쫀득함이 시장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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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수빈 20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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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영하의 날씨에도 인천의 한 카페 앞에는 아침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그 카페가 파는 것은 커피가 아닌,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동그란 디저트인 두바이 쫀득쿠키(두쫀쿠)다. 쿠팡이츠 검색어 1위가 한 달 넘게 유지됐고, BBC와 뉴욕타임스까지 주목한 이 쿠키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시장경제의 핵심 원리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번엔 다르다]
한국 디저트 유행의 역사는 짧고 굵다. 허니버터칩은 중고나라에서 정가의 3배에 거래됐고, 대왕카스테라는 6개월 만에 30여 개 브랜드가 생겨났다가 논란과 함께 전멸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유행이 특정 제품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쫀쿠는 다르다.
첫째, 낮은 진입장벽이다. 허니버터칩은 해태제과 단일 공장에서만 생산됐지만, 두쫀쿠는 기존 카페 설비로 누구나 만들 수 있다. 공급 측 진입장벽이 낮을수록 수요 증가에 대한 공급 반응속도가 빠르고, 이것이 스타벅스·이디야 등 대형 프랜차이즈부터 동네 카페까지 시장 전반으로 열풍이 확산된 핵심 이유다. 둘째, 제품 확장성이다. 두바이 필링이라는 보완재가 찹쌀떡, 마카롱 등 기존 디저트의 수요곡선을 동시다발적으로 우측 이동시켰다. CU의 두바이 찹쌀떡 46만 개, 마카롱 출시 18일 만에 12만 개 판매가 이를 방증한다. 셋째, 소비자 참여성이다. 완제품 품귀가 심해지자 소비자들은 직접 재료를 구입해 만드는 '두쫀쿠 김장' 문화를 형성했다. 공급 부족이 소비자를 생산자로 전환시키는 프로슈머 현상으로, 시장의 자율 조정 기능이 작동한 결과다.
[수요의 폭발, 공급망의 충격]
네이버 기준 한 달 검색량은113만 건, 전월 대비 251% 증가했다. SNS 알고리즘이 수요곡선을 수주 만에 급격히 우측 이동시킨 것으로, 과거라면 수개월이 걸렸을 수요 창출이 디지털 플랫폼 환경에서 단기간에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이 수요 폭발은 글로벌 원자재 시장을 직접 흔들었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피스타치오 수입단가는 2025년 1월 톤당 1,500만 원에서 2026년 1월 2,800만 원으로 1년 새 84% 급등했고, 열풍이 정점이던 2025년 12월 한 달 수입량은 월평균의 2.2배가 집중됐다. 단기 수요 급증이 공급이 비탄력적인 원자재 시장에 가격 충격을 일으킨 전형적인 수급 불균형이다. 그러나 같은 호황 속에서도 결과는 달랐다. 원가 상승을 흡수할 여력이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와 달리, 소상공인은 생산자 잉여가 급감했다. 정보 비대칭과 조달 역량의 격차가 시장 참여자 간 성과를 갈랐고, 이는 시장의 자율 기능이 효율성과 불균형을 동시에 낳는 시장경제의 명과 암을 보여준다.
[국경을 넘은 수요, K-디저트의 역수출]
두쫀쿠의 확산은 국내에 그치지 않았다. 두바이에 존재하지 않는 음식이 '두바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계로 퍼져나가는 역수출 현상이 일어났다. 2026년 1월 도쿄 신오쿠보를 시작으로 오사카·나고야로 확산됐고, BBC와 뉴욕타임스도 이 열풍을 보도했다. 이는 K-푸드 수출의 새로운 경로를 시사한다. 완제품이 수출되는 것이 아닌 한국에서 형성된 트렌드 자체가 해외로 확장되는 방식이다. 국제무역의 관점에서 한국은 글로벌 식문화를 재가공해 소비자 선호를 이끌어내는 비교우위를 갖추고 있으며, K-브랜드 프리미엄이 해외 시장의 가격 수용성을 높이는 무형의 수출 경쟁력으로 작동한다.
[쫀득함이 남긴 것]
두쫀쿠 열풍은 정부의 기획도, 대기업의 주도도 아니었다. 한 소규모 카페의 레시피 실험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았고, 그 수요 신호에 시장이 자발적으로 반응해 원자재 시장을 흔들고, 프랜차이즈 메뉴를 바꾸고, 해외 유통망까지 재편했다. 가격 메커니즘이 정부 개입 없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시장경제 자율 조정의 교과서적 사례다. 다만 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정보 비대칭이 초래하는 시장 실패가 소상공인에게 불균형한 부담을 안긴 만큼, 정부의 역할은 시장을 막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경쟁 환경을 보장하고 소상공인의 공급망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있다.
유행은 지나간다. 하지만 두쫀쿠가 증명한 것은 남는다.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과 기업 간의 치열한 경쟁이 만나면, 작은 쿠키 하나도 국제 원자재 시장과 글로벌 유통망을 바꿀 수 있다. 경쟁이 있을 때 혁신이 태어나고, 혁신이 있을 때 시장이 성장한다. 이것이 시장경제가 작동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