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비를 핌피로 : 우리 동네 쓰레기장과 코즈의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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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이련 20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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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사반대', '주민 생존권 위협하는 시장은 물러가라'.
어느 동네든 쓰레기 소각장이나 하수처리장 건립 소식이 들리면 어김없이 거리에 나부끼는 붉은 현수막의 문구들이다. 우리는 흔히 이 익숙한 풍경을 마주하며 '지역 이기주의', 즉 님비(NIMBY·Not In My Backyard) 현상이라며 혀를 차곤 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는 기꺼이 감내해야 할 희생인데, 시민 의식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도덕적 질타도 으레 뒤따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붉은 머리띠를 두른 주민들의 절박한 투쟁은 결코 단순한 몽니나 이기주의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시장의 가격 기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외부효과'라는 거대한 구조적 폭력에 맞서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당연한 경제적 생존 본능이기 때문이다.
쓰레기 소각장과 같은 필수 공공 인프라가 들어서면 그 편익은 쾌적한 환경이라는 이름으로 도시 전체 시민들이 골고루 누린다. 반면, 시설 반경에 거주하는 인근 주민들은 악취와 소음, 대형 화물차량으로 인한 교통 혼잡, 그리고 무엇보다 치명적인 재산 가치 하락이라는 막대한 '비용'을 홀로 뒤집어쓰게 된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가리켜 '부정적 외부효과'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공익이라는 미명하에 소수에게 일방적인 ‘한계피해’를 강요하고 그들의 기회비용을 착취하는 구조인 셈이다.
과거 지자체들의 갈등 해결 방식은 늘 행정 편의주의적이고 관료적이었다. 갈등이 터지면 획일적인 기준표를 들이밀며 행정 구역 단위로 보상금을 'N분의 1'로 기계적으로 쪼개어 던져주듯 지급했다. 오염을 유발하는 측의 편익과 피해자가 잃어버리는 기회비용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 그야말로 엉터리 가격 책정이었다. 주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실질적인 피해액에 턱없이 모자란 보상금은 오히려 '우리를 기만한다'는 불신이라는 기름을 부었고, 이는 고스란히 막대한 사회적 갈등 비용, 즉 막대한 '거래비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최근 이 해묵고 끈질긴 갈등을 '시장의 언어'로 단숨에 해결한 통쾌하고도 우아한 에피소드가 있다. 바로 고양특례시의 폐기물처리시설 입지 선정 과정이다. 당초 이 시설은 입지 공모에서 두 차례나 연속 유찰되며 전형적인 님비의 단단한 벽에 부딪혀 좌초 위기에 놓여 있었다.
위기의 순간, 행정은 공권력의 강압이나 허울 좋은 도덕적 설득 대신 '인센티브'라는 시장경제의 마법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기존의 기계적인 일률 보상 방식을 과감히 폐기하고, 세대 수, 생활권별 환경영향도, 시설 밀집도 등 주민들이 입는 '실질적 피해 지표'를 현미경처럼 정밀하게 계량화한 새로운 지원금 산정 공식을 전격 도입한 것이다. 실제로 고양시는 이 새로운 공식을 적용하여, 고양환경에너지시설 반경 300m 이내에 위치한 일산와이시티 2,404가구를 비롯해 윈스턴파크 등 총 2,687세대에게 최근 3년간 32억 5천만 원의 주민지원기금을 피해 정도에 비례하여 정확하게 차등 지급했다.
부정적 외부효과를 정교한 ‘피구 보조금’원리로 '가격화'하여 보상하자, 곧바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피해의 대가가 자신이 감수해야 할 한계비용을 상회하는 합리적인 시장 가치로 보전된다는 확실한 경제적 신호가 켜지자, 두 번이나 유찰되던 소각시설 입지 공모에 무려 전국 13개 기초자치단체가 앞다투어 응모하며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이는 진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모두가 꺼리던 혐오시설이 하루아침에 지역 발전과 확정적인 금전적 이익을 보장하는 매력적인 '유치 희망 대상'으로 신분 상승을 이룬 셈이다. 갈등 회피형 개발이 상생 협력형 개발로 탈바꿈하는 완벽한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로널드 코즈(Ronald Coase)는 재산권이 명확하게 획정되고 거래비용이 충분히 낮다면, 시장 참여자들의 자발적 타협을 통해 외부효과 문제가 말끔히 해결된다고 갈파했다. 고양시가 이뤄낸 조용한 기적은 이 '코즈의 정리'가 딱딱한 대학교 경제학 교과서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 행정 속에서 어떻게 꽃피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종종 시장경제를 차갑고 비정한 약육강식의 이기적인 논리로만 깎아내리고 오해한다. 하지만 정교하고 올바르게 설계된 시장경제의 원리는 그 어떤 도덕적 설교나 공권력의 강제보다도 따뜻하고 공정하게 사회적 상처와 갈등을 치유한다. 누군가에게 억울한 희생을 강요하지 않고, 각자가 치러야 할 기회비용을 정당하게 계산해주며, 합리적인 인센티브를 통해 스스로 윈-윈(Win-Win)하는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부드럽게 이끌기 때문이다.
자본은 비효율을 용납하지 않으며, 깨어있는 합리적 개인 역시 맹목적인 손해를 강요하는 낡은 관행을 더 이상 수용하지 않는다. 2026년,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진정한 사회적 혁신은 거창하고 추상적인 이념 구호에 있지 않다. 그것은 바로 우리 동네 쓰레기장 앞의 왜곡된 가격표를 제값으로 다시 써 내려가는 작고 치밀한 실천에서부터 시작된다.
사회적 갈등의 상당수는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가격을 올바르게 매기는 것, 피해를 정확히 계량하는 것, 그리고 합리적인 인센티브를 통해 자발적 선택을 이끌어내는 것. 그 작은 설계의 차이가 반목과 비용의 연쇄작용을 끊어낼 수 있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보이지 않는 손은, 우리가 투명하고 합리적인 인센티브의 룰을 세워줄 때 비로소 그 어떤 관현악보다 아름다운 상생의 교향곡을 연주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