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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의 대상과 부담자는 다르다

글쓴이
정재민 2026-05-27

1. 세금은 누가 내는가?
세금을 '부과받는 자'와 세금을 '실제로 부담하는 자'는 다를 수 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조세귀착의 문제라고 부른다. 우리는 흔히 법적 납세 주체를 곧 경제적 부담자로 여기지만, 현실의 시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세금의 의도와 다르게 부담은 협상력과 시장 구조에 따라 전가되고, 때로는 처음부터 전혀 다른 사람에게 도달한다.


2. 관세의 역설: 기업이 내고, 소비자가 부담한다
2025년 4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은 이른바 '미국 해방의 날'을 선언하며 전 세계를 대상으로 상호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명분은 분명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불공정 무역을 일삼는 외국 기업에 고통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이 정책에 환호했다. 하지만 그 고통은 실제로 외국 기업에 전해지지 않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분석에 따르면, “관세로 인해 오른 비용의 90%가 결국 미국 기업과 소비자에게 전가됐다” 고 분석했다. 또한 예일대 예산연구소는 2025년 상호관세 발효 시점을 기준으로 미국 물가가 단기적으로 1.8% 오르고, 평균 가구당 연간 2,400달러의 실질소득이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관세는 외국 기업에 부과됐지만, 청구서는 미국 소비자의 카드에서 결제됐다.


3. 한국 정부의 부동산 규제와 그 구조
최근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2025년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부동산 상승을 막기위해 출범 4개월 만에 세 차례 대규모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다. 그중 10·15 대책은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을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동시에 묶는 '3중 규제'로, 역대 정부를 통틀어 전례 없는 강도였다. 갭투자는 사실상 전면 금지됐고, 2026년 5월부터는 4년간 유예됐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도 재개된다. 정부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다주택자에게 집을 팔게 만들어 부동상 시장을 안정시키고, 상승을 막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조차 2025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일련의 부동산·대출 규제 조치에 대해 '서민의 고통이 수반될 수 있지만’ 이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세금 부담이 서민들에게 전이됐다.


4. 수치로 보는 전가의 현실
규제의 방향은 다주택자이였지만, 가장 먼저 달아오른 것은 임대 시장이었다. 갭투자 차단으로 전세 매물이 급감하고 월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2025년 서울 아파트 월세 상승률은 3.29%로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보유세 부담도 임대료로 흘러들 채비를 마쳤다. 강남 은마아파트 전용 84㎡의 내년 보유세는 올해보다 42.7% 뛴 1,005만 원으로 추산된다. 집주인이 이 비용을 스스로 흡수할 유인은 없다. 전문가들이 2026년 서울 전셋값 상승률(예상 4.7%)이 매매가 상승률을 웃돌 것이라고 전망하는 배경이다. 매매를 막으면 임대로, 전세를 막으면 월세로, 공급이 줄면 가격으로. 시장에는 규제를 돌아가는 회로가 언제나 열려 있다.


5. 전가 메커니즘 비교: 관세 vs 부동산 규제
두 사례는 같은 메커니즘을 공유하면서도 그 속도와 방식이 다르다. 관세의 전가는 빠르고 가시적이다. 관세 부과 후 7개월이면 가격이 완전히 전가된다는 연준의 분석이 이를 보여준다. 반면 부동산 규제의 전가는 계약 갱신 주기, 매물 잠김, 공급 감소라는 완충지대를 거치며 더 느리고 복잡하게 작동한다. 그러나 방향은 같다. 다주택자를 압박하면 임대 공급이 줄고, 전세 매물이 사라지면 월세 시장이 달아오른다. 전문가들이 2026년 전월세 시장의 불안 요소가 매매 시장보다 더 크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6. 정책의 대상과 부담자는 다를 수 있다
트럼프의 관세가 미국 소비자에게 전가됐듯,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규제는 보호하려는 세입자에게 오히려 더 높은 월세 청구서를 안기는 역설을 낳고 있다. 좋은 정책은 '누구를 겨냥하느냐'만큼이나 '비용이 어디에 착지하느냐'를 함께 묻는다. 법적 대상과 경제적 부담자 사이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는 한, 정책이 보호하려는 사람이 가장 먼저 청구서를 받게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