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E Home

위험을 거래하지 못하는 시장의 대가

글쓴이
이혜서 2026-05-27

중동 전쟁으로 촉발된 원자재 대란은 건설 현장의 비용 구조를 흔들고 있다. 특히 레미콘 가격 급등과 나프타 등 주요 원자재 수급 불안이 공사비 압박을 극단적으로 키웠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한 비용 증가가 아니다. 공사는 멈추고, 계약은 충돌하며, 현장은 갈등의 연속이 되고 있다. 실제로 일부 건설사는 시공 중인 사업장에 공사 지연 가능성을 통보했으며 서울 은평구의 한 정비사업장에서는 준공을 앞두고 수백억 원 규모의 추가 공사비가 요구되기도 했다. 이미 한 차례 대규모 증액이 이뤄진 사업장에서조차 다시 비용 분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계약은 고정되어 있지만 가격은 폭등한다. 이 구조에서는 누군가는 반드시 손해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단순한 비용 상승으로 보는 것은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건설사업은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다. 계약 시점과 시공 시점 사이의 가격 격차는 피할 수 없다. 결국 공사비 문제의 핵심은 ‘얼마가 드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변하느냐’에 있다. 이것은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리스크의 문제다.

이 지점에서 선물시장의 역할을 생각해볼 수 있다. 선물시장은 가격 변동 위험을 거래하는 시장으로 미래 가격을 현재에 확정함으로써 불확실성을 줄이는 장치다. 자재 가격 상승이 예상된다면, 지금 가격을 고정해 향후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위험을 분산하는 과정이다. 시장은 가격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그 변동에서 발생하는 위험까지 나누는 기능을 가진다. 또한 이와 같은 위험 관리 방식은 이미 다양한 산업에서 활용되고 있다. 항공사는 유가 상승에 대비해 연료를 선물로 구매하고 농업에서는 곡물 가격 변동에 대응하기 위해서 선물거래를 활용한다. 가격 변동이 큰 시장일수록 가격을 통제하기보다 위험을 분산하려는 시장 메커니즘이 작동해왔다. 건설업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오히려 장기간 프로젝트와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다는 점에서, 다른 산업보다 더 강력한 리스크 관리 수단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건설 시장에서는 여전히 가격을 사후적으로 조정하거나 갈등을 통해 해결하려는 방식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시장을 통한 사전적 조정보다 훨씬 큰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분쟁으로 인한 공사 중단, 사업 지연, 그리고 그에 따른 비용 증가는 결국 시장 전체의 비효율로 이어진다. 위험을 거래하지 못하는 시장은, 결국 갈등을 거래하게 된다.

물론 선물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공사비는 원자재 가격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인건비, 설계 변경, 현장 조건 등 수많은 변수들이 얽혀 있다. 프로젝트마다 조건이 다른 건설업 특성상 이를 하나의 기준으로 표준화하기도 쉽지 않다. 또한 선물시장은 기대에 따라 움직인다. 실제 수요와 괴리된 가격이 형성되거나, 투기적 자금이 유입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점은 분명하다. 공사비 갈등의 본질은 가격 수준이 아니라 그 변동성에 있다. 그리고 변동성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다. 가격을 억누르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왜곡만 키울 뿐이다. 필요한 것은 가격을 맞추는 정책이 아니라, 위험을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주요 자재에 대한 표준화된 가격 지표와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체계가 먼저 구축되어야 한다. 동시에 과도한 투기를 억제하고 시장의 신뢰를 확보할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만 선물시장은 실질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공사비를 통제하려는 시도는 반복해서 실패해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를 방치할 수는 없다. 통제할 수 없다면, 관리해야 한다. 공사비 갈등을 줄이는 방법은 가격을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 변동의 위험을 시장에서 나누는 것이다. 공사비 갈등의 해법은 통제가 아니고 거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