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무역론의 사례 학습된 한일무역갈등

박진우 / 2020-05-29 / 조회: 5,175

일본의 반도체 3대 소재 수출 금지는 사실상 일본의 패배로 기울어지는 모양새다. 고순도 불화수소는 솔브레인, SK머터리얼즈 등 국내 기업의 품질 개선이 막바지에 이른 상태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역시 코오롱인터스트리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양산에 돌입했고, SK이노베이션 등이 시제품 테스트 중이다.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당장은 국내 기업의 생산이 어렵지만, 미국의 유명 화학회사 듀폰을 통해 공급받을 예정이다. 충남 천안에 생산 시설을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내년 하반기쯤에는 이들 소재의 일본 의존도가 급감할 것으로 보인다.


무역은 어느 일방의 시혜에 따른 결과가 아니요, 오직 비교우위의 발휘에 따른 상호 이득의 교환이라는 국제무역론의 가르침을 증명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대기업이 그간 일본에 소재 수급을 의존한 까닭은 우리가 ‘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었다. 일본산 소재의 가격과 품질, 수급이 안정적인 상황에서, 굳이 높은 비용을 들여가며 ‘우리가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구조 하에서 일본 정부는 외교로 풀어야 할 강제 징용 분쟁을, 수출 규제를 통한 ‘한국 겁박’으로 해결하려 했다. 일본산 소재를 수입하는 데에 있어 ‘소재 수급의 불안정성’이라는 막대한 무형 비용을 우리 기업에 안긴 것이다.


결국 일본 정부는 자국 기업의 비교우위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자살골’을 넣은 셈이다. 그 덕에 한국과 미국, 중국과 러시아, 독일 등지의 소재 기업이 우리 대기업과 거래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있어 對日 비교우위를 갖게 됐다. 반도체 소재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큰 손’이다. 졸지에 일본 소재 기업들은 큰 수요처를 잃게 됐으니, 타격이 상당할 것이다. 더구나 이번 사태로 반도체 3대 소재 뿐만 아니라, 일본 의존도가 높은 부품·소재 전반에 ‘일본 움직임’이 가속화 하고 있다. 일본은 더 이상 믿지 못할 나라라는 불안감이 우리 기업의 무형 비용으로 현실화 하여, 일본 부품·소재 기업의 對韓 비교우위가 급전직하 하고 있다. 


동일한 국제무역론의 가르침으로 주장하건대, 우리의 반일불매운동이라는 것도 부박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반일불매운동의 주축인 2030 세대가 닌텐도 <동물의 숲> 게임에 열광하는 것은 한국이 갖지 못한 비교우위가 일본에 있음을 인정하는 꼴이다. 비교우위를 갖는 상품을 수출하고, 비교열위에 놓인 상품을 수입하는 것은 국민의 후생 극대화 차원에서 자연스럽고 지당한 현상이다. 불매운동 한답시고, 후생을 포기하는 것은 유아적 열등감에 휩싸인 자해 행위다.


혹자는 일종의 정신승리 화법을 구사하기도 한다. <동물의 숲>은 한국에 마땅한 대체재가 없어 불매운동을 할 수 없지만, 유니클로 의류나 도요타 자동차 등은 한국에 대체재가 많으니 불매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상품의 대체성은 온전히 그 상품을 소비하는 개인의 판단에 달린 것이다. 어떤 사람은 <동물의 숲>과 <애니팡>이 같은 게임이지 뭐가 다르냐고 얘기하면서도, 유니클로 히트텍과 보디가드 내복은 차원이 다르다고 느낄 수 있다.


반일불매운동론자들의 주장은 이런 개인의 차이를 모두 부정하고, 오직 자신의 선호체계만이 옳다고 강요하는 파시즘적 사고의 발로일 뿐이다. 국제무역의 본령이 ‘외화벌이’가 아닌, 우리가 잘 만드는 것을 수출하는 대신 못 만드는 것을 수입하여 ‘국민의 후생을 극대화’ 하는 데에 있다는 점을 무시하는, 낮은 경제 지력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번 한일무역갈등을 주시하면, 그 자체로 하나의 국제무역론 사례 학습과 같다. 왜 자유무역이 옳은지, 각종 국수주의적 주장이 왜 결국엔 자국에 극심한 피해로 돌아오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아시아 자유진영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두 나라가 한쪽은 얄팍한 우월의식에, 다른 한쪽은 유아적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자유무역을 백안시 했다는 점이다. 번영의 원리를 깨닫지 못한 자들에게, 번영은 계속해서 그 자리를 지키려 하지 않을 것이다. 양국이 모두 저성장 국면에 직면한 것은 처참한 경제 지력의 민낯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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