 일본을 경유해 전개하고 있었고 남한에 침투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잠복해 결정적 시기를 기다리도록 하는 장기토대구축 공작전술을 구사하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전두환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처럼 또 죽을 때까지 종신 대통령을 하면서 독재를 실시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북한이 1983년 전두환 대통령 시해를 위해 미얀마 아웅산묘소 폭파사건을 일으키도록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난제가 1987년 6월 민주화투쟁을 계기로 일거에 해결되는 상황으로 급변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지고 그해 12월 제13대 대통령선거를 통해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됨으로써 처음으로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실현되게 되었다. 이로서 영구집권 할 줄 알았던 전두환 대통령이 물러나고 그가 실시했던 ‘공안통치’도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북한 대남공작부서가 갖고 있던 우려를 일거에 불식시켜 주었고 대남공작을 공격적으로 전개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아울러 남한 대통령을 무리해서 제거하지 않아도 되는, 아니 제거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1987년 민주화의 결과로 진보정당 활동의 자유가 보장되었다는 것이다. 북한 대남공작지도부에서는 한겨레민주당(1988)과 민중의 당(1988) 등 진보정당이 창당되어 합법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보고 상당히 고무되었다. 당시 연락부 부부장은 ‘남조선 당국이 앞으로 당원들을 등록하는 조건으로 공산당까지 합법화하려 한다는 정보가 있다.’며 들떠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남한에서 선거를 통해 정권이 평화적으로 교체되고 진보정당의 합법적인 활동이 가능해진 것은 북한 대남공작부서로 하여금 대남공작 전술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 김일성은 광복직후 북한에 들어와 당면해서 북한이 나아갈 길은 사회주의의 길이 아니라 진보적 민주주의의 길이라고 강조하고 그 내용으로 공산당의 영도, 토지개혁 실시, 중요산업국유화 등 사회주의 시책을 실시하였다./사진=연합뉴스

2) 북한의 민중당 공작

과거 지하당조직 건설에만 치중했던 북한 대남공작부서에서는 1987년 12월 제13대 대통령선거를 통해 평화적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것을 보고 본격적으로 남한 내 혁신정당 건설 문제 즉 우리가 말하는 진보정당을 어떻게 창당하고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함께 과거 조봉암의 진보당과 1960년대 초반 창당되었던 사회대중당 관련 자료들도 많이 연구하였다.

당시 북한은 남한 내에서의 혁신정당 건설을 추진하면서 두 가지 측면에 주목하였다.

하나는 혁신정당을 정권교체를 위한 강력한 수단으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즉 선거를 통해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민중을 하나로 엮어 강력한 정치세력을 형성해야 하는데, 진보정당이 바로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구심점인 동시에 정권교체의 강력한 수단이라고 간주하고 그것을 지향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혁신정당이 대남혁명역량을 구축하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즉 정당이라는 울타리, 정당 활동이라는 합법적인 공간을 이용해 짧은 시일 내에 대남혁명역량 즉 종북세력을 대량적으로 양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북한은 위와 같은 두 가지 측면에 주목하고 1980년대 말부터 남한 내에 혁신정당을 구축하기 위한 실천행동 즉 정당공작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던 것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기존에 침투해 활동 중이던 거물급 남파공작원 이선실을 통해 ‘민중당 창당준비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던 주요 인물들에 대한 파악 및 포섭공작을 전개하도록 하였다. 이를 위해 모자(母子)로 위장한 공작조를 남파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별도의 공작조를 남파해 민중당 창당 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외부인사에 대한 포섭공작과 그를 민중당 창당에 참여시키기 위한 공작을 동시에 전개하였다. 이에 따라 1990년 가을 민중당이 창당될 당시에는 북한 대남공작지도부와 연계된 인사(간첩)들이 민중당의 주요 당직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남한 내에서의 혁신정당 공작을 강화하기 위해 노동당 대남공작부서인 사회문화부(이후 대외연락부→225국→문화교류국) 내에 '정당지도과'를 신설하였다.

또한 김정일의 5.24문헌 “주체사상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남조선혁명을 더욱 힘 있게 밀고 나갈데 대하여”를 통해 남한 내에서 혁신정당 공작을 전개할 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아울러 1992년 4월에 진행된 제14대 총선에서 민중당 후보들을 국회의원에 당선시키기 위해 총선지휘 전담 공작조를 남한현지에 파견하기까지 하였으나, 민중당 후보를 국회의원에 당선시키는 데는 실패하였다. 이러한 민중당은 1992년 가을에 발생한 대형 간첩사건인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이후 해산됨으로써 북한의 혁신정당 공작은 일단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와 같은 결과를 종합해보면 당시 남한에서 창당되었던 민중당이 북한 노동당 공작지도부의 직접적인 지시와 조종에 따라 만들어지고 움직이는 노동당의 하부조직에 불과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북한의 정당공작 전술과 민노당 공작

북한의 혁신정당 건설 공작은 1990년 민중당에 대한 공작에 그치지 않고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과 함께 다시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PD계열이 주축이 되어 창당된 민주노동당에 대한 북한의 공작은 민중당에 대한 공작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일반적으로 북한이 남한 내에서 정당이나 단체를 구축하는 공작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처음부터 새롭게 만드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에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는 정당이나 단체에 들어가 헤게모니를 빼앗는 방법이다.

이 같은 시각에서 볼 때 1990년에 창당되었던 민중당은 첫 번째 방법 즉 처음부터 새롭게 만드는 방식으로 정당공작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에 대한 공작은 두 번째 방법 즉 기존에 창당되어 활동하고 있는 정당에 들어가 헤게모니를 빼앗는 공작전술이 적용되었다. 

북한 대남공작부서에서는 기존에 포섭되어 활동하고 있던 인사(간첩)들에게 민주노동당에 들어갈 것을 지시하였고, 이에 따라 북한과 연계된 간첩조직들이 민주노동당 내에 들어가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었던 것이다. 간첩조직들인 ‘일심회’(2006년)와 ‘왕재산’(2011년), 그리고 민족민주혁명당(약칭 민혁당)의 주요 인물들이 민주노동당(그 후 통진당으로 개칭)에 들어가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 것이 바로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한 간첩조직들은 대부분 내선(內線)공작 방식으로 정당공작을 진행하였다. 내선공작이란 북한과 연계된 조직원(간첩)이 정당 내에 직접 들어가 주요 직위를 차지하고 활동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북한과 연계된 조직원은 외부에 있으면서 정당 내에서 활동하는 인물을 포섭하고 그를 통해 정당을 장악하도록 하는 것이 외선(外線) 공작이라고 한다. 내선공작은 진보정당에 대한 북한 대남공작 지도부의 지도와 통제를 보다 확실하게 실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외선공작은 아무래도 장악력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남한 내 진보정당에 대한 공작을 할 때 주로 내선공작 전술을 구사한 것으로 보인다.

  
▲ 헌재가 통진당을 해산시킨 지 2년이 지났지만 구속된 이석기와 RO 관계자 몇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통진당 당원들이 그대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의 대남전략 목표 역시 달라진 것이 없다. 대남전략 실현의 최전방에서 활동하는 대남공작부서도 여전히 건재하다./사진=연합뉴스

통진당은 왜 해산되었는가

지금까지 통진당 위에 북한의 대남공작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 가지 내용을 가지고 말씀드렸다.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 판결에 따라 통진당이 해산되었으나 북한이 통진당 주도세력과 조직적 연계를 맺고 창당 및 운영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는 증거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통진당 해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이석기의 RO가 북한과 직접 연계되어 활동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지 통진당 자체가 북한과 그 어떤 연계도 없이 활동했다는 증거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북한이 통진당 전신인 민노당 시절부터 이 조직을 장악하기 위해 ‘일심회’와 ‘왕재산’ 등 간첩조직을 내세워 민노당 공작을 전개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과 조직적으로 연계되어 활동했던 간첩조직의 조직원들이 법적 처벌을 받은 뒤에도 계속해서 통진당 내에 들어와 통진당이 해산될 때까지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통진당의 강령이나 활동 측면에서 볼 때 통진당은 이미 사상적으로, 이념적으로 북한과 연계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북한이 남한 내 진보정당이나 단체 및 개별적인 인사들과 조직적 연계를 맺으려고 하는 것은 그들을 통해 그들이 활동하고 있는 조직을 상대로 자신들의 이념이나 목표를 보다 철저히 실현하기 위해서이다. 그런 점에서 통진당은 이념이나 활동 면에서 이미 북한의 노선을 충실히 추종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통진당의 강령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실제로 헌법재판소가 통진당 해산 결정을 내린 것은 통진당 강령에 언급된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자주적 민주정부를 세우고, 민중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생활 전반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진보적인 민주주의 사회를 실현하겠다”는 문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통진당 강령에 명시되어 있는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와 ‘진보적 민주주의 사회 실현’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고 있기에 헌법재판소가 통진당을 해산을 결정하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다.

먼저 ‘일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북한이 사용하는 ‘근로인민대중’이라는 표현을 순 우리말로 고쳐 쓴 것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주적 민주정부’라는 표현은 언뜻 생각하기에 남한 운동권에서 먼저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북한이 대남혁명이론을 정립하면서 만들어낸 용어를 남한 운동권이 그대로 가져다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알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북한이 대남혁명이론에서 말하는 ‘자주적 민주정부’의 개념은 무엇일까?

대남혁명이론에서 말하는 ‘자주적 민주정부’라는 개념은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데, 하나는 ‘자주적 정부’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적 정부’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자주적 정부’라 함은 주한미군을 철수시킴으로써 외세의 간섭을 받지 않는 상태의 정부를 말한다. 그리고 ‘민주적 정부’라는 의미는 공산주의 활동을 제재하고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기구(대표적으로 국정원)를 해체하고 법률(대표적으로 국가보안법과 집시법)을 철폐함으로써 소위 ‘민주주의’가 실현된 정부를 의미한다. 이는 다른 말로 현재의 대한민국 정부가 민주주의적인 선거에 의해 선출된 정부임에도 불구하고 민주적 정부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결과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자주적 민주정부를 세우겠다’는 것은 ‘인민이 주인 되는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를 세우겠다는 것이고, 남한을 김정은 노예로 만들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 통진당은 2000년 1월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으로 시작해 2011년 12월 민노당과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 등이 합쳐 창당되었으나 3년 만에 해산됐다./자료사진=연합뉴스


다음으로 ‘진보적 민주주의 사회 실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보기로 하겠다.

통진당 해산청구심판 시 통진당 측에서는 ‘진보적 민주주의 실현’에 대해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라며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진보적 민주주의 실현’은 분명 실체가 있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8.15 광복직후 북한에 들어온 김일성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추진했던 정책노선이 진보적 민주주의였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광복직후 북한에 들어와 당면해서 북한이 나아갈 길은 사회주의의 길이 아니라 진보적 민주주의의 길이라고 강조하고 그 내용으로 공산당의 영도, 토지개혁 실시, 중요산업국유화 등 사회주의 시책을 실시하였다. 이것이 바로 진보적 민주주의의 내용이며 통진당이 실현하고자 했던 진보적 민주주의도 김일성이 했던 진보적 민주주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재판소가 통진당 해산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나는 통진당 해산청구심판 증인의 한 사람으로서 통진당 해산이 대한민국 역사의 흐름을 바로잡는 중대한 사건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이는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통진당이 해산된 지 2년이 지났지만 구속된 이석기와 RO 관계자 몇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통진당 당원들이 그대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의 대남전략 목표 역시 달라진 것이 없다. 대남전략 실현의 최전방에서 활동하는 대남공작부서도 여전히 건재하다.

이 모든 것은 앞으로도 북한이 제2, 제3의 진보정당 공작을 전개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동식 전 남파공작원

(이 글은 지난달 31일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통진당 해산 판결을 통해 본 반대한민국 세력의 정체』 연속세미나 제2차 ‘통합진보당 위에 있는 북한의 대남 전략’ 세미나에서 김동식 전 남파공작원이 발표한 발제문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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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68 경제 덮은 외눈정치, 국가·국민 위 군림하는 괴물노조 낳았다
자유기업원 / 2021-01-11
2021-01-11
8667 기업 극치 중대재해법 임박…“사회주의 발상 다름없다”
자유기업원 / 2021-01-04
2021-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