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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만 경쟁할 것인가?

정도범 / 2020-06-11 / 조회: 2,907

요즘 공공연구기관에 근무하면서 종종 ‘우리나라에서만 경쟁하면 되는가?’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2018년 주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됨에 따라, 작년 7월부터 공공연구기관도 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제한하는 선택적 근로시간제가 적용되었다. 이에 따라 주40시간을 초과하면 더 이상 연구실에 머물 수 없게 되어, 근로시간의 자율성과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보장받게 되었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매우 좋아졌다고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연구자의 연구시간을 강제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과연 국가나 기관 차원에서 바람직한지 의문이 든다.


과거에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밤늦게까지 연구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가끔씩 밤을 새기도 했었다. 그 당시 ‘하버드의 새벽 4시 반’,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 등의 이야기가 항상 나에게 커다란 자극을 주었고, 지금보다 더 열심히 연구하자는 의지를 되새겼다. 그리고 국가 발전을 위해 기여해보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공공연구기관에 입사하였다. 하지만 현재 근로시간이 딱 채워지면 연구에 몰두하다 말고 퇴근하는 연구자들의 모습을 너무나도 쉽게 볼 수 있으며, 나 역시도 점점 적응해가고 있었다. 물론, 연구실 밖에서도 연구할 수 있지만, 연구시설과 장비가 있는 곳을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또한 정부 방침에 의해 공공연구기관에서는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고 있으며, 대기업 등 민간 부문까지 이를 권유하고 있다. 실력 중심으로 인재를 채용한다는 취지는 바람직하나, 학력은 그 사람이 살아온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학력 등이 빠진 서류심사에서 인재를 제대로 판단하기는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짧은 면접심사 동안 임기응변이 뛰어나거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뽑힐 가능성도 존재한다. 채용 시 공공연구기관은 연구 수행에 적합한 인재를 꼼꼼하게 검토해야 하지만, 블라인드 채용의 한계로 인해 실제 그렇지 못한 인재를 채용하기도 한다. 결국 적합한 인재 채용을 위해 시장에 자유롭게 맡겨야 한다. 만약 학력이 실력과 무관하다고 판단된다면 아마 기관(기업)에서 먼저 채용 시 학력을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인재 채용과 관련하여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비정규직의 고용불안과 처우개선 등을 해결하기 위해 공공 부문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당시 공공연구기관에 근무하고 있었던 비정규직만을 대상으로 폐쇄적인 정규직 전환이 이루어졌으며, 대규모 전환으로 인해 신규 채용을 진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는 공공연구기관을 목표로 취업을 준비한 대학(원)생들의 기회를 박탈하였고, 기관 차원에서도 우수한 인력을 채용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사회적인 비용을 수반하는 영역은 시장이 해결하기 어렵고, 정부가 개입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공공연구기관이라 할지라도 정부의 섣부른 개입은 기관 경쟁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특히, 공공연구기관에서 연구시간 제한, 블라인드 채용 등은 연구 역량과도 크게 관련이 있기 때문에, 글로벌 경쟁에서 크게 뒤처지게 될 수 있다. ‘Good to Great’의 저자인 짐 콜린스는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적합한 사람을 버스에 태우고 부적합한 사람을 버스에서 내리게 하라고 언급하였다. 또한 앞으로는 산업 현장의 필요에 따라 정규직보다 계약직 혹은 임시적 형태로 인력을 고용하는 방식인 ‘긱(Gig) 경제’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시점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과 같이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아니라, 인재 채용이나 연구 활동 등을 공공연구기관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맡겨보면 어떨까 한다.


최근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저성장·저물가·저금리’로 불리는 3저() 위기에 직면하였다. 코로나19 이후의 시대는 산업·시장 수요가 변화하여 불가피하게 일자리에서 구조조정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부는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발표와 함께, 공공연구기관에 연구비를 절감하여 단기 비정규직을 채용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향과 상충될 뿐만 아니라, 제한된 경쟁을 통해 한시적으로 채용된 인력이 자신의 역량을 제고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또한 연구시간 제한에 이어, 연구비 절감은 점점 연구자들이 연구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아직까지 선진국들의 과학기술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추격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연구를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는 환경에서 선진국들과의 글로벌 경쟁에서 결코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정말 우리나라에서만 경쟁할 것인가? 이런 나의 생각이 틀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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