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E Home

농산물, 매년 바뀌는 ‘귀한 몸’과 ‘값싼 몸’의 비밀

글쓴이
한정민 2025-12-12

[농산물만 유독 가격이 불안정한 까닭]


나는 얼마 전 “배추 가격 작년에 비해 45% 하락”이라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불과 1주일 전만 해도 쌀 가격이 작년에 비해 상승해 장바구니 물가가 올랐다는 뉴스를 접했던 터라 같은 농산물인데 극단적인 가격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 나의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왜 매년 농산물은 “귀한 몸”, “값싼 몸”이 바뀌는 걸까?


생각해 보면 마트에서도 이러한 가격 변동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음료, 휴지, 가전제품 같은 소비재들은 비교적 가격이 일정하지만, 농산물은 오늘 비싸다고 생각했던 것이 몇 주 후에 갔을 때는 30~40% 할인가로 판매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 원인은 농산물의 수확 철과 같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독특한 농산물의 특징 때문이다.


[수요 공급 법칙(농산물의 비탄력적 수요와 불안정한 공급]


농산물도 당연히 수요 공급 법칙에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농산물은 비탄력적 수요와 불안정한 공급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마트에 갔을 때 물건이 너무 비싸 내려놓으며 다음에 사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는가? 이렇게 너무 비싼 물건은 수요가 감소하고 이에 따라 재고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가격이 하락하여 가격 안정에 도달한다. 즉 수요 공급 법칙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해 자연스럽게 가격이 조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내일 먹을 쌀이 없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구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농산물의 수요는 가격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고 비교적 일정하므로 비탄력적 수요라는 특징을 가진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재화에 비해 예측하기 힘든 기후의 영향, 제한적인 농지 등으로 인해 공급도 불안정하다. 이러한 농산물의 특징은 농산물의 가격 변동에 영향을 미친다.


[수입에 의존한 유통 구조]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률은 20%대로 많은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해외 시장 상황에 따라 농산물의 가격이 크게 변할 수 있다. 러·우전쟁이 발발했던 시기 부모님은 물론 주변에 자취하던 친구들도 장바구니 물가 상승으로 불만을 토로하던 것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세계의 곡창지대라 불렸던 두 나라가 전쟁을 시작하자 시장에 공급되는 전체적인 농산물량이 감소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세계 농산물 가격이 출렁였다.


[적응적 기대이론]


뿐만 아니라 농업인의 의사결정도 농산물 가격 변동에 영향을 미친다. 농업인들은 과거 경험에 따라 재배할 품목을 결정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적응적 기대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적응적 기대이론은 경제주체들이 과거의 정보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방식을 의미하는데 이렇게 의사결정 결정을 한다면 과거에 일어난 일이 미래에도 일어날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샤인머스켓이다.


샤인머스켓은 처음 재배될 당시 희소성과 높은 당도로 인해 고급 과일로서 시장에서 고가로 거래되었다. 그러자 농업인들은 높은 수익을 기대하며 너도나도 샤인머스켓을 재배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2016년 재배면적이 278ha이던 것이 2024년에는 6,000ha를 초과하며 급격히 증가했다. 이에 따라 가격은 2022년에 비해 현재 절반 이상 하락했다. 이렇게 과거에 입각한 농업인들의 의사결정은 큰 시차를 두고 시장에 반영되어 농산물 가격 예측을 어렵게 만든다.


[정부의 시장 개입 양날의 검]


이런 농산물의 높은 가격 변동으로 인해 정부의 적극적 시장개입이 정당하다고 착각하기 쉽다. 물론 농산물은 소비자의 영양소 섭취와 관련하여 생존에 직결된 품목으로 가격 안정을 위해 정부의 개입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주기적인 농산물 구매 비용을 지원하는 농·식품 바우처나, 공공 비축미 등으로 농산물의 불안정한 공급을 대비하는 것이 그 예시이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가격 형성이라는 시장 경제 원리를 위배할 만큼 정부가 시장에 개입한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자율적인 시장 조정 기능 약화로 이어질 수 있으며 과도한 지원 정책으로 인한 경쟁의 부재는 농산물 품질 하락으로 이어져 소비자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샤워실의 바보’가 될 수 있다. “사위실의 바보”는 경제학에서 적절한 온도를 찾기 위해 레버를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로 반복해서 돌리는 어리석은 행위를 비유한 말로, 단기인 정책적 처방의 비효율성을 비판한다. 이처럼 가격 안정을 위한 성급한 정책적 처방이 오히려 가격 불안정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 따라서 샤워실의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정부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결정해야 하며 가격을 ‘통제’하기 보다는 시장경제 원리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시장의 ‘보조자’로서 역할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