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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익(私益)이 지배하는 규제의 민낯

글쓴이
한승우 2026-05-27

정부의 규제는 선의에서 출발한다. 자본을 통제하고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 앞에서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정치인들은 카메라 앞에서 골목상권을 외친다. 기존 산업 종사자들은 생존권을 내걸고 거리에 선다. 겉보기엔 무척이나 정의로운 풍경이다.


그런데 왜, 이 따뜻한 정책들의 끝은 늘 누군가의 독점일까. 정책 시행 이후의 현실을 짚어보자. 약자는 구제받았는가? 시장은 공정해졌는가? 결과는 참담했다. 현실의 입법은 동화가 아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 스티글러의 '규제 포획 이론'은 규제의 실체를 잘 보여준다. 규제는 공익을 위해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기존 기득권이 자신의 지대를 지키고 경쟁자의 진입을 막기 위해 국가의 강제력을 '구매'한 결과물에 가깝다. 약자 보호는 포장지다. 알맹이는 기득권의 사익 수호다. 한국 경제의 숨통을 조이는 수많은 규제 역시 이 덫에 단단히 걸려 있다.


10년 넘게 이어진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를 보자. 2012년 정치권은 유통 재벌로부터 전통시장을 지키겠다고 나섰다. 대형마트 문을 한 달에 두 번 닫게 했다. 주말에 장을 보려던 소비자들이 장바구니를 들고 동네 시장으로 갈 것이란 계산이었다. 표를 의식한 정치권과 특정 상인 단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규제는 곧바로 강행됐다.


10년이 지났다. 대형마트가 쉬는 일요일, 전통시장은 살아났는가. 대형마트 매출은 꺾였다. 그 발길이 전통시장으로 향한 비율은 20%도 채 되지 않았다. 마트를 찾던 소비자와 전통시장 수요는 애초에 대체재가 아니었다. 나 역시 전통시장을 이용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대형마트에서의 식재료 가격과 품질을 확인하고, 상품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 전통시장에서 식재료를 사는 방식으로 시장을 이용한다. 또한 소비자들이 마트가 닫힌 일요일에 켠 것은 스마트폰 앱이다. 쿠팡과 마켓컬리 같은 온라인 이커머스라는 제3의 자본이 반사이익을 챙겼다. 이 규제는 소비자의 주말을 불편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목표했던 지역 상권 부흥은 없었다. 남은 것은 골목상권을 지킨다는 명분뿐이다.


대형마트 규제가 과거의 실패라면, 플랫폼 규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혁신 플랫폼이 등장할 때마다 사회는 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소비자가 환호하는 서비스가 나온다. 기존 직역 단체들이 생존권을 이유로 반대한다. 정부와 국회는 갈등을 중재하는 대신, 이익집단의 눈치를 보며 새 기업을 막는 법안을 통과시킨다.


승차 공유 서비스 '우버’가 그랬다. 심야 시간 승차난에 지친 시민들에게 쾌적한 모빌리티 서비스는 확실한 대안이었다. 택시 업계의 반발이 이어지자 국회는 '우버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시민의 이동 편익은 무시됐다. 우리 일상을 생각해보면, 택시가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부터 운행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 택시가 사람들이 일을 마치고 회식을 한 뒤 집에 가려고 하는 시간에 운행하는 택시도 많지 않다. 이러한 사람들의 택시 이용에 대체를 할 수 있는 '우버’ 플랫폼을 규제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전체적인 효용을 줄이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법률 플랫폼 '로톡’과 비대면 진료 서비스도 다르지 않다. 정보 비대칭을 줄여 서민들이 쉽게 법률 조력을 받게 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쉽게 의료 서비스를 누릴 길을 열었다. 변호사 단체와 의사 단체는 고발을 이어가며 이들을 쫓아내려 했다.


이들이 내세우는 반대 이유는 늘 비슷하다. "소비자 안전이 우려된다", "플랫폼 독점이 문제다", "골목 상권이 죽는다". 포장지를 벗겨보면 속내는 "새 경쟁자가 내 밥그릇을 뺏는 꼴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경쟁으로 서비스 질을 높이고 가격을 낮추는 시장의 진화를 국가가 막아선다. 특정 집단만 보호하는 '사다리 걷어차기’다. 그 피해는 주말 밤 택시를 잡지 못하는 시민들, 양질의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는 국민들의 몫이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이익집단의 로비에 밀려 독점적 지위를 보장해 주는 방패막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특정 집단의 이윤을 지켜주는 규제 장벽은 허물어야 한다. 누군가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다른 누군가의 혁신을 가로막는 것은 공익이 아니다.


모든 주체가 링 위에서 경쟁하도록 도와야 한다. 소비자가 가장 좋은 서비스를 합리적인 가격에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 그것이 국가의 임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잡겠다며 또 다른 장벽을 세우는 일은 멈춰야 한다. 국가는 기득권의 보디가드가 아니다. 규칙을 어기면 호루라기를 불지만, 경기 자체에는 개입하지 않는 냉정한 룰 메이커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겹겹이 쳐진 규제의 망을 끊고 혁신을 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