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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 비즈니스 산업의 메카…할리우드 성공방정식

자유경제원 / 2016-12-17 / 조회: 6,617       미디어펜
 
▲ 남정욱 대한민국문화예술인 공동대표

할리우드, 미국 영화의 수도首都에서 전 세계 쇼 비즈니스 산업의 메카로

전쟁은 당사자에겐 재앙이지만 옆 나라에는 대체로 기회다. 6.25 전쟁은 일본의 부흥을 가져왔고 베트남 전에서 번 돈으로 우리는 도로를 깔았다. 특별히 남다를 것 없던 할리우드가 세계 영화계의 메카로 등극한 것은 제 1차 세계대전의 덕분이었다. 일단 공습을 피해 돈이 미국으로 건너왔다. 세계 금융의 중심이 런던에서 뉴욕으로 이동한 것이다.

돈이 모이는 곳에 산업이 일어난다. 미국 영화계는 거대한 금융자본에 편입되었고 영화는 문화 산업이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단다. 미국의 영화산업은 일순간에 제 5위의 주요 국가산업으로 뛰어 올랐다. 그 전까지 세계 영화 시장의 최대 수출국은 프랑스, 이탈리아, 덴마크였다. 1914년 이후 사정은 역전된다. 1916년부터 1918년까지 유럽 영화 시장은 미국의 독점 공급처였다.

돈만 건너오는 것이 아니다. 인재도 따라온다. 유럽의 내로라하는 영화 예술가들이 전화戰火를 피해 대거 미국 땅을 밟았다. 대표적으로 독일 표현주의를 들 수 있겠다. 독일 표현주의를 한 문장으로 줄여 말하자면 그동안 연극적인 동작을 기록하는 객관적 수준에 머물러 있던 카메라를 달리게 하거나 비틀어 주관적인 관점에서 세계를 볼 수 있도록 해 주었고 빛과 어둠을 이용하여 인간의 심리를 나타내거나 관객의 시선을 끄는 ‘조명’기술을 발전시켰다, 가 되겠다.

또 있다. 인재는 이야기를 가지고 온다. 그 결과 각 나라의 온갖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역사가 짧아 빈곤했던 할리우드의 콘텐츠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코믹 영화와 서부극이 주요 종목이었던 미국영화는 온갖 장르의 영화로 세계를 공략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막강한 자본과 풍부한 영화 인력을 토대로 할리우드를 미국 영화의 수도首都에서 전 세계 쇼 비즈니스 산업의 메카로 바꿔 놓은 것은 바로  ‘스튜디오 시스템’이었다. 이때의 스튜디오란 특정한 공간이 아니라 영화제작사映畵製作社라는 기업의 또 다른 이름으로 영화의 제작, 배급, 상영의 삼박자를 수직으로 통합한 할리우드식式 공정을 말한다.

당시 할리우드의 황제였던 제작자, 아돌프 주커는 최초의 공룡(거대하다는) 제작사인 파라마운트를 설립한 인물로 끼워 팔기(여러 편을 묶어서 상영업자에게 대여함으로써 한 영화의 흥행 위험부담을 줄이는 기법)를 도입해 영화 배급의 새로운 역사를 쓴 사람이다. 작고 단단하고 야심이 풍부하여 영화계의 나폴레옹으로 불리기도 했다. 가상으로 꾸며 본 그의 신년 첫날을 통해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 사진은 아돌프 주커(Adolph Zukor, 1873~1976)


오전 내내 주커는 책상에 머리를 처박고 엎드려 있었다. 지난 보름간의 송년회는 정말 악전고투였다. 밤새 들이부은 폭탄주가 머리와 내장에서 고루 터진 듯 속은 울렁거리고 머릿속에서는 비행기 날아다니는 소리가 들렸지만 일에 관한 한 그는 철저한 데가 있었다. 더구나 오늘은 회사의 일 년치 계획을 짜는 중요한 날 아닌가. 일반인이라고 하기에는 미모가 남다르고 배우라고 하기에는 어딘지 부족한 비서 메기양이 메모장을 든 채 주커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가운 물과 아스피린으로 해장을 마친 주커는 앞에 놓인 서류철을 펼쳤다.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대화에 등장하는 인물을 당시 할리우드 영화인이 아니라 요즘 한국 영화인들로 바꿨다. 좀 경박하다. 미리 양해를 구한다.   

“일단 1월에는 봉준호 감독의 새 작품을 찍도록 하지. 시나리오는 어떤 게 있지?”
“겨울의 미뤄둔 복수와 악마는 남자다가 있는데요.”
“제목이 식상해. 제목을 악마는 여자다로 바꿔. 여배우는 누가 좋을까?”
“12월에 촬영이 끝나는 배우로 전지현하고 김혜수요.”
“전지현이 좋겠네. 아직 누구 죽이는 역할은 해 본 적이 없지?”
“본격적으로는요. 남자 배우는 어떻게 할까요? 유지태하고 송강호가 있는데요.”
“유지태는 무슨 보이인가 하는 영화에서 복수 한번 한 적 있잖아.”
“그렇게 치면 송강호도 있는데요.”
“그럼 유지태로 해. 연령대라도 맞춰야지.”
“시나리오도 다 바꿔야겠네요. 책에서는 남자가 키가 작아요.”
“오케이, 그렇게 해. 1월은 끝났고 2월은 코미디를 하나 하지. 감독은 누가 있어?”
“색즉시공 찍었던 윤제균과 미스 홍당무 찍은 이경미요.”
“윤제균은 하반기에 블록버스터 하나 해야 하니까 이경미로 가.”
“이경미 감독은 애욕의 주말 농장이라는 공포물 하고 싶다고 했는데...”
“나중에 하라고 해. 시나리오는 쾌걸 조루로 하고 배우는 백윤식하고 하정우 붙여.”
“백윤식하고 하정우는 사이가 별루인데요.”
“앞으로 친하게 지내라고 해. 이번 주에 우리 집으로 둘 다 불러. 내가 손 볼 게.”
“주말에는 이정재, 이미숙 미팅이 잡혀있어서...”
“섞어. 3월에는 액션물 하나 찍지. 고지전 했던 장훈 어때?”
“저, 사장님. 장훈 감독은 우리 회사 소속이 아닌데요?”
“뭐? 그럼 어디야?”
“20세기 폭스요.”
“젠장, 언제 채갔지? 그럼 류승완으로 해. 제목은 아부다비.”
“사장님, 아부다비라는 시나리오는 처음 듣는데요?”
“적당한 거 골라서 그 제목으로 바꿔. 베를린 찍었으니까 도시 시리즈로 이어 가면 좋잖아.”
“류승완 감독은 5월에 계약이 끝나네요. 어떻게 할까요?”
“잡아 둬. 삼 년짜리로 재계약해. 어쨌거나 가끔 터지잖아.”
“4월에는 어떤 장르로 할까요.”
“밥 먹고 해. 나는 게살 스프.”
    
주커는 책상에 앉아 서류만 가지고 파라마운트사社의 다음 해 1년 치 촬영일정을 짰다. 당사자들에게는 묻지도 않고. 가상으로 하는 조각組閣 놀이도 있다지만 마치 장난처럼 보이는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답은 전속이다. 당시 할리우드에서는 감독이고 배우고 시나리오 작가고 전부 영화사에 고용된 존재였다. 거부할 수 없는 금력으로 3년에서 5년까지 장기계약을 해 둔 상태이니 제작자의 책상 위에서 감독, 배우를 마음대로 조합하는 꿈같은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당연히 일이 없어도 급여를 주었고 흥행에 대성공하면 가끔 성과급을 지급했다. 감독, 작가, 배우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의상, 미술, 음악, 특수효과 같은 스태프들 역시 계약 신분이었다. 이들에게는 하나가 더 추가된다. 분업이다.

칼 맑스의 경제 이론과 포드 시스템을 적당히 혼용한 분업화로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은 그 효율성을 극대화 할 수 있었다. 조립 공정 방식을 사용, 처음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스튜디오를 운영한 사람은 토머스 인스라는 인물이다. 영화인이라기보다 공장 관리자에 가까웠던  토머스 인스의 제작 공정을 보면 다음과 같다.

주커 같은 영화사 사장은 현재 진행 중인 모든 프로젝트를 총 관리한다. 그 밑으로 제작 책임자가 사장의 지시에 따라 프로젝트를 진행시킨다. 그는 촬영을 할 세트를 짓고 스태프를 확정하고 시나리오를 담당할 작가, 세트와 의상을 담당할 기술자와 건축가를 고른다. 시나리오에 맞춰 영화를 촬영하는 사람은 감독이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재능을 인정받은(쉽게 말해 흥행작을 만든) 일부 감독을 빼고는 감독들의 80% 이상이 제작자가 시키는 대로 촬영해야 하고 90% 이상의 감독들이 스토리나 편집에 권한이 없었다.

모든 것은 한 치 오차 없이 기계적으로 돌아간다. 포드의 컨베이어 벨트에 창의성이 필요 없는 이유와 같다. 이 프로젝트는 보통 1년 전에 기획이 끝난다. 말 그대로 영화를 만들어내는 공장工場이었다. 꿈의 공장, 할리우드는 자금력을 기반으로 하여 전속과 분업이라는 양대 축을 중심으로 탄생했다.

1920년대부터 할리우드는 매년 800편 이상의 영화를 ‘생산’하는데 1929년에 이르러서는 5대 메이저가 사실상 영화산업을 독점한다. 미국에서 제작되는 극영화의 90% 이상을 제작한 이 5대 메이저는 파라마운트, 워너브라더스, 20세기 폭스, MGM 그리고 1928년 한 발 늦게 출발한 RKO다. 

혹시 영화 ‘킹콩’에서 연대가 맞지 않게 공룡이 등장하는 장면에 의구심을 가진 분 있으신가. 당시 제작사인 RKO의 사장이 킹콩의 제작 현장을 돌아보다가 구석에 놓여있던, 다른 작품에 사용되었던 공룡 모형을 보고 한 마디 던졌다. “저것도 좀 써 먹지?” 그 즉시 공룡이 킹콩의 스파링 파트너가 된 것은 물론이다. 백악기에 멸종된 공룡이 시대를 건너뛰어 현대물에 등장한 사연치고는 좀 허무하다. 이처럼 스튜디오에서 사장이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은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취향과 기호에 따라 영화를 만들었다. MGM의 루이스 메이어는 인성 전반에 걸쳐 총체적으로 악명이 높았고 영화의 취향은 통속의 절정이었고 폭스의 다릴 자누크는 신문을 거꾸로 들지 않는 수준의 교양을 가진 사람이었다. 사실 이들은 일종의 대리인들이었다. 스튜디오의 진짜 거물들은 재정본부가 있는 뉴욕 본사에 있었고 그 본사를 쥐고 흔든 것은 존 데이비슨 록펠러와 같은 금융인들이었다. 

서양 음악사에서 음악가의 지위를 설명할 때 보통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을 예로 든다. 하이든은 황실과 귀족이라는 시스템 하에서만 생존이 가능했던 인물이다. 최악으로 말하면 음악 하인이었다. 베토벤은 급속히 성장한 부르주아 계급의 경제력을 기반으로 예술 활동을 펼친 최초의 독립 음악가였다. 황실과 귀족 계급에 기대지 않고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모차르트는 그 중간이었다. 정확히는 베토벤보다 하이든 쪽에 약간 가까운.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던 모차르트는 결국 시스템을 뛰어넘지 못하고 쓰러진다.

1920년대 할리우드의 전속 배우들은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중간쯤에 있었다. 가까스로 예술가로서의 입지를 지킬 수는 있었지만 아주 안전하지는 않았던. 독립을 할 수는 있었지만 생존은 자신이 보장해야 했던. 그러나 그들은 말 그대로 ‘스타’였다. 그들이 자신의 힘을 이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별들의 고향 할리우드

전속, 분업과 함께 할리우드 시스템을 구성한 마지막이 스타 시스템이다. 연극, 오페라, 무용, 음악 콘서트에도 다 스타가 있다. 그러나 그 스타들은 대중들의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일상에서 연극의 한 장면을 재현하는 사람은 없다. 현실에서 오페라에서 본 것처럼 노래를 뽑아대는 사람도 없다. 오직 영화만이 그렇다.

스타는 대중이 만들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스타는 대중의 취향을 지배한다. 스타들이 영화를 통해 미치는 영향은 대중의  욕망 전 영역을 총괄한다. 관객들은 영화 속 스타를 통해 옷 입는 법, 식사하는 법, 우아하게 걷는 법 그리고 키스하는 법을 배운다.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머리를 자르고 나왔을 때 전 세계 여성들의 두발 길이가 삼분의 이로 줄었다. 영화는, 스타는 삶의 교과서였다. 

소속 스타들은 스튜디오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실은 대부분 사장의 취향이긴 했지만 스튜디오들은 각자 다른 개성을 보여주었다. 파라마운트는 마를렌 디트리히, 캐리 그랜트 같은 세련된 외모의 배우들을 선호했고 외국 배우들을 통해 이국적인 분위기를 창조했다. 워너브라더스는 험프리 보가트 같은 터프한 남자 성격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여배우의 경우에도 기준은 변하지 않아 연약한 배우 대신 강단 있어 보이는 배우들이 중심이었는데 베티 데이비스, 로렌 바콜 같은 배우들이 대표적이다. 

  
▲ 사진은 영화 속 한 장면에 출연한 배우 베티 데이비스 (Bette Davis, 1908~ 1989). 베티 데이비스는 과연 당시 배우들 치고는 ‘쎄다’.

반면 MGM은 매혹적인 여배우를 선호했다. 20세기 폭스는 뮤지컬이나 시대극 등에 주력했고 타이론 파워, 셜리 템플 등의 스타가 있었다. 스타는 제작자에게 흥행을 보장해 주는 황금알을 낳는 암탉이었다. 스튜디오의 황금기 동안 5대 메이저의 경우 연간 50편 정도의 영화를 제작하려면 충분한 숫자의 배우를 보유하고 있어야 배역 선정이 가능했다. 해서 스튜디오들의 가장 큰 자산은 보통 30명 이상 되는 소속 스타군단이었다. ‘하늘 보다 별이 더 많다’는 소리까지 들었던 MGM의 경우 그레타 가르보, 조안 크로포드, 클락크 게이블, 캐서린 헵번, 엘리자베스 테일러, 진 켈리 등 최소한 두 세대 이상의 관객을 사로잡는 별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 사진은 영화 속 한 장면에 출연한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 (Elizabeth Taylor, 1932~ 2011).

관객들은 스타와 특정 이미지를 연관시켜 사랑했고 영화 속 인물과 배우를 동일시했다. 당연히 관객과 스타 간에 매우 직접적이고 밀착된 관계가 생성되었다. 스타로 발돋움하는 출발점에서 배우들은 무자비한 노출을 강요당했다. 클라크 게이블은 1930년 MGM에서 14편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역할이 다 달랐다. 어떤 모습에 대중이 환호하는지 확신이 설 때까지 스튜디오에서는 계속 역할을 변화시켰던 것이다. 이러다보니 관객들은 주연배우만 보면 어떤 영화인지 80%는 짐작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미 각인된 이미지에 벗어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뮤지컬에 출연한 총잡이 존 웨인을 상상할 수 있는가. 실제로 존 웨인이 그의 캐릭터에서 벗어난 역할을 했던 영화들은 흥행에서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이런 실패의 계보에는 ‘원초적 본능’으로 스타덤에 오른 뒤 이미지 변신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을 했으나 결국 ‘원초적 본능 2’로 돌아온 샤론 스톤이 있겠다.

스튜디오에서 스타를 만드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그 이미지를 일관되게 관리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외부 활동은 철저하게 홍보부의 조정(실은 조종에 가깝다. 요즘 한국 연예 기획사의 아이돌 연예인을 떠올리면 된다)을 받았으며 필요하면 가짜 스캔들도 터트렸다. 현대의 엔터테인먼트에서 활용되는 대부분의 기법은 이미 백 년 전에 할리우드에서 검증이 끝난 것들이다. 

“예술은 없고 장사만 있다.” 1919년, 할리우드 스타 시스템의 3인방이 이상의 명제로 의기투합한다. 찰리 채플린, 메리 픽포드, 더글러스 페어뱅크스였다. 여기에 ‘국가의 탄생’을 연출한 그리피스가 가세하여 유나이티드 아티스츠를 설립한다. 5대 스튜디오에 발목 잡히지 않고 자신들만의 예술 세계를 보여주겠다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속내는 스타들이 만들고 그 이익을 직접 스타들에게 돌려주겠다는 다소 이기적인 발상이었다.

이들의 계획에 접근한 게 바로 아돌프 주커였다. 주커는 매우 공격적인 연설로 세 사람을 공략했다. “여러분은 저를 여러분의 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의  친구입니다. 영화계에 최초로 변화를 시도한 인물이 바로 저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십니까? 저 지저분한 5센트짜리 극장을 몰아낸 것도 극장 좌석에 고급 벨벳 천을 씌운 것도 바로 접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런 저를 십자가에 못 박으려 하고 있습니다.” 

채플린과 페어뱅크스는 얼굴을 마주보았다. 대체 뭐래는 거니? 중구난방으로 흘러가던 연설은 결국 자신을 유나이티드 아티스츠의 사장 자리에 앉히고 주식을 달라는 결말로 끝났다. 세 사람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유나이티드 아티스츠의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소공자’, ‘황금광 시대’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들이 제작할 수 있는 물량은 턱없이 부족했다. 한 해 50편은 안정적으로 생산해야 하는데 그들은 그 십 분의 일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나가면서  

예술가와 기업은 같이 가야 옳고 맞다. 살펴 본 할리우드의 사례처럼 한 쪽으로 기울어도 문제다. 기업이 너무 설치면 예술이 시들해진다. 반대로 예술가가 기업의 흉내를 내면 망한다(비틀즈가 설립한 애플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예술이 기업을 배제해도 문제다. 60년대 대부분의 록 아티스트들은 기업을 경멸했다. 레코드를 취입하자는 친절한 제안서로 코를 풀었다. 반전反戰, 반자본주의적인 정서가 팽배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레코드 회사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기업은 대중과 아티스트를 이어주는 존재였으니까.

음악 산업에서 현재는 기업 > 예술가의 느낌이다. 탁월한 아티스트를 발굴해 대중들에게 소개하고 그들의 취향을 정리해주던 시대는 갔다. 대중음악의 문법은 나름대로 완성되었고 이제 대중들이 원하는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를 찾아내 공급하는 것이 현대 대중음악의 흐름이다.

한국의 홍대 인디 신도 결국 기업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이전까지의 실패는 인디 레이블의 등장으로 상당 수준 만회되었다. 장기하는 그 대표적인 경우다. 중세가 예술가와 교회, 귀족 권력의 갈등이었다면 현대는 예술가와 기업(자본)의 갈등 구조다. 그러나 그 갈등은 이전만큼 첨예하지는 않다. 외형상 기업은 대중의 요구를 전달하는 창구처럼 보이니까. 문제는 비율이다. 어느 정도까지 서로 간섭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 그러나 박찬욱의 경우에서처럼 간섭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남정욱 대한민국문화예술인 공동대표


(이 글은 15일 자유경제원이 마포 리버티홀에서 주최한 ‘예술인이 본 시장경제 시리즈-예술, 이제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해야’ 세미나에서 남정욱 대한민국문화예술인 공동대표가 발표한 토론문 전문이다.)

[남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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