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표상은 시장의 범죄자인가, 잘못된 가격의 방증인가 - KBO 티켓 가격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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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신고운 20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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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표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구장 운영비에 보탬이 되지도, 선수를 훈련시키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티켓 한 장으로 구단보다 손쉽게 이득을 얻는가? 현재 구성된 시장 경제가 그렇게 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2024년 10월, 한국시리즈 티켓 예매가 시작된 후 정가 9,000원의 스카이 석은 예매 직후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9만 원에 올라왔다. 정가 4만 5,000원짜리 좌석은 25만 원을 호가했다. 중고거래 플랫폼에는 '자리 상관없이 표 구합니다’라는 글이 쏟아져 나왔고, 경찰은 암표 단속 전담팀을 꾸렸다. 우리는 으레 암표상을 욕하고 단속을 강구한다. 그러나 우린 원초적인 질문을 잊었다. 왜 9,000원짜리 표가 9만 원에 팔렸는가?
암표는 범죄가 아닌 시장의 신호다
경제학의 관점으로는 암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특정 재화의 가격이 시장 균형보다 낮게 고정되면 초과수요가 발생하고, 누군가는 그 차익을 얻는다. 즉, 암표는 시장 가격이 틀렸다는 신호이다. 수만 석 규모의 구장에 수십만 명의 수요가 몰리는 상황에서, 정가를 낮게 유지하면 그 가격의 차이는 누군가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간다. 현존하는 암표상을 아무리 많이 잡는다 해도, 빈 암표상의 자리는 또 다른 암표상으로 채워진다. 실제로 단속의 실효성은 처참하다. 암표상이 1인 예매 제한 수량인 4장을 사서 되판다고 가정해 보자. 장당 4만 5,000원짜리를 25만 원에 되팔면 차익만 80만 원이 넘는다. 그러나 경범죄 처벌상 범칙금은 고작 16만 원에 머문다. 처벌을 강화해도 근본 구조가 그대로라면, 암표는 또 다른 형태로 우리 곁에 남는다.
구단이 스스로 암표 시장을 만든다
그렇다면 왜 KBO 구단은 티켓을 시장가보다 낮게 책정하는가? 단순히 친화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함이다. 가격을 올리면 팬들의 반발을 산다는 것이 오랜 관행으로 굳어졌다. 한국시리즈 티켓의 실제 수요 가치가 4만 5,000원이 아니라 25만 원이라면, 차액 20만 5,000원은 구단이 받아야 할 수익이다. 그러나 지금 그 돈은 암표상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구단이 팬 눈치를 보는 사이, 암표상은 어부지리로 돈을 얻는다. 미국 메이저리그(MLB)의 경우 이미 동적 가격제(Dynamic Pricing)를 도입해 수요가 높은 경기의 정가 자체를 올린다. 구단이 그 차익을 직접 가져가기 때문에 암표상이 이익을 챙길 구조가 자연스레 좁아진다. 가격이 수요를 반영하면 암표가 끼어들 틈이 없다.
규제만이 답은 아니다
단속과 처벌 강화도 암표 체제 방지의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규제만으로는 부족하다. 수요가 살아있는 한, 공급도 사라지지 않는다. 암표 수요의 방증은 '정가보다 더 낼 의향이 있는 사람’ 즉, 지불용의가 존재한다는 것이고, 이는 가격 구조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다만 동적 가격제가 구단 수익 측면의 해법이라면, 팬 형평성 측면의 보완책도 함께 필요하다.
해법은 시스템에 있다
그렇다면 가격을 배로 높게 측정해야 하는가? 반론 또한 존재한다. 티켓 가격을 올리면 저소득 팬들이 야구장에 올 수 없게 된다는 우려다. 타당한 주장으로 보이지만, '가격을 기하급수적으로 높이는 것’이 아닌, '특정 팬을 선별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해결 방안이다. 예를 들어, MLB의 Verified Fan 시스템과 같이 팬 인증 기반 선예매를 도입하면 오랜 팬에게 우선권을 제공할 수 있다. 실제 팬이 아니라 차익을 노리는 암표상의 접근을 구조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승부는 가격만이 아닌, 시스템에도 존재한다. 진짜 문제를 겨냥할 수 있어야 한다.
암표상은 잘못된 가격구조가 불러일으킨 결과물이다. 이는 원인이 아니다. 경찰이 암표상을 잡는 동안 구단은 누적된 손해를 보고 있다. 팬들의 선택지는 비싼 암표를 구하거나, 야구 경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시장이 보내는 신호를 외면하는 것은 원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표 한 장의 실제 가치를 구단이 가져갈 것인가, 암표상이 쥐어질 것인가? 가격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시장을 설계하는 것, 그것이 암표 문제의 근원적 해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