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E Home

묵수성규(墨守成規) - 경자유전 이라는 낡은 틀

글쓴이
이성우 2026-05-27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유용한 도구가 애물단지가 되는 일은 흔하다. 이는 정부 정책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인데, 경자유전의 원칙이 대표적이다. 경자유전의 원칙하에 진행한 농지 개혁으로 한국 농업 시장은 수많은 자영농이 경쟁하는 완전경쟁시장으로의 전환을 이룰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증가한 농업 생산성을 바탕으로 한 인구 부양력의 상승은 산업화에 필요한 인구를 확보할 수 있게 하였고, 한강의 기적의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경자유전의 원칙은 오늘날에는 한국 농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원인 중 하나로 여겨지기도 한다.

한국 농업의 문제점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기업농의 부재이다. 사실 현재 한국 농업의 상황은 오히려 기업농이 등장하기에 적절한 상황이다. 기존의 소규모 자영농들이 고령화되어 농업에 종사할 다음 세대가 필요한데, 농업 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사람은 적기 때문이다. 이는 주인을 잃은 농지를 얻은 자영농이 기업농이 되기에 적절한 환경이다. 하지만, 경자유전의 원칙이 기업농의 등장을 막고 있다.

경자유전의 원칙이 왜 기업농의 등장을 막고 있는지 이야기하기에 앞서 경자유전의 원칙으로 인해 형성된 한국 농업의 진입장벽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경자유전의 원칙으로 인해 농지는 원칙적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으며, 농지의 임대 또한 예외적인 사유를 제외하면 불가능하다. 농지의 매매에도 농지취득자격증명의 취득과 같은 제한이 있다. 특히 기업 규모로 농업을 영위하려면 농업 법인의 설립과 같은 추가적인 절차가 필수적이다. 농업회사법인은 비농업인 출자가 가능하지만, 총출자액의 90%를 초과할 수 없고, 발기인 중 최소 1인은 농업인이어야 한다. 간단히 서술하였지만, 농지 취득을 위한 절차가 무척이나 복잡하다. 이러한 복잡한 농지 취득 절차가 경자유전의 원칙으로 인해 생긴 진입장벽이다.

시장에 진입한 시장 진입자가 규모를 키워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자유롭게 생산수단에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기존의 기업이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도 생산수단에 대한 자유로운 투자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전술하였듯이 경자유전의 원칙은 이러한 생산수단에 대한 자유로운 투자를 막고 있다. 이로 인해 개인이 농업에 뛰어들고 성장하여 기업농이 되는 것은 물론, 기존의 기업이 농업에 진출하여 기업농이 되는 것도 무리가 있다. 정리하자면, 정부의 시장 효율화 정책인 경자유전의 원칙이 현재는 시장의 발전을 가로막는 정책이 된 것이다.

경자유전의 원칙을 완전히 폐지하기에는 여러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경자유전의 원칙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기에, 이를 완전히 폐지하기 위해서는 개헌이라는 매우 어려운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현재로서는 농지 임대 요건 확대와 농업회사법인의 설립요건 완화와 같은 방식의 점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점진적인 변화만으로도 경자유전의 원칙으로 인해 높아진 농업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농지를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 농업의 진입장벽 중 가장 큰 부분인 만큼, 전술한 변화를 통해 농지 수급 문제만 어느 정도 해결해도 진입장벽 해소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경자유전의 원칙은 분명 좋은 원칙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시장의 발전을 막는 장애물이다. 경자유전의 원칙을 기반으로 한 농지법으로 인해 농업 시장 진입자들은 농지 수급 단계부터 진입장벽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진입장벽으로 인해 한국 농업 시장은 활기를 잃고 비효율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농지 임대 요건 완화 및 농업회사법인 설립요건 완화와 같은 경자유전의 원칙을 깨뜨리지 않는 선에서의 변화만으로도 이런 비효율을 감소시킬 수 있다. 과거의 성공에 눈이 멀어 이러한 자그마한 변화조차 무시한다면, 한국 농업 시장의 비효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