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길라잡이] 배추의 교훈

최승노 / 2020-04-13 / 조회: 4,068

계획경제에선 배추값 급등해도 수확해봐야 이익 없죠

…옛 소련이 사회주의 실패하고 개혁·개방으로 간 이유죠


한 공산주의 국가에서 일어난 일이다. 도시에서는 채소가 부족해 가격이 폭등하는데도 농촌의 밭에서는 수확하지 않은 채소가 그대로 썩어가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와 같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자본주의 국가라면 상인들이 당장 트럭을 갖고 농촌에 와서 배추를 사다가 도시에 내다 팔며 중간 유통이익을 챙기고 남았으리라. 그런데 왜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이상적인 사회?


그 이유는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사유재산을 금하기 때문이다. 모든 생산수단은 국가의 소유이므로 누구도 트럭을 소유할 수 없고, 이동의 자유가 없으므로 농촌에 채소를 사러 갈 수도 없다. 배추 농사를 짓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땅과 배추의 소유권이 자신에게 없기 때문에 마음대로 돈을 받고 팔 수 없다. 설령 배추를 팔아서 이익이 생긴다고 해도 그것은 자신이 아니라 국가의 몫이라 굳이 팔려고도 하지 않는다. 아예 관심조차 없다. 도시에서는 채소 품귀 현상이 벌어지건 말건, 농촌 밭에서 멀쩡한 채소가 썩어가건 말건 그것은 '내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산주의 계획경제 체제에서는 생산과 분배를 국가가 도맡아 하므로 개인이 나설 여지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자는 국가의 경제기구에서 정해주는 대로 생산하고, 소비자는 배급해주는 대로 소비할 뿐이지 그 이상은 관여하지 않는다. 게다가 국가가 철저하게 통제하는 계획경제 하에서는 괜히 잘난 척 나섰다가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알 수 없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고, 채소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어떤 잘못이 있든, 좋은 해법이 있든 차라리 그냥 입 다물고 묵묵히 있는 편이 낫다. 이 때문에 결국 국가의 경제 기구는 현실과 동떨어진 경제 조정안을 내놓다가 실패하기 일쑤다.


과잉생산, 태부족이 반복


'공산 배추’는 공산주의 국가의 계획경제가 얼마나 불완전하며, 인간의 이성으로 이상적인 사회를 설계하겠다는 생각이 애초에 얼마나 실현 불가능한 헛꿈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현실 경제란 다양하고 복잡한 변수가 존재하며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낱낱이 파악하고 모두 고려해 가장 최적화된 경제계획을 설계하기란 절대 불가능하다. 공산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중앙계획경제의 오류가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1916년, 러시아 혁명을 이끈 레닌만 해도 사회주의 경제 운용에 필요한 '부기와 통제’가 “감시, 기록, 영수증 발급 등 매우 단순한 행위로 이루어진다. 읽기, 쓰기,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이 가능한 사람이면 누구든 할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요리사도 교육만 받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사회주의자들은 인간의 지적 능력을 필요 이상으로 과신해 인간이 모든 정보를 통제하고, 경제를 계획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이런 지적 오만이 바로 공산주의 계획경제를 실패로 이끈 결정적인 요인이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 한 제2, 제3의 '공산 배추’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중국에서도 순수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고집하던 시기에 '공산 배추’ 사태가 발생한 적이 있다. 만주지방에서는 옥수수 등 곡물이 창고에 다 보관하지 못할 정도로 많이 생산돼 일부가 썩어 나갔지만, 내륙지방에서는 극심한 식량 부족으로 사람들이 굶은 채 죽어갔다고 한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인재란 말인가.


1980년대 이후 몰락


이쯤에서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의 발언이 꽤나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샤를 드골은 “치즈만 246가지에 달하는 나라를 어떻게 통치할 수 있을까”라며 프랑스를 통치할 수 있을지언정 프랑스 경제 전체를 계획할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처럼 인간의 지적 능력은 명백한 한계가 있기에 애초 인위적인 사회 설계를 불가능하게 한다. 실제로 사회주의자들의 이상사회를 설계하려는 정치·경제적 실험은 1970년대 오일쇼크를 기점으로 무너지면서 끝내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그 이유는 오일쇼크 이후 세계 경제의 빠른 변화에 공산주의 계획경제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경제운용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진영의 맹주인 소련이 1980년대 경제성장률 0%를 기록할 정도이니 다른 공산주의 국가는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노동생산성이 저하되고 경제성장률이 큰 폭으로 하락하며 국가경제가 휘청대자 국민의 생활도 어려워졌다. 만성적인 생필품과 식량 부족에 시달리며 사회 내부적 불만이 팽배하기 시작했다. 결국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은 경제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개방과 개혁의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하기에 이르렀고, 이는 광범위한 사회주의 정권의 붕괴를 야기하는 결과를 낳았다.


■ 기억해주세요


샤를 드골은 “치즈만 246가지에 달하는 나라를 어떻게 통치할 수 있을까”라며 프랑스를 통치할 수 있을지언정 프랑스 경제 전체를 계획할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처럼 인간의 지적 능력은 명백한 한계가 있기에 애초 인위적인 사회 설계를 불가능하게 한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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