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책 없는 반강제 `메가 투자` … 韓 대기업, 불황 땐 현금 고갈로 속수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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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자유기업원 2025-11-17 , 뉴데일리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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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대통령 "대미 투자 커도 국내 투자 줄지 않아야"
세제지원 없는 투자 강요 … 기업들, 울며 겨자먹기
투자 지속성 미지수 … 전폭적 지원 中 기업 돌아봐야
대통령이 직접 나서 '미국에만 투자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낸 만큼 울며 겨자먹기로 투자계획을 꺼내들었지만, 정부는 이렇다 할 인센티브도 내놓지 않아 실제 투자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억지로 국내 투자에 내몰렸다가 향후 재무여력이 나빠지면 기업들의 존립까지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 李 대통령 “대미 투자 커도 국내 투자 줄지 않게”…총수들 모아 강조 메시지
17일 재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지난 16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정기선 HD현대그룹 회장 등 주요 재계 총수들을 만나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를 열었다.
이 대통령은 이날 "혹시 대미 투자가 너무 강화되면서 국내 투자가 줄어들지 않을까 그런 걱정들을 하는데, 그 걱정들은 없도록 여러분이 잘 조치해 주실 걸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총수들을 별도로 불러 국내투자 방향을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기업 투자에 따른 세제 지원에는 선을 그었다. 이 대통령은 "세금을 깎아가며 유지해야 할 사업이면 국제경쟁력에 문제가 있다"며 "규제 완화와 철폐 중 가능한 범위를 찾겠다"고 했다. 대통령실 역시 회의 후 "세금 관련 구체 논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대미 500조 투자도 벅찬데 국내 투자 무슨 돈으로
관세 협상 이후 기업들은 투자 여력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미국 주도로 진행되는 반도체·AI·배터리 산업 공급망 재편 속에서 국내 대기업들은 최근 몇 년 새 500조 원이 넘는 대미 투자 계획을 세웠다. 규제와 지원이 얽힌 미국 시장 특성상, 상당 부분이 사실상 '선택 아닌 의무’에 가까운 투자다.
국내 사정도 가볍지 않다. 올해 제조업 설비투자 증가율은 0%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 따르면 제조업 기업 10곳 중 8곳이 “수요 부진 때문에 설비투자를 줄인다”고 답한기도 했다. 금리 상승, 인건비 부담, 글로벌 수요 둔화가 겹치면서 기업의 투자 여력이 바닥을 드러냈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국내투자 확대를 주문하면 '투자 압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 압박과 국내 요구가 동시에 커지면 기업이 확보한 현금흐름은 더 빠르게 소진되고, 불황기에 부채 부담이 확대되면 재무건전성까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당근 없이 압박만 … "투자 지속성 확보 어려워"
재계 안팎에서는 “단기적 성과 중심의 압박이 투자로 연결되기 어렵다”는 반응도 나온다. 투자란 결국 위험을 감수하는 결정인데, 정부가 세제·금융·입지·연구개발 지원 등 명확한 유인 없이 '투자를 유지하라’고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지속성을 확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제조업 공동화가 이미 진행되고 있는데, 하락하는 가동률과 수요 부진 상황을 무시한 채 기업에 투자만 강조하면 장기적 투자 기반이 오히려 약화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특히 국내 공장 기반이 약해지고 협력사 생태계가 흔들리는 가운데 성급한 투자 유도는 산업 생태계를 보전하지 못하는 '양적 압박’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기업 재무구조가 악화될 경우 대규모 투자 축소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올해 3월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에서 열린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준공식에서 브라이언 캠프 조지아주 주지사가 보는 가운데 아이오닉 5 차량에 기념 서명을 하고 있다ⓒ현대차그룹
◆제조업 공동화 불가피 … 전폭적 정부지원 없인 사상누각
국내 제조업의 공동화(hollowing out) 문제는 이미 구조적 위험으로 분류된다. 기술·부품 공급망 중심이 해외로 이동하면 일자리 감소뿐 아니라 국내 연구개발 기반도 약화된다. 전문가들은 “국내 투자를 강조할수록 기업이 국내에서 유지해야 할 가치사슬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내 연구·개발(R&D), 생산·협력사 네트워크, 전문인력 양성 등 산업 생태계를 유지하려면 정부가 기업과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중국의 경우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업고 반도체·자동차 등 첨단산업에서 가파른 투자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한경협 조사에 따르면 2025년 현재 중국은 철강·일반기계·이차전지 등 5개 업종에서 한국을 앞서지만, 2030년에는 10개 전 업종에서 중국이 한국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됐다.
한경협은 “국내 기업들은 우리나라의 기업경쟁력이 이미 미국과 중국에 뒤처지고 있으며, 향후 5년 후에는 그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면서 “특히 5년 후 중국의 기업경쟁력은 미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발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해석했다.
기업들은 ▲대외 리스크 최소화 ▲핵심 인력 양성 시스템 구축 ▲세제·규제 완화 및 노동시장 유연화 등 경제 효율성 제고 등 정부지원을 요청하지만, 내년 AI 연구개발에 배정된 예산은 10조원에 불과하다. 연 수백조원을 쏟아붓는 중국에 비해 초라한 수준이지만, 그나마도 올해보다 3배 가량 늘린 금액이다.
결국 기업들이 체감하는 메시지는 '정부가 투자 명분은 내세우지만 결국 부담은 기업이 짊어진다'는 것이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은 "한국의 경제자유지수는 점수 뿐 아니라 순위에서도 장기적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며 "규제 완화와 정부 역할 확대 없이는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